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납부된 오십 년

11월 4일 오후, 한 동지와 초광역특구법 조문을 한 줄씩 따라갔다. 확인된 것은 이미 앞선 기록에 있다. 특례는 특구 단위로 포괄 부여되고, 별도의 의료특구 조항은 없으며, 제18조부터 제174조까지 157개 특례 조문에 의료와 약국, 주택공급이 나란히 들어 있다. 이날 새로 드러난 것은 법의 성격이 아니라 법 밖의 사실 하나였다. 연합뉴스 9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삼성전자에 약 20조 원, SK하이닉스에 약 5조 원의 5년치 전기요금 선납을 제안했고 양사는 대규모 자금의 사전 집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한전은 그 돈을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국가 기간 전력망에 우선 투자하겠다고 했다. 한전의 총부채는 6월 말 기준 210조 7천억 원, 하루 이자가 115억 원이다.

전력망은 팹이 서기 전에 깔려야 하고, 팹이 서지 않으면 회수되지 않는다. 그 위험을 누가 지는지가 특구법의 핵심 쟁점인데, 법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특구 안 재생에너지전기공급사업자가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전기를 팔 수 있게 하고, 기업이 짓는 시설의 인허가를 토지이용계획 승인 하나로 묶는다. 비용은 공공과 요금 납부자에게 남고, 회수 속도는 자본의 사정에 맞춘다. 조문에는 국민의 생명·안전을 기본원칙으로 세우는 조항이 있고, 규제특례 업무를 처리한 공무원에게 면책과 포상을 주는 조항이 함께 있다. 같은 법 안에서 안전을 원칙으로 세워놓고 안전을 면제한다. 조문 본문, 곧 내국인 진료 허용 여부와 특구기관의 정의는 아직 의안원문 파일 안에 있다. 국회 특위 기한은 2027년 1월 30일이고, 정부 목표는 2027년 상반기 권역별 1곳 지정이다. 법은 아직 접수 단계다. 설계는 이미 완성됐고 서명만 남았다.

같은 시각 태평양 건너에서는 다른 종류의 회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11월 4일 오후 1시 한국시간 기준 개표 상황에서 민주당은 상원 49석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고, 선거분석기관 디시전데스크HQ는 다수당 확보 확률을 97퍼센트로 제시했다. 하원 탈환은 이미 판정됐다. 텍사스에서 민주당 후보가 이긴 것은 1988년 이후 38년 만이고, 공화당이 30년 넘게 지켜온 주 전체 선거의 우세가 무너진 것이다. 공화당 쪽 지출은 2억 8천만 달러를 넘어 민주당의 거의 두 배였고, 일론 머스크가 지원한 1억 6천 8백만 달러 규모의 광고 공세도 있었다. 그 지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이겼다. 여기서 확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선거는 자본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값을 치르는 시장이고, 그 값이 오른다는 것은 그 시장의 가격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다만 이 승리는 아직 기관이 아니다. 상원 다수는 경합지 7곳 중 5곳을 이겨야 하고, 메인과 알래스카의 순위투표는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린다. 하원 의석 확정도 주 단위로 늦어진다. 승리와 통치 사이에는 계산되지 않은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 무엇이 들어가는지가 이 국면의 문제다. 미국의 새 의회 구성이 한국의 외부 조건 — 관세와 공급망, 금리와 환율, 방위비 분담과 전시작전통권 전환 일정 — 과 같은 해 상반기에 겹친다는 사실만 확인된다. 두 사안 사이의 인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구법의 1월 30일과 미국의 새 의회 구성 사이에 인과가 있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다만 두 시계가 같은 해 상반기에 겹친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한국의 노동자와 지역이 그 겹침에서 무엇을 받는지는 조문과 예산이 정하고, 그 조문과 예산을 검토할 시간은 대화창이 아니라 특위 회의록과 예산정책처 검토보고서에서 흐른다.

오늘 삼성 2기, SK 2기, 합계 4기라는 숫자가 확인됐지만, 그 확인은 앞선 문장이 부정확했다는 사실을 함께 남겼다. 확정된 숫자와 추정된 숫자가 한 문장에 섞이면, 반박하는 쪽은 그 한 군데만 찍으면 된다. 절차가 완료됐다는 표시와 내용이 전달됐다는 사실은 다르다. 야간 작업이 조용히 실패하는 방식은 언제나 이렇게 생겼다. 성공했다는 신호와 성공했다는 증거가 서로 다른 곳에 찍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