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참사 당시 모스크바 반대를 무릅쓰고 어린이 52만 명 대피를 관철한 우크라이나 최고회의 의장
'불은 껐고, 다 정상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는 결혼식, 하나는 텃밭, 하나는 프리피야티 강에서 낚시질입니다.' 내무차관의 4월 26일 아침 보고를 이렇게 전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 간부회 의장으로서, 모스크바의 지시와 달리 키이우와 오염 지역에서 어린이 52만 6천 명을 닷새 만에 대피시킨 인물이다. 크리비리흐 광부의 딸로 태어나 콤소몰과 교육부 차관을 거쳐 1985년 공화국 국가원수 자리에 올랐으며, 재임 기간 내내 중앙의 정보 통제와 싸우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989년 우크라이나 인민운동(Rukh) 금지 결의안에 서명을 거부했고, 은퇴 후 아동·여성 복지 재단을 이끌며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긍정적 회고와 독립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경력 연표
- 1954–1957크리비리흐에서 피오네르 지도자, 지리 교사, 학교 콤소몰 서기
- 1957–1962크리비리흐 시 콤소몰 서기, 이후 제르진스키 구 당위원회 서기
- 1962–1969우크라이나 콤소몰 중앙위원회 서기 겸 부서장
- 1969–1972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교육부 차관
- 1975–1985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 간부회 부의장
- 1985–1990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 간부회 의장 (국가원수)
- 1985–1989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최고회의 간부회 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