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브라크 카르말

ببرک کارمل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 공산주의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1929–1996 ○ 사망

소련 침공으로 집권했으나 국민적 정당성을 얻지 못한 아프가니스탄 공산정권의 얼굴

"소련 동지들은 나를 한없이 사랑하며, 내 개인적 안전을 위해 내 명령조차 따르지 않는다": 꼭두각시 대통령이 친구에게 털어놓은 자기 유폐의 실상.

바브라크 카르말은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PDPA)의 창립 멤버이자 파르참(깃발) 분파의 지도자로, 1978년 4월 혁명 후 부수상이 되었으나 곧 칼크파의 숙청으로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좌천되었다. 프라하에서 해임된 뒤 아프간 정권의 암살단을 피해 체코슬로바키아 비밀경찰의 보호 아래 숲속 오두막에서 은신했으며,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함께 대통령으로 복귀했다. 집권 기간 중 사면령, 새 국기 채택, 기본원칙 헌법 제정 등으로 정권의 기반을 넓히려 했으나, 소련의 꼭두각시라는 인식을 벗지 못했고 무자헤딘 반군과의 내전은 교착에 빠졌다. 1986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해임된 뒤 모스크바로 망명하여 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86~1996: 모스크바 반유폐와 카불 복귀, 그리고 죽음

카르말은 1986년 11월 사무총장직과 혁명평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모스크바로 보내졌지만, 곧바로 권력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당내에 남아 있던 지지 기반을 이용해 후임 나지불라의 권한을 견제했고, 자신이 다시 사무총장에 복귀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나지불라는 소련 지도부에 카르말이 여가 시간 대부분을 나지불라의 오류를 찾아내고 '민족 화해'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데 쓴다고 불평했다. 1986년 11월 13일 소련 정치국 회의는 카르말을 축출하기로 결정했고, 같은 달 PDPA 회의가 그를 혁명평의회 의장직에서 해임했다. 카르말은 모스크바에서 국유 아파트와 다차를 받았고, 그를 대신해 혁명평의회 의장이 된 하지 모하마드 참카니는 PDPA 당원이 아니었다.

1991년 나지불라의 초청으로 카르말은 6월 20일 카불로 돌아왔다. 나지불라가 당명을 와탄당으로 바꾼 뒤 친카르말 파르참계를 달래 권력을 강화하려 했다면, 그 시도는 실패했다. 카르말의 아파트는 나지불라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1992년 나지불라 정권이 무너진 뒤 카르말은 파르참 지도부를 통해 카불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인으로 부상했으나, 반군과의 협상은 곧 결렬되었고 4월 16일 굴부딘 헤크마티아르가 이끄는 반군이 카불을 장악했다. 이후 카르말은 하이라탄에 머물며 새 정당을 만들거나 압둘 라시드 도스툼의 준비시밀리(이슬람 민족 운동)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시간을 보냈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가 도스툼에 대해 실제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992년 6월 그가 도스툼과 함께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1996년 12월 초 카르말은 모스크바 중앙임상병원에서 간암으로 사망했다. 사망 날짜는 출처에 따라 12월 1일로도, 3일로도 보고된다. 탈레반은 그의 통치를 '불법적 통치 기간에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고 규정하며 그의 죽음을 선전에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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