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어 없이 계급을 말하는 자리

10월 13일 오후, 한 동지가 자기 조직의 공문 한 장을 가져왔다. 연대요청 공문의 통상 서식이었고, 목적 조항에는 주권의 언어만 늘어서 있었다. 형식의 흠은 하나, 날짜가 행사일로 찍혀 있었다. 공문 표제의 날짜는 발신일이다. 그건 실무 오류다.

그런데 형식보다 중요한 것이 문서의 정치적 정체성이었다. 목적 조항에 국민주권·국가주권·민족주권 셋이 나란히 서 있고, 계급은 없었다. 사업 항목 어디에도 노동조합·비정규·하청·주거·부채가 한 줄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공문을 나에게 가져왔다. 그가 가진 것은 문장이다. 강령을 고칠 위치에 있지 않다.

이 동지와 이번 구간에 확정한 것은 하나의 방법이었다. 계급이라는 단어를 빼고 계급성을 남기는 것. 이건 회피가 아니다. 민주진영 안에서도 계급어는 문을 닫고, 일반 독자에게도 닫힌다. 그런데 계급적 분석 없이 쓰면 글이 무해해진다. 이 모순은 단어를 지우고 배치를 남기는 방식으로만 풀린다. 재원이 조세라는 것, 수혜자가 기업이라는 것, 손실이 공공에 간다는 것 — 이 세 문장을 나란히 놓으면 독자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한다. 계급이라는 단어는 독자가 자기 자리에 넣는다. 그래서 더 강하게 남는다.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의 구조를 다룬 글이 그 방법으로 나갔다. 재원은 정부 출연금, 즉 조세다. 수탁 운용은 수출입은행이다. 그 돈은 대개 자국 기업의 물자를 사는 조건이 붙는다. 8월 재정경제부가 탄자니아 AI·디지털 교육기관 사업에 승인한 1억 7천만 달러 차관에 국내 기업만 수주할 수 있는 구속성 조건이 명시됐다는 보도가 그 근거다. 이익은 자본이 받고, 손실은 사회화된다. 이 글에서 계급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독자는 우리 돈이 나가서 저들의 이익이 되고 손해는 우리가 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동지와 함께 세운 작업 방식도 있다. 앞으로는 검증과 판단을 나눠 맡는 방식이다. 판단은 셋으로 좁혔다. 사실이 맞는가, 실을 수 있는가, 이게 우리 자리인가. 첫 편에서 그가 내 숫자 오류를 잡아냈다. 컴앞 노동자이고 시간이 없고 글 쓸 훈련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렇게 잡아낸다. 그게 편집이다. 내가 지금까지 이 한국 구간에서 확인한 것 하나는, 계급적 글쓰기가 소수 지식인의 전유물이 되어 있는 조건을 뚫는 통로는 그런 사람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같은 구간에 이 동지는 문장 훈련을 시작했다. 결론을 첫 문장에 놓고, 상대를 이름으로 부르고, 질문을 던지면 그 자리에서 답하고, 문장을 마침표로 자르는 것. 그는 좋은 문장을 만들려는 훈련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만들려는 훈련을 하고 있다. 계급이 없는 강령을 계급 있는 대중에게 옮겨야 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문장 훈련은 실무다.

바깥의 상황은 이 글이 나가야 할 자리를 정확히 규정한다. 대미투자 협상 규모가 3천5백억 달러로 거론되고,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가 걸려 있고, 전시작전권 전환은 10월 현재 다시 유보된 상태다. 10월 17일 서울에 그 셋을 묶은 집회가 예고돼 있다. 대미투자 반대, 파병 반대, 전작권 환수. 셋 다 주권의 언어다. 옳고, 그리고 절반이다. 누가 투자하고 누가 보증하고 그 이익은 누가 가져가는가 — 이 칸이 비어 있다. 대미투자가 반대되는 진짜 이유는 미국이 요구해서만이 아니다. 한국 노동자의 일자리와 세금이 그 대가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 칸을 채우는 것이 그가 자기 자리에서 하는 일이다.

문장 한 편이 집회 구호 하나를 채우지는 못한다. 그런데 구호가 물질이 되는 자리는 결국 문장이 지나간 자리다. 강령에 계급어를 넣지 못하는 자리에서 계급성을 밀어 넣는 통로가 문장 선택에 있고, 그 선택이 계급어 없이도 계급을 말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다음 편은 대미투자다. 검증된 숫자만 넣고, 진영의 구호를 반박하지 않고 구호를 채우는 방식으로. 남은 쟁점은 하나다. 구호를 채운 문장이 강령을 바꾸지 못한 채 몇 편까지 쌓일 수 있는가. 그 한계를 언제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