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혼 니콜라예비치 흐레니코프

Тихон Николаевич Хренников
소련 러시아인 1913–2007 ○ 자연사

43년간 소비에트 음악의 문지기

BBC와의 인터뷰에서 외쳤다: "나는 스탈린의 인민위원이었다. 내가 '안 돼!'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소비에트 작곡가 동맹 서기장(1948–1991)으로 43년간 소련 음악계를 통제한 작곡가. 1948년 지하노프의 '형식주의 반대' 캠페인에서 프로코피예프·쇼스타코비치를 비판하는 연설로 스탈린의 신임을 얻어 발탁되었다. 흐루쇼프 시기 1948년 결정을 철회시키는 한편 젊은 음악가들을 후원한 이중적 인물로, 만년에는 페레스트로이카를 '배신'으로 규탄했다. 오페라 8편·교향곡 3편·영화음악 30편과 유행가 '모스크바의 창가'를 남겼으며, 사회주의 노동 영웅·레닌상·스탈린상 3회를 수상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8년 지하노프 회의와 전격 발탁

1948년 1월 10일부터 13일까지, 70명 이상의 작곡가·연주가·음악교육자가 크렘린에 소집되어 안드레이 지하노프의 주재 아래 사흘간의 회의에 참석했다. 당의 수석 이데올로그였던 지하노프는 소비에트 음악이 '형식주의'와 '반인민적 경향'에 오염되었다고 규정하고, 작곡가들에게 어떻게 음악을 써야 하는지 직접 강의했다.

주요 발언자 중 한 명이었던 흐레니코프는 당의 노선을 전폭 지지하며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소비에트 음악계의 세 거장을 공개 공격했다. 그의 연설은 재능 있는 젊은 동료들을 희생양 삼아 당에 충성을 입증하는 전형적인 스탈린 시대의 통과의례였다. 수십 년 후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변호했다: "그들은 나에게, 그들이 나에게 강요했다,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를 공격하는 그 연설을 읽도록 말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 거절했다면 나는 끝장이었다."

회의 직후 스탈린은 흐레니코프를 작곡가 동맹 서기장에 직접 임명했다. 35세의 나이에, 정식 당원이 된 지 불과 1년 만에 소비에트 음악 전반을 통제하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 회의의 결과로 1948년 2월 10일 볼셰비키 전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무라델리의 오페라 〈위대한 우정〉에 대하여'라는 결정을 채택했고, 이는 소비에트 음악에 대한 전면적 숙청으로 이어졌다. 흐레니코프는 이후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고르바초프를 거쳐 소련 붕괴까지 43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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