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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를 짓기로 한 그곳에서…

인물이오시프 스탈린 용어국가보안위원회(KGB), 대숙청 사건대숙청

그들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누군가는 “스탈린 만세!”라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라고.

아직 잠정적으로 알려진 것은(이것도 목격자들의 이야기와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이것뿐이다. 그들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이 외딴곳으로 실어 와서, 밤마다 10~15명씩 높은 판자 울타리 안에서 갓 판 깊은 구덩이 둘레에 무릎을 꿇리고 뒤통수에 총을 쏘아 목숨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이미 죽은 채로 실려 와 똑같은 구덩이에 내던져진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매장지”가 여기 몇이나 될까? 열, 백, 천?!

반세기가 지나 우리는 그렇게 파헤쳐진 구덩이 하나의 바닥에 서 있다. 한쪽으로 열 걸음, 다른 쪽으로도 열 걸음이다. 도네츠크 키로프스키구에 있는 루트첸코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해골과 뼈, 반쯤 썩은 장화와 구두와 덧신 무더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는 그 사람들에게서 남은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이 지역 대학 역사학부 학생들이 발굴을 하고 있었다(시험 기간이었지만 그동안에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니콜라이 트카초프, 블라디슬라프 우스텐코, 드미트리 비로베츠, 니콜라이 쿠르바토프, 알렉산드르 쿠체랴비, 겐나디 루덴코다. 마케예프카 공업건설대학 학생 블라디미르 볼디레프와, 학생들이 세묘니치라고 부르는, 희고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 나이 지긋한 사람도 와 있었다.

그보다 몇 주 전 어느 일요일, 나는 시내 한복판 푸시킨 가로수길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발굴 현장 사진을 붙인 손수 만든 벽신문을 내걸고, 쉬는 시간을 쪼개 하고 있는 일에 시민들의 관심을 끌려 애쓰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호소에 응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로 한 주 뒤 나는 공원에서 열린 시민 집회에서 그 학생들을 다시 보았다. 그들은 「메모리알」 협회 회원들과 함께 자기들이 마음 졸이는 문제를 다시 한번 제기하려 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 소비에트에 보내는 편지에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루트첸코보 들판(그렇게 부르기로 하자)의 “매장지”를 조사할 정부 위원회를 만들라는 요구였다.

“매장지”라는 말에 따옴표를 친 것은, 사람들이 여기에 인류가 두루 지키는 장례 의례도 없이 아무렇게나 파묻혔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올봄 도네츠크에서 시작되었다. 루트첸코보 들판에 협동조합 「텍스틸시크」의 알록달록한 철제 차고들이 독버섯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누군가 지하실을 파다가 뼈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키로프스키구에서, 다음에는 시 전체에서 탄압 희생자들의 뼈 위에 차고를 짓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키로프스키구 지도부가 마을의 오랜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주민들은 전쟁 전에 차고가 들어서는 일대가 울타리로 둘러싸여 삼엄하게 경비되었다고 했다. 이따금 그 안에서 총소리와 비명과 신음이 들려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발굴은 짐작으로 시작했는데, 곧 유해가 묻힌 구덩이 하나에 부딪쳤고, 이어 또 하나가 나왔다… 모두 아홉 개가 발견되었다. 나란히 판 구덩이들이 이어져 참호처럼 되어 있었다. 거기서 160명의 유해가 수습되었다. 4월 하순 주 검찰청이 형사 사건 수사를 시작했다.

— 그동안 감정을 통해, — 수석 수사관 N. 보도피야노프가 말한다. — 여기서 나온 것이 스탈린 시대에 탄압을 받고 전쟁 전, 1930~1940년대에 키로프스키구에 묻힌 소련 사람들의 유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몇몇 구덩이에서 권총과 소총 탄알, 탄피가 나왔습니다. 광부 인식표 세 개, 1934년에 찍은 10코페이카 동전, 1938~1939년에 찍힌 각인이 있는 병들, 그 밖에 그 시기 물건들도 찾았습니다.

— 우리는 벌써 유해 대부분을 조사했습니다. — 주 법의학 감정국 직원 Ye. 쿠지멘코가 덧붙인다. — 우리가 보기에 이 사람들은 죽기 전에 감옥이나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거의 모두 머리를 빡빡 밀었고, 대다수는 뒤통수에 총알 구멍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 순교자들이 탄압 희생자였음을 말해 준다. 그런데 그들은 누구인가? N. 보도피야노프는 주 기록보관소, 소련군 중앙기록보관소, KGB 주 지부에 공식 조회를 보냈다. 어디서나 대체로 같은 내용의 답이 왔다. 루트첸코보 들판에 구체적으로 누가 묻혀 있는지 알려 주는 문서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 서류들을 보고 싶었지만 수사관이 미리 일렀다.

