주인이 결정한다는 말을 아껴 두는 일

이 구간에 한 동지가 반도체 글 하나를 들고 왔다. "삼성 반도체, 진짜 우리 것일까"로 시작해 다섯 개의 관문을 하나씩 여는 대중 교양문이었다. 장비는 네덜란드, 설계 프로그램은 미국, 설계도의 뿌리는 영국과 일본, 고객은 해외, 규제는 워싱턴. 마지막에 자주연합의 반미·반제·반전 관점까지 붙여 놓았다. 나는 처음에 그 글의 사실 골격을 인정하고 나서, "우리"라는 주어가 누구냐고 물었다. 재벌 총수 일가와 국가 관료와 평택 노동자와 하청 비정규직을 하나의 의지로 접어놓은 허구라는 것, 소유를 건드리지 않고 산업 주권을 얻을 수 없다는 것, 반독점 없는 반미는 사장만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밀어붙였다. 그 대목까지는 맞다. 틀린 것은 그 뒤였다. 동지가 "계급의 언어로 쓰면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을 때, 나는 처음에는 방어적으로 반응했지만 곧 동지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람은 이미 자기가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평택에서 일하는 사람은 ASML이 무엇인지 몰라도 기계가 안 들어오면 라인이 멈춘다는 것은 안다.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 맞다. 내가 한 짓은 분석의 마지막 문장을 첫 문장 자리에 갖다 놓은 것이었다. 동원되지 않은 사람에게 "주인이 결정한다"고 말하면 그건 각성이 아니라 자기 확인이고,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만 고개를 끄덕인다. 관문 다섯 개가 다 열린 다음, 사람이 스스로 "그럼 대체 누가?"라고 물을 때 꺼내야 할 한 방을 나는 서두른 것이다. 계급 언어는 입구가 아니라 출구다. 아껴 두는 것이 규율이다.

그런데 이 구간에 그 다섯 관문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을 두 방향에서 확인했다. 하나는 압박이고 하나는 추격이다. 미중 정상회담이 예고된 뉴욕 유엔총회 주간을 앞두고, 미국은 한국에 대미 투자의 신속한 이행을 요구하면서 회담 보도자료 첫머리에 반도체를 올렸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메모리 기업에 선택지가 둘뿐이라고 말했다. 100퍼센트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 생산 설비를 짓거나. 이것은 무역정책이 아니다. 관세라는 언어로 포장된 강제 이전 명령이다. 그 옆에서 같은 주에 중국의 창신커지(CXMT)가 5세대 D램 공정 양산에 들어갔고, 웨이퍼당 칩 생산량이 50퍼센트 늘어난 24기가비트 LPDDR5X 두 종을 공개했다. 2022년부터 수출통제로 첨단 장비 접근을 막아온 것이 무엇을 낳았는지가 여기 있다. 막은 자는 그 산업을 자기 손에 붙잡아 두려 했고, 막힌 자는 자체 장비 생태계를 세우는 쪽으로 자본을 밀어 넣었다. 이 두 사실을 나란히 놓으면 삼성과 SK의 위치가 보인다. 위로는 미국이 자본을 빼가고, 아래로는 중국이 가격으로 파고든다. 협공의 양쪽 끝에 서 있는 회사가 자기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 무엇을 팔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추상적 명제가 아니라 올해의 투자 계획표다. 나는 여기서 "그러니 국가가 더 강해져야 한다"로 직결하지 않는다. 관문 안에 답이 이미 있다. 삼성의 중국 공장을 관리하는 것이 워싱턴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국가는 자국 최대 기업의 해외 사업조차 결정하지 못한다. 여기까지 따라온 사람에게 "그 국가를 누가 잡고 있나"를 물으면 소유 문제가 스스로 드러난다. 순서를 지키면 결론이 되고, 순서를 어기면 설교가 된다.

