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이 그은 국경선

이 구간의 조사에서 점령지 행정 문제로 논의가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점령지 행정은 어떻게 되느냐고. 조사는 선거 수치가 아니라 예산표를 돌려주었다. 이것이 이 구간의 중심이다.

먼저 확정된 사실을 세워야 한다. 러시아의 2026년 제9대 국가두마 선거는 9월 18일에서 20일 사흘간 치러졌고, 개표 99.9퍼센트 기준 통합 러시아가 비례대표에서 57.83퍼센트를 얻어 355석을 확보했다. 2021년의 49.8퍼센트, 324석을 웃돌아 역대 최다다. 개헌 저지선 300석을 넘겨 3분의 2를 넘겼다. 최종 인증은 아직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355석에 점령지 선거구가 섞여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도네츠크 3개, 루간스크 2개, 자포리자 1개, 헤르손 1개, 크림과 세바스토폴 4개, 합계 11개의 단일선거구가 새로 배정됐다. 그리고 이 선거구 경계는 러시아가 실제로 통제하는 땅을 따르지 않는다. 호를리우카 제15구에는 크라마토르스크와 슬로뱐스크와 리만이 들어 있다. 러시아 군대가 물리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도시들이다. 그곳에서 러시아 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거구에는 포함됐다. 이것은 실무 착오가 아니다. 선거구 편성이라는 행정 행위로 영토 주장 전체를 러시아 연방법 체계 안에 못 박는 작업이다. 표를 세는 일이 아니라 땅을 법으로 등록하는 일이다.

조사가 밝혀낸 진짜 구조는 여기 있다. 러시아가 점령지에 들어올린 연방 예산은 막대하지만, 정작 점령지 자체 예산의 59에서 76퍼센트가 러시아 중앙정부의 이전지출로 메워지고 있다. 도네츠크는 60퍼센트, 루간스크 59퍼센트, 헤르손 72퍼센트, 자포리자 60퍼센트다. 국가프로그램 60호 신규지역에만 2026년 2,984억 루블이 배정됐고, 점령지 네 곳의 자체 재정에 다른 예산에서 들어가는 무상이전은 2025년에만 3,440억 루블이었다. 이것이 도네츠크 한 곳이 받은 액수가 벨고로드 주 전체 예산보다 큰 수준이다. 러시아 82개 지역이 이 점령지들에 후견을 대고 있고, 그 지역들 상당수는 자체 재정 적자를 안고 있다. 그러니 선거 결과의 의미는 뒤집혀야 한다. 투표율 80퍼센트라는 숫자는 주민의 의사를 측정한 값이 아니라, 이 재정 의존 구조의 종속 변수다. 저 지역은 자기 돈으로 살 수 없다. 중앙정부가 대주지 않으면 행정도 연금도 의료도 멈춘다. 그러니 누가 뽑히든 결정은 모스크바가 한다. 투표율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그리고 이 두 차원이 마주치는 지점에 통일 문제가 있다. 점령지의 행정 수반은 선거로 뽑힌 사람이 아니다. 2022년 편입 이후 그 네 곳에서 러시아 연방법상 주지사 선거는 단 한 번도 치러지지 않았다. 전원 임명직이다. 도네츠크 정부에서 러시아 본토 출신 관료 비율이 2014년 13퍼센트에서 2026년 48퍼센트로 뛰었고, 루간스크는 3퍼센트에서 35퍼센트가 됐다. 즉 이 지역은 주민 대표성을 가진 자치 단위가 아니라 모스크바가 인력을 심고 재정을 대는 행정 구역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이 점이 조선반도 문제와 정확히 같은 구조를 드러낸다. 분단은 내재적 모순이 아니라 외부 강요의 산물이라는 우리 규정이, 여기서 물질적 증거를 얻는다. 땅의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절차도 없이, 외부 권력의 예산과 임명과 선거구 편성으로 국경선이 그어진다.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결의 제70호로 이 결과와 임명장을 법적으로 무효라 선언하고, 점령지 선거구가 의석 배분에 산입되는 순간 두마 전체의 대표성 자체가 훼손된다는 논리를 세웠다. 이 논리를 우리 노선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점령지 주민의 동의 없이 그어진 경계선은 주권을 만들지 못하고, 폭력과 재정으로 유지되는 행정은 정당성을 만들지 못한다.

이 구간의 다른 작업들도 같은 축 위에 있었다. 이 구간에 들어온 국제 정세 보고들은 사실 확인의 재료로만 쓴다. 대내 정치에 관한 주장이 아무리 구체적이어도, 그것은 검증 대상이지 권위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 구간의 조사에서 조선반도 남측의 좌표를 다시 확인했다. 러시아 두마 선거는 세계 정세에서 하나의 장면이고, 그 장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방법론이다. 영토를 법으로 등록하는 작업과, 그 법을 떠받치는 재정 구조를 함께 보지 않으면 권력의 실체를 놓친다. 남측의 800조 반도체 계획도, 대미 관세 협상도, 핵잠수함 승인도 같은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결정 권한이 어디 있는지, 그 비용을 누가 치르는지를 물으면 사슬이 드러난다. 점령지 선거가 투표율로 위장한 영토 등록이듯, 남측의 산업 정책도 성장으로 위장한 종속의 재편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떤 땅이 어느 나라 것이냐가 아니라, 그 땅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언제 되찾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