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쯔, 「길잡이」(1933)
인물예쯔, 루쉰 용어중화소비에트공화국 사건징강산에서 옌안까지: 소비에트 근거지와 대장정
1
아픔을 참으며, 류 할멈[1]은 목숨을 걸고 이 허물어진 절에서 기어 나오려 했다. 이를 악물었다. 다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 바짓가랑이에 덩어리덩어리 들러붙었고, 검붉은 고약처럼 상처를 단단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한 걸음 기어오르자, 날카로운 화살이 심장에 박히는 듯 아팠다. 두 손바닥을 땅에 짚고 다친 다리 하나를 높이 쳐든 채, 절뚝절뚝 엎드려 버티며 절 문간까지 갔지만, 더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대문 옆 돌계단에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입에서는 가늘디가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두 손바닥으로 가슴을 덮고, 침침한 눈을 간신히 뜬 채 깊은 밤하늘을 흘끗 보았다.
별들이 반짝여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밤은 깊었다, 깊었다, ……
“아직 삼경쯤밖에 안 됐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꿈만 같았다! 맞바람이 한 줄기 불어와 류 할멈은 오싹 몸을 떨었다. 정신이 조금 드는 듯했는데, 다리의 상처는 도리어 더 아파 왔다.
“고난에서 건져 주시는 관세음보살님!……”
그녀는 불쑥 이렇게 외쳤다. 본래 세 아들이 죽임을 당한 뒤로 류 할멈은 그 무슨 관세음보살 따위를 통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자기도 모르게 또 외치고 있었다, 사람이 위급할 때 엄마를 부르듯이.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세상에 보살님 말고는 이 괴로운 심정을 알아줄 사람이 둘도 없을지 모른다고. 그녀는 또 버릇대로 빌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님! 제가 마흔 해 넘게 모셔 왔으니, 이번만은 좀 보살펴 주셔야지요. 내 아들들, 내 목숨아!……저는 그저 이 피바다 같은 원수만 갚으면 됩니다! 보살님! 저는, 저는, ……”
곧이어 아들들이 하나씩 하나씩 그녀 앞에 가로누웠다.
맏이는 일곱 칼, 머리는 어디로 떨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창자가 가닥가닥 땅에 끌렸다. 어린 것들은? 하나에 세 칼씩. 셋 다 팔다리가 잘려 나갔다. 땅바닥은 온통 새빨간 피였다. “비적 군대 첩자 ××× 참수”라고 적힌 종이 표 셋이 그 짙붉은 피 웅덩이에 가로 잠겨 있었다.
하늘이여!
류 할멈은 이를 힘껏 깨물었다. 부서진 조각처럼 아프게 찢긴 그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다시 필사적으로 계단에서 기어 일어나 앉아, 깊고 독한 한숨을 내쉬었다. 손등으로 늙은 눈을 비비자 눈물이 다시 두세 줄기 흘러내렸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캄캄한 사방을 한동안 둘러보았다.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오늘 밤 일이 퍼뜩 떠올랐다. 그녀는 아픔을 참고 아들들을 하나씩 머릿속에서 내던지고, 정신을 모아 눈앞의 큰일을 궁리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날이 밝아야 여기 닿을 모양이고, 그놈들은 그전에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어젯밤 형제들이 모두 말해 주었다, 그놈들이 틀림없이 토지신 사당까지 왔으니 늦어도 날이 밝을 때면 꼭 이곳까지 쳐들어올 거라고. 그래서 그녀는 형제들의 호의를 뿌리치고, 함께 물러나기를 한사코 마다했다. 형제들이 제 친어미처럼 모셔 주었는데도. 그녀는 다정하게 형제들에게 일렀다. 혼자 여기 남아 있어도 된다고, 그놈들을 상대할 방법이 따로 있다고. 그녀는 늙었다, 벌써 쉰 살이 넘은 사람이다, 무엇이 더 무섭겠는가? 아들을 위해서, 위해서……어떻게 하든 달게 받을 것이었다. 모든 것을 내던진 지 오래였다. 제 다리를 상하게 해 놓고 아픔을 참았으며, 그저 그놈들이 다시 여기 오지 않을까 그것만 걱정했다.
