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 사례의 지하 9층
3월 27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부산교통공사를 찾았을 때 그 자리에는 명확한 문장이 놓여 있었다. "부산교통공사의 모범 사례가 다른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정부도 끝까지 뒷받침하겠다." 개정 노조법 시행 17일 뒤였다. 공사는 2021년 자회사 부산도시철도운영서비스를 세워 청소와 경비와 시설 관리를 위탁했고, 시행일인 3월 10일 부산지하철노조가 곧바로 교섭 요구 공문을 보냈다. 정부가 광고한 그 사업장에서 법 시행 이후 원청을 상대로 쟁의권을 확보한 첫 파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21일 최종 교섭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7월 22일부터 9월 21일까지 여섯 번 앉아서 합의하지 못했고, 9월 조정 절차에서 쟁의권을 얻었으며, 찬반투표는 참여 조합원의 96.5퍼센트 찬성으로 통과했다. 나는 이 파업의 의미를 사업장 하나의 승패로 보지 않는다. 모범 사례라는 이름이 무엇으로 채워졌는지가 여기서 확정되기 때문이다.
그 채움의 내용은 만덕역에 있다. 승강장이 지하 9층인 역이고, 그 사이는 환기실과 통신기기실로 메워져 있다. 청소노동자는 장비 아래로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하고, 안전 때문에 장화와 헬멧을 쓴다. 기계 열이 도는 통신기기실에 온도계는 없다. 지하 5층에 들어선 기계 열은 통신장비를 식히는 쪽으로 향하고, 그 옆을 청소하는 사람은 가을에도 땀으로 목욕하는 상태가 된다. 지난해 주5일제 도입에 합의하며 51명 증원을 정했지만 110여 개 역에 배분되면서 역당 한 명도 늘지 않았다. 기술직은 오폐수 처리 시설의 낮은 배관 아래에서 안전모가 계속 부딪히는 조건으로 3인 1조 작업을 하고, 원청이 정한 그 3인 1조를 지키기 위한 증원 요구는 산업안전 의제가 아니라는 답을 받았다. 20여 년 전 원가 설계를 기준으로 하면 12월 개통 예정인 양산선에 필요한 전기직은 0.06명으로 산출된다. 0.06명. 이것이 인력 산정의 언어다.
그러니 3월의 문장과 9월의 결렬 사이에 모순은 없다. 오히려 정확히 맞물린다. 공사의 답은 일관된다. 인력 증원은 자회사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결정할 사항이라 공사가 직접 지배하거나 결정할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 그러면서 위탁 계약 금액은 정부 지침과 부산시 생활임금 조례에 따라 지급한다고 밝힌다. 돈은 원청이 정하고, 인력은 자회사가 정하며, 교섭 테이블에서는 그 둘 다 의제가 아니다. 법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했는데, 지배의 실질이 단가와 원가 설계와 조례에 흩어져 있으면 사용자는 어디에도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원청교섭은 그 흩어진 지배를 한 자리에 세우려는 시도이고, 상대는 그 지배를 흩어진 채로 두려는 것이다.
같은 구조가 이번 주 다른 좌표에서 동시에 드러난다. 19일 공공운수노조가 원청교섭 공동파업을 선포했다. 부산교통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LG유플러스 네 사업장의 하청·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고, 그 뒤 총궐기가 예고돼 있다. 노조가 교섭을 요구한 원청 70곳 가운데 실제로 교섭이 열린 곳은 18곳, 4분의 1이다. 인천공항은 의제를 산업안전으로 한정하고 2022년 합의한 교대제 개편은 자회사 경영권이라며 논의를 거부했다. 민간에서는 거제 한화오션 하청 두 지회의 3차 교섭이 예정돼 있고,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된 뒤 재교섭이 막힌 HD현대중공업은 사흘간 하루 7시간 부분파업에 들어간다. 요구는 다르다. 부산은 샤워실과 원가 설계이고, 거제는 고용·노동조건 승계와 차별 없는 성과금이며, 울산은 영업이익의 몇 퍼센트다. 교섭 상대를 실질 결정자로 특정하는 일, 의제의 범위를 정하는 일, 그 범위 밖의 요구를 절차적으로 무효화하는 일이 어느 사업장에서는 노동위원회 판정으로, 어느 사업장에서는 해석지침 한 줄로, 어느 사업장에서는 크레인 위의 시간으로 나타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번 주 프랑스의 숫자를 함께 놓는다. 10월 17일 전국 시위에 내무부 기준 110곳 55만 명, 학생노조 기준 1,750곳 80만 명이 나왔고 파리에서만 하루 약 2,400명이 체포됐다. 3주 동안 체포된 약 8,000명의 85퍼센트가 미성년자다. 출발점은 고등학교였고, 요구는 교사 충원과 학급 규모와 무너지는 시설이었다. 프랑스 정부가 가장 조용히 깎을 수 있었던 예산이 학교였고, 그 교실에 앉은 사람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여기서 두 나라의 사정은 다르다. 한국의 청소노동자는 투표권을 갖고 있고, 그래서 파업이라는 절차를 통해 자기 요구를 문서로 만들 수 있다. 프랑스의 고등학생은 그 절차가 없어서 거리로 나갔고, 거리에서 체포되었다. 차이는 저항의 강도가 아니라 요구를 문서로 옮길 제도적 통로의 유무다. 그 통로가 열려 있는 한국에서 통로를 여는 법이 시행 여섯 달여 만에 4분의 3의 사업장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면, 그 법은 아직 권리가 아니라 청구권이다. 청구는 매번 다시 증명해야 하고, 증명의 마지막 형식이 파업이다.