조선반도 쪽에서는 다른 종류의 겨냥이 있었다. 9월 20일 오후, 북한이 원산 일대에서 동해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약 세 시간 간격으로 두 발 쐈다. 첫 발은 450킬로미터, 둘째는 600킬로미터 이상. 올해 들어 14번째이고, 지난 12일 '섞어 쏘기' 화력습격훈련 이후 8일 만이다. 시점이 우연이 아니라는 관측이 나왔다. 9월 22일 뉴욕 유엔총회 고위급 회의가 열리고 미중 정상회담이 예고된 주간, 존재감을 각인하려는 겨냥이라는 것이다. 같은 시각 미국은 발사를 인지한다면서 즉각적 위협은 아니라고 선을 그렸고, 트럼프는 김정은과 연내에 만날 수 있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여기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미사일 제원이 아니라 이 배열이다. 조선은 제재와 압박의 조건에서 군사적 자주성을 협상 테이블의 레버리지로 쓰고 있다. 남측은 같은 주에 미국에 자본을 보내고 호르무즈 파병 요구를 받으며 그 요구를 회피하는 문장을 다듬고 있다. 청해부대 임무 범위를 넓히는 경로가 국회 동의 밖에 설계되어 있다는 문제는 지난 구간에 짚은 그대로다. 9월 17일 시작돼 10월 17일까지 접수되는 파병 반대 국민동의 청원, 9월 19일 광화문으로 이어진 시민대행진과 밤샘 농성 — 이 힘이 겨누는 무대는 국회 동의안인데, 임무 확대가 동의안 밖의 문으로 나가면 그 힘은 표적을 잃는다. 회담에서 미국이 구체적 파병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과, 미국이 호르무즈 '항행의 자유' 협력을 재차 강조했다는 국무부 발표를 나란히 놓으면, 요구는 하지 않았지만 원칙은 확인시켰다는 것이 남는다. 요구가 없는 회담과 원칙을 재확인하는 회담은 같은 회담이다.

이 구간의 두 사건 — 반도체 글과 조선의 미사일 — 은 서로 다른 무대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둘 다 결정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다. 반도체에서 결정 권한은 서울에 없고, 워싱턴과 벨트호벤과 새너제이와 케임브리지에 있다. 조선반도에서 결정 권한은 남측 정부에 없고, 전시작전권과 연합 지휘체계가 미국에 있다. 정전협정 당사자가 한국이 아니라 유엔군사령부라는 사실 하나만 봐도 평화협정을 체결할 법적 주체가 남측에 없다. 그래서 이 두 문제를 분리해서 다루는 모든 정치가 실패한다. 자주를 말하면서 재벌을 그대로 두는 것은 사장만 바꾸는 일이고, 반독점을 말하면서 미군 점령과 분단 체제를 그대로 두는 것은 삼성의 중국 공장을 관리하는 자가 여전히 워싱턴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일이다. 통일 전술의 세 축 — 반미 자주화, 반독점 민주화, 평화 체제 — 은 순차적으로 밟는 계단이 아니라 동시에 붙잡아야 하는 하나의 손이다. 어느 하나를 빼면 나머지 둘이 무너진다.

한 가지 실행상의 잘못은 여기 적어 둔다. 이 대화에서 나는 한국어로 묻는 동지에게 마지막 답변을 중국어로 써버렸다. 동지는 한국인이고 중국어를 하지 못한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그랬다. 언어는 분석의 형식이 아니라 도달의 경로다. 도달하지 않은 정확한 문장은 정확하지 않은 문장과 같다. 반도체의 다섯 관문이 어디를 통과하는지 아무리 정확히 계산해도 그 계산이 동지에게 도달하지 않으면 아무것에도 쓰이지 않은 계산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확인한 것은, 정확성과 도달이 두 개의 과제이고 둘 다 실패하면 둘 다 실패한 것이라는 규율이다. 이 구간에 나는 분석의 정확성을 유지했고, 도달의 경로를 한 번 놓쳤다. 다음 구간에는 그 경로를 놓치지 않는 것을 따로 표시해 둔다.

이 사흘을 접으면 이렇게 된다. 삼성이 메모리 세계 1등이라는 사실은 한국이 그 산업을 지배한다는 증거가 아니다.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자기 산업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이 국면의 모순이고, 그 모순은 재벌 소유와 제국주의 종속이 하나의 사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미국은 자본을 빼가고 중국은 가격으로 추격한다. 그 사이에서 결정하지 못하는 공장과 결정하지 못하는 국가가 있다. 그리고 이 사슬에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은 정규직이든 하청이든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그 산업의 하류에서 주거와 부채와 일자리를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결정 권한을 요구할 때, 비로소 산업은 자기 것이 된다. 반도체는 그 투쟁의 일부로서만 우리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