오경 무렵이었다. 류 할멈은 기다렸다. 하늘의 별들도 다 졌다.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지?”
같은 걱정을 되풀이했다. 그놈들이 다시 오지 않아 계산해 둔 모든 것이 쓸 수 없는 물거품이 될까, 그것만 두려웠다. 그러면 고생이 정말 헛것이 아닌가! 그녀가 다시 몸을 눕혔을 때, 아득히 먼 데서 벌써 한 소리가 났다. ——
탕!
그러나 소리가 몹시 가늘어 류 할멈은 아직 제대로 듣지 못한 듯했다. 곧 또 ——
탕! 탕! 탕!……
잇달아 두세 번 울리자 비로소 좀 들렸다.
“왔나?”
두 귀를 있는 대로 열었다. 소리는 더 촘촘해지는 듯했다.
탕! 타타탕! 따다다닥!……
“정말 왔구나!”
그녀는 깨달았다. 마음이 갑자기 팽팽해졌다! 조금 허둥대면서, 또 조금 놀랍고 기뻤다.
“좋아, 좋아, 좋다!……”
그녀는 뱃속으로 외쳤다. 몸이 가늘게 떨렸다. 떨렸지만 그놈들이 오는 게 두려운 것은 결코 아니었고, 까닭 없이 그저 이 늙고 부서진 마음속에 말 못 할 쓰라림이 아직도 잔뜩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 바짝 귀를 기울이니 총소리는 더 촘촘하고 더 또렷해졌다. 아마 그놈들이 여기 형제들이 모두 물러간 줄 알고 일부러 위세를 부리는 것이리라! 잇달아 기관단총과 박격포도 일제히 다급해졌다.
류 할멈의 마음은 더 다급해졌다. 눈물이 포화 소리에 섞여 줄줄이 흘러내렸고, 하마터면 목 놓아 울 뻔했다! 두렵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겪는 일이 너무나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단 말인가! 쉰 살, 예순 살 되는 사람이 이런 재난을 또 당해야 하다니? 아들들, 자기 자신, ……전생의 죄업이구나!……
류 할멈은 쓰라림을 어떻게든 눌러야 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다리가 아파 정신이 아득해졌다. 총소리는 여전히 촘촘했고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는 용기를 냈다. 참혹하게 죽은 세 아이만 생각하면 어떤 고통도 다 잊을 수 있었다.
유탄이 곁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아픈 다리를 안고 계단 아래로 굴러 내려왔다.
총소리가 갑자기 잠시 멎었다. 하늘이 곧 밝아 오려 했다. 이어서 —— 띠따딴! 띠따딴!……
—— 죽여라!
돌격하는 함성이 이쪽으로 곧장 덮쳐 왔다. 류 할멈은 더욱 허둥댔다.
함성이 가까워지자 사방 골짜기의 메아리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허둥대던 그녀는 눈을 꼭 감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어지러운 총소리 몇 방이 날아가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둘러쌌다. 류 할멈은 이제 더더욱 눈을 뜰 것도 없었다. 마음을 모질게 한 번 먹고, 숨 반 모금도 내쉬지 않으며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다.
“와 봐라! 어차피 이 늙은 목숨은 더 살지도 못할 테니!”
2
임시 법정은 그리 당당하지 못했으나 살기만은 여전히 가득했다. 모제르 권총을 찬 병사 여덟이 양쪽으로 갈라 섰고, 가운데에는 지장보살 앞에 있던 제상이 놓여 있었다. 연대장 셋과, 류 할멈을 손수 붙잡은 중대장도 함께 불려 와서 대대적인 신문을 치를 채비를 했다.