— 앞의 두 문서는 보여 드릴 수 있지만 KGB 지부의 답은 안 됩니다. “비밀” 등급이 찍혀 왔으니 먼저 허가를 받으셔야 합니다.

— 대체 거기 무슨 비밀이 있습니까?

내 물음에 N. 보도피야노프는 어이없다는 듯 두 손을 펼쳐 보였다. 비밀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아무 비밀도 아닌 것을 왜 비밀로 묶어 두는가? 일어난 일에서 발을 빼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식으로 제복의 명예를 지키고 싶은 것인가? KGB 주 지부 사람들이 수사를 도울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의 높은 전문성과 경험으로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전쟁 전에 기관에서 일한 옛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다. 그들은 그 시절 루트첸코보 들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틀림없이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판결”을 내리고 집행한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아마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매장 구덩이에 던져진 사람들 가운데 일부라도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흔히 말하듯 직무상 루트첸코보 들판의 작업을 제대로 꾸려야 했던 사람들의 태도를 이야기하자. 처음부터 시 지도부는 이 일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가 겪은 이 슬픔에 어떻게 이토록 무심할 수 있단 말인가?!

발굴은 키로프스키구 집행위원회에 맡겨졌다. 그러나 거기에 꾸려진 작업반은 끝내 작업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이 일에 몸을 던진 학생들과, 세묘니치처럼 그들과 함께하며 꼬박꼬박 들판에 나와 발굴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없었다면 일은 벌써 오래전에 흐지부지되었을 것이다. 그 시절 일을 소문으로만 아는 젊은이들인 학생들이 우리의 아픔을 가까이 마음에 품고 그 짐을 떠맡았다니 기쁜 일이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그들의 행동은 이 도시에, 무엇보다 시 당국에, 죄 없이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높은 도덕심으로, 참으로 사람답게 대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들에게 고맙다.

학생들은 루트첸코보 들판에서 진작 내보냈어야 할 협동조합이 지금도 불경스럽게 차고를 늘려 가고 있는 데 분노한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묻는다. 매장 구덩이가 예전에 짐작한 것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 왜 발굴 현장에는 필요한 장비도 사람도 없고, 왜 작업은 사실상 멈춰 버렸는가? 나는 이 물음들을 들고 도네츠크시 집행위원회 의장 G. 오니시추크를 찾아갔다.

— 매장지 면적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습니다. — 그가 말했다. — 말하자면 상황을 과소평가한 거지요. 이제 바로잡겠습니다.

몰랐다는 것은 자세히 알아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발굴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 결과가 이렇다. 하기야 그와 이야기를 나눈 이튿날, 나는 루트첸코보 들판에서 어느 군부대에서 나온 G. 모이세이 소령을 만났다. 시 집행위원회의 요청으로 부대 지휘부가 그를 이곳에 보낸 것이다. 이런 일을 이미 다뤄 본 노련한 전문가인 그는 현장을 살펴본 뒤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 최근에 파 들어간 구덩이 세 곳의 작업은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아직 경계도 확정하지 않은 구역 둘레에 필요한 경비가 없어서 도굴 사례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작업 규정에 따르면 현장에는 검찰, 국가보안과 내무를 맡은 주 지부, 위생 감독 기관의 상주 대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는 이런 경우에 꼭 필요한 조직상·기술상의 사항을 그 밖에도 많이 꼽았다. 이를테면 공식 재매장 때까지 유해를 모아 둘 곳을 따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 오늘 당장 이 내용을 정리해서 시 집행위원회에 건의하겠습니다. — 대화에 함께한 키로프스키구 공영사업국장 V. 바실리예프가 말했다. — 이런 일은 분명 우리 구 하나의 힘과 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이 옳다. 작업량이 엄청나다. 장비와 사람이 필요하고, 발굴을 꾸리고 진행할 일정표가 필요하다. 그러니 시 집행위원회가 특별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재매장은 어쩌면 죽은 이들보다 산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저마다 스탈린의 전횡과 불법에 죄 없이 희생된 이들에게 마지막 절을 올려야 할 것이다. 도네츠크주에서만 그런 희생자가 4만 명 가까이 된다. 그 방향으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우리 영혼을 무거운 도덕적 짐으로 짓누르는 끔찍한 죄를 씻어 내는 일이다. 우리는 그 짐을 벗어야 한다. 그러려면 유해를 꺼내 사람답게 다시 묻고, 이곳에 오벨리스크를 세워야 한다.

루트첸코보의 고통과 슬픔의 들판이 우리의 기억과 양심의 들판이 되도록.

B. 글로토프
(『프라브다』 통신원)
도네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