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이스라엘

2 명

해당 인물

이스라엘 게츨러

ישראל גצלר
연구자 독일·이스라엘 폴란드 1920–2012 ○ 자연사

크론시타트 봉기를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최후'로 해석한 역사가

어느 날 오전 11시에 논쟁을 중단해야 했는데, 그가 다섯 시간 뒤 돌아와서는 연결하는 말 한마디 없이 바로 '일곱째로, 레닌은…' 하고 중단된 지점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베를린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나치 시절 시베리아 금광촌을 거쳐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고, 1971년 이후 히브리대학 교수로 러시아 혁명사를 연구했다. 마르토프 평전(1967)으로 멘셰비키 지도부의 전략적 선택을 조명했으며, 『크론시타트 1917-1921』(1983)에서는 페트로파블롭스크호와 세바스토폴호 승무원의 93.9%가 1917년 이전 입대자임을 함대 명부로 입증해 봉기 참여자들이 '농민 복장의 백위파'가 아니라 혁명의 구주역들이었음을 실증했다. 소련사에서 개인과 집단의 선택이 결정적이었다고 보았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정착촌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8나치에 의해 가족과 함께 폴란드로 추방
  • 1941소련 당국에 의해 시베리아 금광촌으로 이주
  • ~1945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
  • ~1950s애들레이드 대학에서 역사학 학위 취득, 이후 교수 임용
  • ~1960s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에서 기록연구
  • 1967『마르토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정치적 평전』 출간
  • 1971히브리대학 교수 취임
  • 1983『크론시타트 1917-1921: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운명』 출간
  • 2002『니콜라이 수하노프: 러시아 혁명의 기록자』 출간

야아코브 로이

יעקב רועי
연구자 이스라엘 이스라엘 1932– ○ 명예교수

소련 사회와 유대인의 역사를 잇댄 역사가

그는 전쟁의 장기적 국내 영향이 국제적 파장보다 훨씬 광범위했다고 분석했다.

야아코브 로이는 소련의 유대인, 이슬람, 중동 정책과 소비에트 사회를 연구한 이스라엘 역사가다. 그는 문서 연구와 사회조사를 결합해 국가 정책이 민족 공동체와 대중의 정치 의식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출혈하는 상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국내적 비용과 유산을 분석하며,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주민의 태도 차이를 통해 전쟁과 소련 붕괴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 실증 자료를 보탠다.

상세 이력 보기
  • 1954케임브리지대학교 역사학 학사
  • 1960–1965바이츠만 기록보관소 연구원
  • 1972–1974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강사
  • 1977–1982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연구센터 소장
  • 1982–1990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부교수
  • 1990–2003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정교수
  • 2001–2002컴밍스센터 소장
  • 2003–텔아비브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