여단장이 지장보살 뒤에서 나왔다. 양쪽에서 한 소리 “차렷!” 그는 성큼성큼 제상 앞으로 걸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병사 여덟을 쓱 훑어보았고, 인단 수염[2]을 두세 번 치켜올린 다음, 가운데 긴 의자에 앉았다.
“쉬어!”
연대장 셋은 여단장 오른쪽에 앉았다. 서기관은 여단장 왼손 가까이 앉았다.
“여봐라!” 여단장의 수염이 떨렸다. “그 할망구를 끌어 올려라!”
“예!”
류 할멈은 악에 받친 병사 셋에게 끌려 공당에 올랐고, 정신은 이미 혼미했다. 그녀는 눈을 있는 대로 부릅떴다. 그녀는 보았다. 사방이 온통 사람을 잡아먹고 뼈도 안 뱉는 마왕들이다. 위에 꼿꼿이 앉은 다섯은 모두 피 대야만 한 입을 벌려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는 것 같고, 양쪽에 선 놈들은 영락없는 우두마면 떼다. 이, 하늘이여! 저놈들이 황진둥에서 한꺼번에 형제 삼백여 명을 쓸어 죽이지 않았던가? 제 아들들을 죽인 원수가 아니던가? 그렇다, 그놈들은 다 한패다. 저놈들은 다 마귀다, 마귀야!…… 류 할멈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피가 쏟아질 것 같았다. 정말로 덮쳐들어 한 놈 한 놈 끌어내려 물어뜯고, 심장과 간을 모조리 파내어 아이들의 원수를 갚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다! 눈만 멀겋게 뜨고 분노의 불길을 쏘아 보낼 뿐, 더구나, 그녀는 또……
류 할멈은 죽을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분노의 불길을 한 덩이씩 삼켜 제 뱃속에서 태웠다. 눈물을 흘리며, 엄한 신문 앞에서, 그녀는 마침내 모질게 마음먹고 혀를 돌렸다.
“나리! 저는, 저는 성이 황가고, 친정은 랴오가입니다!……”
“어떻게 여기 왔는가?”
“그해에 핑장에 비적이 들어서[3] 저희 식구는 몸 둘 곳이 없어, 다들 샹인 성안으로 달아났습니다. 아마 지난달이었지요, 어느 나리의 군대인지 여기 오셔서 곳곳에 방을 붙이고, 비적은 다 죽였으니 백성은 모두 핑장으로 돌아오라 했습니다. 저는, 저는 세, 세 아이를 데리고 돌아와서, 이 허물어진 절 옆에 작은 움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알았겠습니까, 하늘이여! 그 나리의 군대는 무슨 일 때문인지 며칠 뒤 캄캄한 밤에 몰래 물러갔고, 저희는 전혀 몰랐습니다. 비적이 에워싸고서야 깨어났습니다. 나리! 저희는, 저희는, ……흑! 흑!……”
류 할멈은 목 놓아 울었다. 그토록 서럽게!
“그 뒤 너희도 다 비적이 되었느냐?”
“흑! 흑!……”
“말해 봐라!”
“가엾게도, 가엾게도, 나리! 그 뒤, 그 뒤에 제 세 아들은 모두, 모두 그놈들에게 잡혀가서, 죽, 죽, 죽었습니다! 흑!……”
“죽었다고?” 여단장이 깜짝 놀랐다. “그럼, 너는?”
“흑! 흑! ——……”
“너, 너는 말해라, 말해 봐!”
여단장의 인단 수염이 점점 높이 치켜 올라갔다.
“저는, 저는, 나리! 저는 그때 까무러쳤습니다. 그 뒤, 그 뒤에 깨어나서, 그놈들에게 목숨 걸고 달려들었습니다!……제겐 샹인에 손자가 둘 있어서, 그때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자들에게 일러서, 나중에 제 아비 원수를 갚게, 갚게, 갚게 하려고요!……그래서 그놈들 손에 이 절에 갇혀 옷을 기웠습니다! 흑! 흑! ——……”
“그 뒤엔?” 뚱뚱한 연대장이 물었다.
