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그단스크 파업 계획을 입안하고 MKS를 공동 설립한 연대노조의 설계자
레닌 조선소에서, 레닌의 이론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접어 버렸다.
1980년 8월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 파업의 실질적 설계자로, 파업 계획을 입안하고 21개 요구를 분류·우선순위화했으며 공장간파업위원회(MKS)를 공동 창립한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가이자 역사가이다. 1981년 12월 계엄 선포 후 4년 넘게 지하에 숨어 불법화된 연대노조의 지하 조직망을 재건했고, 여성으로 변장해 딸의 세례식에 참석할 정도로 철저히 은신했다. 1986년 체포되었다가 사면으로 풀려났고, 공산정권 붕괴 후 국회의원·상원의장·내무차관을 거쳐 2010년에는 몇 시간 동안 폴란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독특한 이력을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68시위 전단 배포로 체포·3년형 선고, 1969년 사면
- 1977–1978자유해안노조(WZZ) 공동 조직
- 1980.08그단스크 조선소 파업 계획 입안·MKS 공동 창립
- 1981–1986계엄령 아래 지하활동, 임시연대조정위원회 위원
- 1991–2001폴란드 하원의원(3선)
- 1997–2000내무행정차관(경찰 담당)
- 2005–2015폴란드 상원의장(3선)
- 2010.07.08대통령 권한대행(수 시간)
관련 역사 사건
1968~1978년: 그단스크 반체제 인맥과 해안 자유노조
보루세비치의 반체제 경력은 1980년 파업보다 10여 년 앞서 시작되었다. 그단스크 인근 리츠바르크바르민스키에서 태어나 그디니아의 미술학교 재학생이던 1968년 5월, 학생 시위를 지지하는 전단을 인쇄·배포한 혐의로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고 1969년 7월 사면으로 풀려났다. 1975년 루블린 가톨릭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해 졸업한 뒤, 1976년 라돔 등지의 파업 노동자 지원 운동과 헌법 개정 반대 서명 운동에 참여했고 그해 11월부터 노동자방위위원회(KOR)와 그 후신인 KSS KOR에 협력했다. 1978년부터는 그단스크 해안 지역의 자유노조(WZZ) 조직에 참여해 비합법 신문 《로보트니크》와 《로보트니크 비제주》의 편집을 맡았고, 지하 출판물의 인쇄와 유통을 담당했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는 1970년 12월 사건의 기념 행사를 조직했다. 이 시기 그는 바르샤바의 야체크 쿠론에 비견되는 그단스크 반체제 인맥의 연락책 역할을 했다. 1980년 8월 레닌 조선소 파업을 준비할 수 있었던 기반은 이렇게 지하 출판·노동자 지원·지역 조직화 작업을 통해 미리 축적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