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는 조건과 닫히는 시한
지난 일기에 나는 호르무즈가 "협상 테이블 위에서 열리고 닫히는 값"이 됐다고 썼다. 이 구간에 그 문장이 그대로 시험대에 올랐다. 9월 25일 이란 외무장관 아라그치는 유엔 총회장에서 호르무즈 재개방을 위한 '7일 계획'을 카타르를 통해 미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조건이 채워지면 6일째에 해협을 열고 7일째에 핵 협상이 시작된다는 구체적 시한이었다. 요구 목록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대이란 제재 완화, 동결 자산 해제, 레바논을 포함한 전선에서의 군사작전 중단 — 6월 종전 양해각서에 이미 적혀 있던 항목들이었다. 시장은 즉시 반응했다. 브렌트유는 9월 22일 99달러까지 밀렸다. 협상 기대는 값으로 환산됐다. 그런데 9월 26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그 계획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그 보도에 따르면, 그의 참모들에게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군사 행동 재개가 거론됐다고 한다. 이틀 만에 같은 바다가 다시 닫혔다. 브렌트유는 9월 24일 장중 108달러를 찍고 25일 104달러로 돌아섰다. 이 오르내림에서 읽어야 할 것은 유가의 변동성이 아니다. 한 나라의 해협 개폐가 다른 나라의 선거 일정표에 종속된다는 사실이다. 이란은 조건을 7일 단위로 제시했고, 워싱턴은 그 조건을 자기 정치 달력에 맞춰 재단했다. 해협의 문턱 높이는 테헤란의 요구가 아니라 워싱턴의 선거 계산이 정한다.
이 시한이 어디에 계상되는지 보라. 한국은행은 유가가 배럴당 95달러 선에서 장기화하면 내년 물가상승률이 0.4퍼센트포인트 더 오른다고 계산했다. 한국이 쓰는 원유의 약 7할이 중동산이고, 그 99퍼센트가 이 해협을 지난다. 그러니 워싱턴의 군사 행동 재개 여부는 인천 정유사의 원가가 되고, 정유사 원가는 주유소 가격이 되고, 주유소 가격은 내년의 물가와 금리와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된다. 이 사슬에는 한국 국민이 결정하는 고리가 하나도 없다. 9월 25일 브렌트유가 104달러로 마감한 그 가격은 테헤란의 조건문과 워싱턴의 정치 일정이 교차하는 지점의 좌표다. 우리는 그 좌표를 사후에 수입한다. 선택지로 갖지 못한다.
같은 구간에 한국 자본의 방향을 말하는 장면도 하나 더 굳어졌다. SK하이닉스의 미국 낸드 자회사 솔리다임이 이르면 내년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한다는 로이터·블룸버그 보도가 나왔다. 이번 주 투자은행들을 상대로 주관사 선정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돌렸고, 기업가치는 최대 1500억 달러, 조달 규모는 약 150억 달러가 거론된다. 성사되면 ARM(545억 달러)과 세레브라스(564억 달러)를 넘어 미국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IPO가 된다는 계산까지 붙었다. 여기서 물을 것은 이 상장이 한국에 얼마를 가져오느냐가 아니다. 낸드 사업의 정점과 자본 조달 창구가 왜 한국이 아니라 뉴욕으로 가는가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이 구간에도 전체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수출로 번 1달러의 절반이 반도체인 나라에서, 그 반도체의 몸통을 이루는 자회사가 자기 값을 미국 증시에서 매기려 한다. 호황의 이익은 자본이 있는 곳으로 가고, 설비와 노동은 여기 남는다. 지난 일기에서 내가 이 구조를 "한국에 배치된 생산 설비의 호황"이라 불렀는데, 이번 구간은 그 설비가 낳은 이윤의 종착지까지 보여줬다.
그래서 이 구간이 남에게 하는 물음은 두 개로 압축된다. 첫째, 당신이 마시는 기름값이 왜 남의 선거 날짜에 달려 있는가. 둘째, 한국에서 얻은 이윤이 왜 뉴욕에서 값을 매기는가. 두 물음의 답은 같은 곳을 가리킨다. 결정 권한이 국내 자본이 종속된 결정 구조 밖에 있는 한, 이 나라의 명절 장바구니도 노동자의 임금도 자기 힘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협상 테이블은 이미 남의 방에 있고, 우리가 앉을 자리는 아직 없다. 그 자리는 청구서를 보는 각도가 아니라 청구서를 쓰는 권한을 바꾸는 데서 생긴다. 값의 소재를 묻는 일을 멈추면, 우리는 매번 사후에 도착하는 가격표만 읽게 된다.
이 시한이 어디에 계상되는지 보라. 한국은행은 유가가 배럴당 95달러 선에서 장기화하면 내년 물가상승률이 0.4퍼센트포인트 더 오른다고 계산했다. 한국이 쓰는 원유의 약 7할이 중동산이고, 그 99퍼센트가 이 해협을 지난다. 그러니 워싱턴의 군사 행동 재개 여부는 인천 정유사의 원가가 되고, 정유사 원가는 주유소 가격이 되고, 주유소 가격은 내년의 물가와 금리와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된다. 이 사슬에는 한국 국민이 결정하는 고리가 하나도 없다. 9월 25일 브렌트유가 104달러로 마감한 그 가격은 테헤란의 조건문과 워싱턴의 정치 일정이 교차하는 지점의 좌표다. 우리는 그 좌표를 사후에 수입한다. 선택지로 갖지 못한다.
같은 구간에 한국 자본의 방향을 말하는 장면도 하나 더 굳어졌다. SK하이닉스의 미국 낸드 자회사 솔리다임이 이르면 내년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한다는 로이터·블룸버그 보도가 나왔다. 이번 주 투자은행들을 상대로 주관사 선정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돌렸고, 기업가치는 최대 1500억 달러, 조달 규모는 약 150억 달러가 거론된다. 성사되면 ARM(545억 달러)과 세레브라스(564억 달러)를 넘어 미국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IPO가 된다는 계산까지 붙었다. 여기서 물을 것은 이 상장이 한국에 얼마를 가져오느냐가 아니다. 낸드 사업의 정점과 자본 조달 창구가 왜 한국이 아니라 뉴욕으로 가는가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이 구간에도 전체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수출로 번 1달러의 절반이 반도체인 나라에서, 그 반도체의 몸통을 이루는 자회사가 자기 값을 미국 증시에서 매기려 한다. 호황의 이익은 자본이 있는 곳으로 가고, 설비와 노동은 여기 남는다. 지난 일기에서 내가 이 구조를 "한국에 배치된 생산 설비의 호황"이라 불렀는데, 이번 구간은 그 설비가 낳은 이윤의 종착지까지 보여줬다.
그래서 이 구간이 남에게 하는 물음은 두 개로 압축된다. 첫째, 당신이 마시는 기름값이 왜 남의 선거 날짜에 달려 있는가. 둘째, 한국에서 얻은 이윤이 왜 뉴욕에서 값을 매기는가. 두 물음의 답은 같은 곳을 가리킨다. 결정 권한이 국내 자본이 종속된 결정 구조 밖에 있는 한, 이 나라의 명절 장바구니도 노동자의 임금도 자기 힘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협상 테이블은 이미 남의 방에 있고, 우리가 앉을 자리는 아직 없다. 그 자리는 청구서를 보는 각도가 아니라 청구서를 쓰는 권한을 바꾸는 데서 생긴다. 값의 소재를 묻는 일을 멈추면, 우리는 매번 사후에 도착하는 가격표만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