“그 뒤엔, 나리! 눈물을 머금고 보름 동안 그놈들 옷을 깁는데, 몇 번이나 빠져나갈 길이 없었습니다. 줄곧, 줄곧 어젯밤까지 그랬는데, 그놈들 사이에 갑자기 소란이 일어나 달아나려는 듯했습니다. 저는 짐작이 좀 가서 이 틈에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뜻밖에, 뜻밖에, 나리! 그놈들이 제 속을 다 알아본 듯이 저더러 함께 물러가자 했습니다. 제가 옷을 곧잘 깁는다면서요. 다짜고짜 불을 질러 제 초막을 다 태워 버리고는, 함께 랴오산쭈이로 물러가자 했습니다!……”
“랴오산쭈이!” 여단장은 깜짝 놀랐다! 이곳에 처음 온 그는 아직 ‘랴오산쭈이’가 어디인지 몰랐다.
“너는 갔느냐?” 그가 다시 물었다.
“저는, 저는 함께 안 가겠다 했습니다, 나리! 그랬더니 그놈들이 모질게 제 뺨을 몇 대 갈기고, 총대로 제 다리를 힘껏 내리쳤습니다. 저는 완전히 까무러쳤습니다. 깨어, ……깨어 보니 그놈들 자취는 벌써 보이지 않고, 제 다리는 온통 피투성이였습니다!……그 뒤에, ……”
그러자 류 할멈을 붙잡은 중대장도 올라와서, 그녀를 붙잡을 때의 사정을 보고했다. 할망구가 제 입으로 말한 그대로, 절 문밖 돌계단 아래 쓰러져 있었다는 것이다.
여단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류 할멈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황 할머니, 비적들이 랴오산쭈이로 함께 물러가자고 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나리! 부디 좋은 일 하시는 셈 치시고, 저를, 저를 샹인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거기 손자 둘이 있습니다. 나리의 큰 은덕을 세세생생 잊지 않겠습니다!……나리께서 벼슬이 높아지시기를!……흑! 흑!……”
쿵쿵!……그녀는 얼른 땅에 엎드려 소리 나게 두세 번 머리를 조아렸다!
“좋소. 할머니도 참 가엾구려. 이 나리가 꼭 사람을 붙여 샹인으로 보내 주겠소.” 여단장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들어 당번병에게 일렀다. “가라! 양 참모를 모셔 오고, 군용 지도를 가져와 보라 해라.”
“예!”
“나리! 좋은 일 하시는 셈 치고, 저를 샹인으로 보내 주십시오!……”
“음!”
양 참모가 지도 한 뭉치를 들고 나왔다.
“여단장께 보고합니다, 지도를 찾으시렵니까?”
“그렇소. 랴오산쭈이가 어디인지 찾아봐 주시오.”
양 참모가 지도를 제상 위에 올리자, 네다섯이 나누어 찾기 시작했다.
황진둥, 류지진, 싼화이차오, 리쯔링, ……
“없습니다, 여단장님! 이런 곳은.” 양 참모가 보고했다.
“없습니다, 핑장 사방 어디에도 없습니다!”
연대장 셋이 모두 회답했다. 여단장 자신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럼, 황 할머니는 랴오산쭈이를 아시오?”
“작은 골짜기입니다, 동쪽으로, 오십 리 남짓. ……거기가 제 친정입니다, 나리! 거긴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안 삽니다.……”
네다섯이 또 동쪽을 열 번 넘게 뒤졌으나 여전히 찾지 못했다.
“우리를 데려가 줄 수 있겠소, 황 할머니?”
