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사드 학살로 번진 바치카 군사 개입을 명령하고, 뒤에 병력 보존과 서방 접촉을 꾀한 참모총장
모손에서 크나우스(크나우즈) 페렌츠로 태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참모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을 치렀고, 1934년 어머니의 성인 솜버테이이로 바꾸었다. 1941년 카르파티아 집단을 이끌고 소련 침공에 참가했다. 그해 9월 베르트의 뒤를 이어 참모총장이 되었고, 1942년 1월 페케테헐미체이드네르에게 바치카 군사 개입을 명령해 이것이 세르비아인 마을들에 대한 징벌 작전과 노비사드 학살로 번졌다. 1943년 학살 책임자들에 대한 조사와 군사재판을 열었고, 칼러이와 함께 서방 연합국과의 접촉을 이끌었다. 1944년 독일 점령 뒤 해임되었고, 전후 인민재판소에서 종신형을 받은 뒤 유고슬라비아로 넘겨져 1946년 페트로바라딘에서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1–1944 군사·지휘 · 헝가리
- 1926–1938 교육 · 헝가리
경력 연표
- 1914–1918오스트리아-헝가리군 참모장교
- 1926–1938루도비카 군사 아카데미 교관, 교장
- 1938–1939참모차장
- 1941카르파티아 집단 사령관
- 1941–1944참모총장
- 1946인민재판소 종신형, 유고슬라비아 인도 뒤 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