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전투를 지휘한 영국 장군
1944년 12월 1일, 스코비는 ELAS에 무장을 해제하라고 명령했다.
로널드 스코비는 제1·2차 세계대전에 복무한 영국 육군 장군으로, 토브루크와 몰타를 거쳐 제3군단을 지휘했다. 그는 1944년 해방 직후 그리스에서 영국의 군사 개입을 대표하는 지휘관이 되었다. 12월 1일 ELAS 무장해제 명령은 국민해방전선과 영국·그리스 정부 세력의 충돌을 촉발했고, 스코비는 아테네 전투에서 영국군 작전을 지휘했다.
다른 이름: 로널드 맥켄지 스코비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4–1918왕립공병대 장교, 서부전선 복무
- 1920–1924울리치 왕립육군사관학교 생도중대 장교
- 1939전쟁청 동원국 부국장
- 1941제70보병사단장, 토브루크 요새 지휘
- 1942몰타 주둔군 사령관
- 1943–1944중동 총사령부 참모총장, 제3군단장
- 1944–1946그리스 주둔 영국군 사령관
- 1947육군 퇴역
관련 역사 사건
아테네 개입과 12월 사건
1944년 9월의 카세르타 협정에 따라 모든 그리스 저항군은 로널드 스코비 중장의 연합군 사령부 아래 편입되었다. 영국군은 10월 13일 아테네에 진주했고, 스코비는 그리스 주둔 연합군 사령관으로서 전후 질서 재편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존재가 되었다. 국민해방전선(EAM)과 그 무장 부대 국민해방군(ELAS)이 시골과 대부분의 도시를 장악한 상황에서, 스코비는 11월 26일과 12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ELAS에 무장 해제와 해산을 일방적으로 명령했다. 역사가들은 이 '스코비 명령'이 12월 사건(데켐브리아나)의 직접적 도화선이었다고 본다.
명령 직후 EAM 소속 장관 6명이 사임했고, 12월 3일 약 20만 명이 신타그마 광장에 모여 명령 철회와 부역자 처벌을 요구했다. 그리스 경찰과 헌병이 비무장 시위대에 발포하여 최소 28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쳤으며, 이로써 아테네에서 37일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스코비는 12월 5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아테네 시가지에 대한 공중 폭격을 지시했다. 윈스턴 처칠은 12월 5일 전보를 보내 '성읍을 함락시킨 것처럼 행동하되, 아테네를 장악하고 지배하라'고 지시했다.
전투는 두 국면으로 나뉘었다. 12월 17일 이전에는 ELAS가 우세하여 영국군과 정부 세력을 아테네 중심부로 몰아넣었고, 게릴라들은 그 포위 지역을 '스코비아'(스코비의 나라)라고 비꼬아 불렀다. 그러나 처칠이 이탈리아 전선에서 증원군을 급파하면서 전황은 역전되었다. 1945년 1월까지 약 7만 명의 영국군이 그리스에 투입되었고, 이는 1941년 독일 침공에 대비해 파견했던 병력보다 많았다. EAM·ELAS는 패배했고, 1945년 2월 바르키자 협정으로 무장 해제되었다. 이 개입은 그리스 좌파를 군사적으로 분쇄하고 백색 테러를 열었으며, 1946년 그리스 내전으로 이어지는 조건을 만들었다. 스코비는 1946년까지 그리스 주둔 영국군 사령관으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