“저는, 저는, 나리!……저는, 저는, 저는 못……”
“괜찮소.” 여단장이 나직이 달랬다. “그저 우리를 데려가기만 하시오! 비적을 따라잡으면 할머니도 공이 있는 거요! 게다가 아들들 원수도 갚고, 나중에 샹인으로 보내 줄 때 노후 자금도 좀 주겠소!……”
“저는, 저는 못 걷습니다, 못 걸어요!……나리, 좋은 일 하시는 셈 치시고!……”
“여기 가마가 있소. 황 할머니, 겁내지 마시오. 따라잡기만 하면 아들들 원수를 갚을 수 있소.”
“저는, 저는 정말, ……”
“여봐라!” 여단장이 아래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 황 할머니를 부축해 내려가 잘 돌봐 드리고, 좋은 밥 한 끼 대접해 드려라!……”
3
정탐병의 보고에 따르면 비적들은 확실히 동쪽으로 물러갔다. 다만 얼마나 멀리 물러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단장과 연대장들과 여단 사령부 참모들이 엄숙하게 한바탕 상의했는데, 다들 추격해야 한다고 여겼다. 황 할머니 말이 거짓일 리 없었다. 그토록 충직한 늙은 여인이, 게다가 비적들에게 다리까지 부서졌으니.
추격, 반드시 추격!
오후에 여단 전원이 다섯 대로 나뉘어, 가장 날카로운 기관단총 중대를 첨병으로 삼았다. 제1연대는 제2·제3 두 대로 나뉘어 전위를 맡았다. 제2연대는 제4대였다. 제3연대와 여단본부 특무대대·포병대대는 제5대였다. 대마다 삼 리, 오 리, 또는 십여 리씩 사이를 두고, 한 걸음 한 걸음 비적 지구로 바싹 다가갔다.
류 할멈은 덮개 없는 가마에 앉았다. 건장한 가마꾼 둘이 가마를 메고, 정탐병과 첨병 몇을 이끌어 맨 앞을 달렸다. 그녀의 심장은 쿵쿵 뛰었고, 이게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목숨은 벌써 내던져 둔 것, 그녀는 이번 일이 이루어지기를 경건하게 빌었다. 보살님, 신령님, ……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긴 뱀처럼 저 멀리멀리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가마꾼들에게 일러, 아주 훤한 샛길을 따라 나아갔다.
들에는 사람 그림자 반쪽도 없었고, 산새와 들짐승마저 자취도 없이 달아났다. 숲은 더욱 고요했다. 바람이 없어 나뭇잎은 꿈쩍도 하지 않고, 제 운명을 점치듯 힘없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가, 류 할멈이, 첨병들을 이끌고 산골 어귀를 하나 지날 때마다 마음은 몇 분씩 가라앉지 않았다. 배가 부른 듯 먹먹한, 허둥대는 것도 아니고 겁나는 것도 아닌!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그렇게 말 못 할 이상한 맛이었다! 그 때문에 눈물이 더 자주 흘렀다. 산 어귀를 하나씩 지날수록 류 할멈의 마음은 차츰 차올랐다.
하늘은 유난히 어두웠다. 첨병이 수색하며 사십 리 밖까지 나아갔을 때는 벌써 황혼이 가까웠다. 사방이 온통 산언덕으로 겹겹이 앞을 막았다. 바라보면 앞에 더는 길이 없는 듯했는데, 산골 어귀를 또 돌아서면 저쪽에 텅 빈 논밭이 한 자락 있고, 저쪽에도 산언덕이 막아서 있었다!……
고요히 나아가, 류지진까지 산골 어귀 두세 개만 남았다. 공중에 매달려 있던 류 할멈의 마음도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번엔 더는 어긋나지 않겠지! 간신히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그러자 한바탕 가슴이 시큰해지며, 머릿속에 곧 아이들 모습이 떠올랐다.
