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세르게예비치 리하초프

Дмитрий Сергеевич Лихачёв
러시아 러시아 1906–1999 ○ 자연사

솔로프키를 살아남은 고대루스 문학의 세계적 권위자, 후기 소련의 도덕적 양심

1929년 가을 솔로프키. 체포대가 온다는 말을 듣고 장작더미 속에 숨어 밤새 총성을 들었다. 날이 밝자 깨달았다. "내 대신 죽은 이를 위해 두 사람 몫을 살아야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문헌학자·문화사가. 1928년 반혁명 활동으로 솔로프키 수용소에서 4년간 복역했다. 석방 후 푸시킨관에서 고대루스 문학을 연구했으며, 『이고리 원정기』 연구와 『고대루스 문학 기념물』 총서 편찬을 주도했다. 1970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1986년 소비에트 문화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평생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고 사하로프 제명에 반대했으며, 페레스트로이카기에는 인민대표로 활동하며 '러시아의 양심'으로 불렸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고대루스 문학 기념물』 총서와 문헌학적 유산

리하초프의 학문적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업적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L. A. 드미트리예프와 함께 편집·서문을 맡은 12권의 『고대루스 문학 기념물(Памятники литературы Древней Руси)』 총서다. 11세기부터 17세기까지 러시아 문학의 주요 원전을 망라한 이 총서는, 연대기·성인전·군사담·서간문·풍자문 등 다양한 장르를 현대 러시아어 번역과 함께 제공하여 학계는 물론 일반 독자들도 고대루스 문학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리하초프는 이미 1962년 『텍스트학(Текстология)』에서 문헌 비평의 방법론을 정립했고, 1967년 『고대루스 문학의 시학』으로 장르 체계·예술적 시간·공간 개념 등 고대 문학의 독자적 미학을 이론화했으며, 같은 해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연하며 서방 슬라브학계와도 활발히 교류했다. 1997년부터는 후속 작업인 『고대루스 문학 도서관(Библиотека литературы Древней Руси)』 시리즈 편집에 착수해 사후에도 출간이 이어졌다. 이 작업들은 고대루스 문학을 단순한 중세 텍스트의 집합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재구성한 기념비적 성취로 평가된다.

페레스트로이카기 러시아의 양심: 문화재단과 인민대표

1986년 11월, 리하초프는 막 창설된 소비에트 문화재단(1991년부터 러시아 문화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문화재단은 국가 예산과 기부금을 결합한 공공기구로, 리하초프는 이 자리에서 러시아 정교회에 솔로베츠키·발람 수도원 반환을 공개 지지하고, 망명 문화인사의 귀환을 추진했으며, 전국 각지의 사라져가는 문화유산 보존 사업에 착수했다. 그의 지도 아래 재단은 『나셰 나슬레디예』(우리의 유산) 잡지를 창간하고 소련 전역에 지부를 열었다. 1989년 소비에트 문화재단 할당 의석으로 소련 인민대표에 선출된 그는 의회에서 문화예산 확대를 주장하는 한편, 1980년 과학아카데미에서 사하로프 제명을 거부했던 몇 안 되는 회원으로서 글라스노스트 아래에서도 원칙 있는 목소리를 냈다. 1995년에는 국제적으로 「문화권 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Culture)」 초안을 발표해 문화유산 보호를 인권의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그는 평생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고 소비에트 체제와 타협하며 일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도덕적 권위를 이용해 체제의 폭력성을 조금씩 허물었다. 보리스 옐친아나톨리 솝차크의 비공식 고문을 맡았고, 1993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의 명예시민이 되었다. 1980~90년대 러시아 사회에서 '러시아의 양심'으로 불린 것은 이 같은 공적 실천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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