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쇼프의 아들이자 첼로메이의 유도체계 엔지니어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 당시, 흐루쇼프는 우크라이나에서 KGB 장교와 함께 망원경으로 달을 바라보며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려 했다.
소련의 로켓 엔지니어이자 전산학자. 니키타 흐루쇼프의 아들로, 블라디미르 첼로메이 설계국(OKB-52)에서 순항미사일과 프로톤 우주발사체의 유도체계를 개발했다. 이 시기 크릴라티예 로켓, 군사위성, 달 탐사선, 프로톤 부스터의 핵심 기술에 기여했으며, 1963년에는 28세의 나이로 사회주의 노동영웅과 레닌 훈장을 받았다. 이후 제어컴퓨터연구소(INEUM) 제1부소장으로 옮겨 연구를 이끌었고, 1991년 미국으로 이주해 브라운대학교 왓슨연구소에서 냉전사와 소련 우주개발을 강의하며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8–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58모스크바전력공학연구소 졸업, OKB-52(첼로메이 설계국) 입사
- 1958–1968OKB-52 기술자 → 부문장 대리 — 유도체계 개발 (순항미사일, 군사위성, 달 탐사선, 프로톤 로켓)
- 1959레닌상 수상
- 1963–1964OKB-52 수석 설계자 겸 부설계국장
- 1963사회주의 노동영웅 · 레닌 훈장 수훈
- 1968–1991제어컴퓨터연구소(INEUM) 부문장 → 제1부소장
- 1991–2020미국 이주, 브라운대학교 왓슨연구소 선임연구원 · 교수
관련 역사 사건
아버지 회고록의 편집자
아버지 니키타 흐루쇼프가 1964년 실각한 뒤, 세르게이는 공학자로서의 경력과 별개로 아버지 회고록을 세상에 남기는 일의 중심에 섰다. 1966년부터 퇴임한 흐루쇼프는 독일제 우어 녹음기에 회고를 구술하기 시작했다. 세르게이는 속기사를 고용해 녹취를 타이프 원고로 옮기고, 흩어진 구술을 연대순의 일관된 서사로 편집하여 약 1,500쪽 분량의 원고를 만들었다. 녹음테이프 복사본 두 벌을 만들어 한 벌은 타임지에, 다른 한 벌은 모스크바 공대의 친구에게 맡겼고, 1970년 7월 아버지가 입원했을 때 KGB가 원본 테이프를 압수했다. 회고록은 아버지 사후(1971) 서방에서 「흐루쇼프는 회고한다」(Khrushchev Remembers, 스트로브 탤벗 편역)로 출간되었는데, 소련 지도부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진 이 출판은 '존스 계획'이라 불린 냉전기의 대표적 출판 공작으로 기록되었다. 세르게이 자신은 이 일로 당국의 감시를 받았고, 뒤에 아버지 회고록의 완전판(「시간, 사람들, 권력」, 1999)을 직접 편집해 모스크바에서 출간했다. 미국 이주 뒤에는 스스로 '아버지에 관한 책'들을 저술했다: 「흐루쇼프가 말하는 흐루쇼프」(1990), 「초강대국의 탄생」(2000), 「개혁가」(2006) 등으로, 반스탈린주의 입장에서 해빙기를 옹호하며 자신이 목격한 시대를 역사화했다. 회고록 관련 자료는 콜럼비아대학교 구술사실과 브라운대학교 도서관에 기증되어 니키타 흐루쇼프 연구의 기초 사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