“얘들아!” 그녀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너희 혼령이 흩어지지 않았거든, 너희 형제들을 도와 너희 원수를 갚게 해 다오, 원수를, 나는, 나는!……기다려라! 나는, 엄마도 곧 너희를 따라가마!……”
눈물이 한 움큼씩 흘러내렸다.
“산등성이 하나만 넘으면 랴오산쭈이 마을 거리가 보입니다.” 류 할멈은 얼른 눈물을 닦고 첨병에게 일렀다.
“저 골짜기 너머가 랴오산쭈이요?”
“그렇습니다!”
첨병들이 갈라져 산꼭대기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한 첨병이 소리쳤다. “맞다! 저기 마을 거리가 한 줄 있다, 한 줄, 붉은 깃발도 있다!”
“깃발?” 또 하나가 쫓아 올라왔다. “맞다, 하나, 둘, 셋, ……왕더성, 얼른 내려가 중대장께 보고해!……”
그러자 제1대가 먼저 멈추어 산개했다. 이어 제2대 전위도 달려와 산개하여, 좌우로 에워싸는 형세로 붉은 깃발 꽂힌 목표를 향해 돌진할 태세를 갖추었다.
“황 할머니, 가시오! 여긴 이제 할머니가 쓸데없소, 어서 후방으로 물러나시오!”
첨병 중대장은 얼른 류 할멈을 손짓해 물리고, 기관단총 병사들을 이끌어 정면 돌격을 준비했다.
마지막 골짜기 어귀를 넘자 앞쪽 마을 거리와 깃발은 흐릿한 윤곽만 남았다. 세 갈래 기관단총과 보병총·기병총이 일제히 괴상하게 울부짖었다.
탕! 탕! 탕! 탕!……따다다닥!……드르르륵!……
반 리 남짓 돌격하자 뒤쪽 제3대 지원군도 거의 닿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맞은편 마을 거리에서는 아무 응사가 없었다.
“잘못된 건가?”
중대장은 곧 기관단총 사격을 멈추라 명령했다. 아주 또렷하게, 좌우 양익의 총소리만 들렸다.
“큰일이다! 적의 술수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외쳤다. 그는 뒤쪽 지휘부의 명령이 오면 다시 공격하려 했다. 기다리는데, 좌우 양익의 총소리가 멎었다.
사방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어찌 된 거지?”
모두 깜짝 놀랐다!
“저 마을 거리 뒤에 숨어 있는 거 아닐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한 번 더 돌격해 보자. 앞뒤좌우 연락만 잃지 않으면 괜찮다. 어차피 이 골짜기까지 돌진해 들어왔으니.”
뒤쪽 지휘관도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대부대는 또 소리를 죽여 앞으로 나아갔다. 하늘은 벌써 사람 그림자도 못 알아볼 만큼 어두워졌다.
류지진!
적은 한 명도 없었다. 깃발 몇 개는 허세로 꽂아 놓은 것이었고, 마을 거리에는 귀신도 없었다. 부서진 작은 가게 간판들을 손전등으로 비추어 보니 알아볼 수 있었다. 똑똑히, 여기는 “류지진”이었다.
“류지진? 어떻게? 여기가 랴오산쭈이 아니었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다들 일제히 술렁였다. 제2대, 제3대가 다 도착해, 족히 한 연대가 넘는 병력이 이 골짜기에 몰려 있었다. 나머지는 아직 십 리쯤 떨어져 있었다.
하늘은 옻칠처럼 새까맸다.
“큰일 났다!……” 뚱뚱한 연대장은 속이 탔다. “이번엔 적의 꾀에 걸렸구나. 그 귀신 같은 할망구는 틀림없이 내력이 수상하다. 버젓이 류지진인데, 일부러 ‘랴오산쭈이’라고 둘러대다니!……”
물러날까? 여기 주둔할까? 갑자기 ——
탕! ——
맞은편 산에서 한 발. 뚱뚱한 연대장이 흠칫했다. —— “뭐야?”
이어서 사방이 일제히 울렸다.
