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0월 체포된 뒤 그는 독일·폴란드·프랑스를 위해 간첩 활동을 했다고 「자백」했다. 2년 동안 그가 남들에게서 받아 내던 바로 그런 종류의 자백이었다.
코노토프의 우크라이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키예프에서 김나지움을 마치고 법학부를 다니다 제정군 하급 장교로 복무했고, 1918년 적군에 들어갔다. 1919년부터 체카 군 방첩에서 일했으며 예브도키모프 아래에서 우크라이나와 북캅카스 보안기관을 거쳐 올라왔다. 1936년 말 모스크바로 옮겨 NKVD 작전부장이 되었고, 1937년부터 적군 탄압의 주무 부서인 특수부(제5부)와 방첩부를 차례로 이끌며 폴란드·독일·라트비아·조선인 민족 작전을 감독했다. 1938년 10월 체포되어 1940년 2월 예조프와 함께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됐다. 2013년 러시아 대법원은 그를 복권 대상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경력 연표
- 1916–1918제정군 하급 장교
- 1918–1919적군 입대, 정보 업무
- 1919–1921체카 군 방첩 요원
- 1921–1930우크라이나·북캅카스 보안기관 근무
- 1930–1932OGPU 특수부 부부장
- 1935–1936레닌그라드주 NKVD 부책임자
- 1936–1937NKVD 작전부장
- 1937–1938GUGB 특수부(제5부)장·방첩부장
- 1938–1940체포, 재판과 처형
관련 역사 사건
1937년, 군 숙청과 민족 작전의 책상
니콜라예프-주리드는 체카 시절부터 예브도키모프 아래에서 우크라이나와 북캅카스 보안기관을 거치며 잔뼈가 굵은 이른바 「북캅카스파」의 일원으로, 예조프가 NKVD를 장악한 1936년 말 모스크바로 불려 올라와 작전부장이 되었다. 「우익-트로츠키주의 음모」 사건들의 체포와 심문이 그의 부서를 거쳤고, 1937년 6월부터 1938년 3월까지는 적군 탄압의 주무 부서인 특수부(제5부)를 이끌었다. 투하쳅스키 사건 이후 군 지휘부에 대한 대량 체포와 심문이 집행된 자리다.
1938년 봄부터는 방첩부장으로 옮겨 폴란드·독일·라트비아·조선인 작전 등 민족 작전을 감독했다. 지역별 명부를 앨범 단위로 몰아 승인하던 이 작전들은 대숙청 처형의 큰 몫을 차지했고, 그는 그 실무 선상의 최상층에 있었다.
예조프의 몰락은 곧 그의 몰락이었다. 1938년 10월 25일 체포되어 수하노프카 감옥에 수감됐고, 심문 끝에 독일·폴란드·프랑스를 위한 간첩 활동을 「자백」했다. 1940년 2월 3일 예조프 등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아 2월 6일 총살됐으며, 유해는 돈스코이 묘지 화장장의 무명 구덩이에 묻혔다. 2013년 12월 러시아 대법원은 그를 복권 대상이 아니라고 판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