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토르 이바노비치 마흐노

Нестор Иванович Махно
소련 우크라이나 1888–1934 ○ 골결핵 · 파리

볼셰비키·백군·독일군·민족주의자를 차례로 상대한 아나키스트 농민군 사령관

1918년 6월 크렘린. 레닌은 마흐노에게 "당신 같은 아나키스트라면 우리도 기꺼이 협력할 텐데"라고 말했지만, 마흐노는 2년 뒤 볼셰비키의 배신을 두 번 겪었다.

우크라이나 아나코-공산주의 혁명가. 농민군을 이끌고 자유지구라는 무정부주의 자치 실험을 주도했다. 적군과 두 차례 동맹으로 백군을 격퇴했으나 매번 배신당했고, 망명 후 파리에서 회고록을 남겼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조직 강령과 플랫폼주의

1926년 6월, 마흐노는 파리 망명 중 표트르 아르시노프와 함께 잡지 《델로 트루다》를 창간하고, 같은 해 《전연합 아나키스트 조직 강령(초안)》을 발표했다. 이 문서는 러시아 혁명에서 아나키스트들이 경험한 패배의 원인을 운동의 만성적 분산과 조직적 무기력에서 찾고, 이론적 통일·전술적 통일·집단적 책임이라는 세 원칙 아래 '전연합 아나키스트'를 결성할 것을 제안했다. 강령은 아나키스트들이 기존 노동조합과 대중조직 내부에서 활동하며 계급의식을 고양하고, 혁명 국면에서 자유 소비에트를 자주관리 기구로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흐노는 같은 해 3월 발표한 글 「조직의 문제와 통합 개념」에서 볼린 등이 주창한 '아나키스트 통합' 구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플랫폼의 입장을 정당화했다.

이 강령은 국제 아나키스트 운동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볼린, 알렉산더 베르크만 등은 이것이 아나키즘의 '볼셰비키화'이며 중앙집권적 정당을 만들 위험이 있다고 반발했고, 세바스티앙 포르는 프랑스적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마흐노는 강령이 강제력을 배제하고 분권을 보존한다고 반박했으나, 논쟁은 '플랫폼주의자'와 '통합주의자'로 아나키스트 운동을 양분시켰다. 그럼에도 이 강령은 이후 스페인 혁명기 두루티의 벗들, 1950년대 프랑스 자유지상주의 공산주의 연맹,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에스페시피스모 운동에 이르기까지 조직화된 아나키즘의 주요한 준거점이 되었다. 마흐노 자신은 1934년 사망할 때까지 강령을 옹호했으며, 그의 장례식에서 두 진영은 일시적 화해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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