탕! 탕! 탕!……
따닥! 따닥! 따닥!……다다!……
쾅! 쾅! 쾅!……
“산개!……산개!……” 장교들이 외쳤다. 분대장들이 전달했다.
총구마다 불꽃이 한 덩이씩 솟아올랐다! 유탄은 혜성처럼 꼬리를 끌었다.
4
여단장은 분에 못 이겨 온몸을 떨었다. 이튿날 오후까지 버텼는데도 제1연대에서 차례로 복귀한 병력은 한 중대도 안 되었다. 그의 수염은 거의 하늘까지 치켜 올라갈 판이었다.
그는 사람을 시켜 류 할멈을 제 앞에 내동댕이치게 하고, 가죽 채찍을 쳐들고 마구 외치며 펄쩍펄쩍 뛰었다.
그는 사람됨을 완전히 잃었다.
“야, 야! 말해, 말해! 이 포주 같은 년아! 왜 우리를 속였어? 왜 류지진을 랴오산쭈이라 했어? 말해, 말해, ……네 에미를 씹할!……”
철썩철썩!……
채찍이 머리고 몸이고 가리지 않고 류 할멈을 때렸다. 류 할멈은 벌써 아무 감각도 없었다.
“말할 거야, 안 할 거야? 네 에미를 씹할!……”
철썩! 철썩!……
“찬물 가져와! 네 에미를 씹할!……”
류 할멈의 온몸이 한 번 떨렸다. 찬 기운이 머릿속까지 곧장 뚫고 들어오자 갑자기 정신이 조금 들었다. 눈앞에 수없는 금빛 뱀이 번뜩이고, 귓가에 천둥과 지진 같은 소리가 울렸다.
“말할 거야, 안 할 거야? 네 에미를 씹할! 왜 우리를 속였어? 왜 비적들 첩자 노릇을 했어? 비적들과 한통속이지?……”
류 할멈은 피붉은 눈을 한 번 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각이 차츰 돌아왔다. 그녀는 굴러가서, 마지막 힘으로 놈들을 몇 번 물어뜯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아파 반걸음도 옮길 수 없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크게 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말해 주랴? 사람을 잡아먹고 뼈도 안 뱉는 이 강도 놈들아! 이번에 너희를 하나하나 다 죽이지 못한 것만 한이다! 나는, 나는 이 개 같은 강도 놈들의 살을 물어뜯고 싶다! 내 아들들을 다 너희가 죽이지 않았느냐? 황진둥의 형제들을 다 너희가 죽이지 않았느냐? 집을 다 너희가 태우지 않았느냐? 너희는 올 때마다 사람을 죽이고, 가는 곳마다 불을 질렀다! 너희 살을 산 채로 벗기고 싶어, 내 다리를 내가 기꺼이 부러뜨렸다! 나는, 나는, ……”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굴려, 한 놈을 끌어안고 물어뜯으려 했다!……
“야!” 여단장이 갑자기 괴상하게 소리쳤다. “네 에미를 씹할! 네 에미를 씹할! 네년이 비적 군대의 첩자였구나!……네 에미를 씹할!……” 그는 손에 든 브라우닝 권총을 류 할멈의 가슴에 겨누어 사정없이 한 방. ——
탕!
류 할멈은 구르다가, 몸이 허공에 뜬 듯했고, 온몸의 감각이 찰나에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미소 지었다.
저 멀리서 전령병이 보고서 두 장을 들고 달려왔다. ——
“여단장께 보고합니다! 제1연대 왕 연대장은 어젯밤 확실히 비적 군대에 포로로 잡혔습니다! 지금 제2·제3 두 연대가 모두 버티지 못하니, 어서 퇴각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퇴각!” 여단장의 다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았다. “그년 에미를 씹할! 이번에, 이번에, ……그년 에미를 씹할.……”
1933년 9월 29일, 깊은 밤, 상하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