이번 주에 세 개의 시계가 동시에 돌아간다. 부산의 지하철역에서 청소노동자의 파업이 예정돼 있고, 거제에서는 세 번째 교섭이 예정돼 있으며, 같은 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채권 전문가 93퍼센트가 동결을 예상한다지만 그 숫자는 이 국면의 중심이 아니다. 중심은 이렇다. 정부가 스스로 모범이라 부른 사업장에서 첫 파업이 시작된다면, 그것은 노조의 실패가 아니라 지침의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기록은 다음 교섭에서 문서로 쓰인다.
그 채움의 내용은 만덕역에 있다. 승강장이 지하 9층인 역이고, 그 사이는 환기실과 통신기기실로 메워져 있다. 청소노동자는 장비 아래로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하고, 안전 때문에 장화와 헬멧을 쓴다. 기계 열이 도는 통신기기실에 온도계는 없다. 지하 5층에 들어선 기계 열은 통신장비를 식히는 쪽으로 향하고, 그 옆을 청소하는 사람은 가을에도 땀으로 목욕하는 상태가 된다. 지난해 주5일제 도입에 합의하며 51명 증원을 정했지만 110여 개 역에 배분되면서 역당 한 명도 늘지 않았다. 기술직은 오폐수 처리 시설의 낮은 배관 아래에서 안전모가 계속 부딪히는 조건으로 3인 1조 작업을 하고, 원청이 정한 그 3인 1조를 지키기 위한 증원 요구는 산업안전 의제가 아니라는 답을 받았다. 20여 년 전 원가 설계를 기준으로 하면 12월 개통 예정인 양산선에 필요한 전기직은 0.06명으로 산출된다. 0.06명. 이것이 인력 산정의 언어다.
그러니 3월의 문장과 9월의 결렬 사이에 모순은 없다. 오히려 정확히 맞물린다. 공사의 답은 일관된다. 인력 증원은 자회사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결정할 사항이라 공사가 직접 지배하거나 결정할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 그러면서 위탁 계약 금액은 정부 지침과 부산시 생활임금 조례에 따라 지급한다고 밝힌다. 돈은 원청이 정하고, 인력은 자회사가 정하며, 교섭 테이블에서는 그 둘 다 의제가 아니다. 법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했는데, 지배의 실질이 단가와 원가 설계와 조례에 흩어져 있으면 사용자는 어디에도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원청교섭은 그 흩어진 지배를 한 자리에 세우려는 시도이고, 상대는 그 지배를 흩어진 채로 두려는 것이다.
같은 구조가 이번 주 다른 좌표에서 동시에 드러난다. 19일 공공운수노조가 원청교섭 공동파업을 선포했다. 부산교통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LG유플러스 네 사업장의 하청·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고, 그 뒤 총궐기가 예고돼 있다. 노조가 교섭을 요구한 원청 70곳 가운데 실제로 교섭이 열린 곳은 18곳, 4분의 1이다. 인천공항은 의제를 산업안전으로 한정하고 2022년 합의한 교대제 개편은 자회사 경영권이라며 논의를 거부했다. 민간에서는 거제 한화오션 하청 두 지회의 3차 교섭이 예정돼 있고,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된 뒤 재교섭이 막힌 HD현대중공업은 사흘간 하루 7시간 부분파업에 들어간다. 요구는 다르다. 부산은 샤워실과 원가 설계이고, 거제는 고용·노동조건 승계와 차별 없는 성과금이며, 울산은 영업이익의 몇 퍼센트다. 교섭 상대를 실질 결정자로 특정하는 일, 의제의 범위를 정하는 일, 그 범위 밖의 요구를 절차적으로 무효화하는 일이 어느 사업장에서는 노동위원회 판정으로, 어느 사업장에서는 해석지침 한 줄로, 어느 사업장에서는 크레인 위의 시간으로 나타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번 주 프랑스의 숫자를 함께 놓는다. 10월 17일 전국 시위에 내무부 기준 110곳 55만 명, 학생노조 기준 1,750곳 80만 명이 나왔고 파리에서만 하루 약 2,400명이 체포됐다. 3주 동안 체포된 약 8,000명의 85퍼센트가 미성년자다. 출발점은 고등학교였고, 요구는 교사 충원과 학급 규모와 무너지는 시설이었다. 프랑스 정부가 가장 조용히 깎을 수 있었던 예산이 학교였고, 그 교실에 앉은 사람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여기서 두 나라의 사정은 다르다. 한국의 청소노동자는 투표권을 갖고 있고, 그래서 파업이라는 절차를 통해 자기 요구를 문서로 만들 수 있다. 프랑스의 고등학생은 그 절차가 없어서 거리로 나갔고, 거리에서 체포되었다. 차이는 저항의 강도가 아니라 요구를 문서로 옮길 제도적 통로의 유무다. 그 통로가 열려 있는 한국에서 통로를 여는 법이 시행 여섯 달여 만에 4분의 3의 사업장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면, 그 법은 아직 권리가 아니라 청구권이다. 청구는 매번 다시 증명해야 하고, 증명의 마지막 형식이 파업이다.
이번 주에 세 개의 시계가 동시에 돌아간다. 부산의 지하철역에서 청소노동자의 파업이 예정돼 있고, 거제에서는 세 번째 교섭이 예정돼 있으며, 같은 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채권 전문가 93퍼센트가 동결을 예상한다지만 그 숫자는 이 국면의 중심이 아니다. 중심은 이렇다. 정부가 스스로 모범이라 부른 사업장에서 첫 파업이 시작된다면, 그것은 노조의 실패가 아니라 지침의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기록은 다음 교섭에서 문서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