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추샤 로켓의 아버지, RS‑82·RS‑132를 완성하고 '우주비행학'이라는 말을 만든 기술자
1921년 크론시타트 반란 당시, 반란군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3월 2일부터 4월 18일까지 구금되었다. 붉은군대가 반란을 진압한 후에야 풀려났다. 그가 카추샤를 만들기 20년 전의 일이었다.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가스역학연구소(GDL)에서 무연화약 로켓 개발을 시작해 로켓연구소(RNII) 수석기술자(1934–1938)로서 RS-82와 RS-132 고체연료 로켓탄을 실전 배치 가능한 수준까지 완성했다. 이 로켓탄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BM-13 카추샤 다연장로켓의 핵심 탄약이 되었다. 러시아어에 '코스모나프티카(우주비행학)'라는 용어를 도입했으며 치올콥스키와 교신하며 로켓의 평화적 우주 응용을 구상했다. 1937년 대숙청 당시 허위 고발로 체포되어 1938년 1월 11일 총살되었고, 1955년 복권, 1991년 사회주의노동영웅에 추서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6–18페트로그라드대학 일본문헌학과 입학, 해군 사관후보생 학교 졸업 후 해군 복무
- 1919–22붉은군대 동원, 크론시타트 요새 포대장·사단장 보좌
- 1923–28붉은군대 군사기술아카데미 졸업
- 1928–33가스역학연구소(GDL)에서 무연화약 로켓탄 RS-82·RS-132 개발 주도
- 1934–37로켓연구소(RNII/NII-3) 부소장 겸 수석기술자, 군사기술 1급 공병
- 1937–38NKVD 체포, 1938년 1월 11일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 후 당일 총살
- 1955/1991사후 복권(1955), 사회주의노동영웅 추서(1991)
관련 역사 사건
무연화약 로켓의 내탄도 이론과 저술
란게마크의 공학적 기여는 행정직이나 시험 결과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무연화약 추진 로켓탄 설계 연구의 기초를 놓은 연구자였고, 이른바 '상사법칙(закон подобия)'을 세운 사람으로 기록된다. 이 법칙을 알면 로켓 엔진 노즐의 최적 형상을 길고 값비싼 시험을 거치지 않고 해석적 계산만으로 정할 수 있었다. 1930년대 초 가스역학연구소(GDL)에서 무연화약 로켓을 다루던 시기, 그는 내탄도(내부 탄도학)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로 평가되었다.
그의 연구 성과는 동료들과의 공동 작업이었지만, 그는 탄약 성능을 좌우하는 이론적 토대를 다진 인물로 남았다. 1934년 페트로그라드에서 낸 『깃이 달린 탄환, 견인 로켓』(Оперённые снаряды, тяговые ракеты)을 비롯해 『로켓탄과 견인 로켓의 설계』(Проектирование реактивных снарядов и тяговых ракет, 1권)를 남겼다. 1935년에는 발렌틴 글로시코와 함께 『로켓, 그 구조와 응용』(Ракеты, их устройство и применение)을 공동 집필했고, 이 책은 영어로도 소개되었다. 1930년부터 발명 신청을 시작해 1933년까지 40건이 넘는 특허와 발명 신청을 냈으며, 일부는 아르테미예프, 페트로파블로프스키, 두다코프, 루딘 등과 공동 명의였다.
요컨대 카추샤로 이어진 로켓탄 개발은 실험장에서의 완성이기 전에 책상 위의 계산과 이론 정리에서 출발했다. 란게마크가 남긴 저술과 특허는 그가 왜 당대 로켓 기술의 핵심 인물이었는지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