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나 세메니브나 셰우첸코

Валентина Семенівна Шевченко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인 1935–2020 ○ 사망

체르노빌 참사 당시 모스크바 반대를 무릅쓰고 어린이 52만 명 대피를 관철한 우크라이나 최고회의 의장

'불은 껐고, 다 정상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는 결혼식, 하나는 텃밭, 하나는 프리피야티 강에서 낚시질입니다.' 내무차관의 4월 26일 아침 보고를 이렇게 전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 간부회 의장으로서, 모스크바의 지시와 달리 키이우와 오염 지역에서 어린이 52만 6천 명을 닷새 만에 대피시킨 인물이다. 크리비리흐 광부의 딸로 태어나 콤소몰과 교육부 차관을 거쳐 1985년 공화국 국가원수 자리에 올랐으며, 재임 기간 내내 중앙의 정보 통제와 싸우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989년 우크라이나 인민운동(Rukh) 금지 결의안에 서명을 거부했고, 은퇴 후 아동·여성 복지 재단을 이끌며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긍정적 회고와 독립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체르노빌 사고와 어린이 대피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 사고 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정보와 대응은 모스크바 당국 및 연방 전문가들의 판단에 크게 의존했다. 셰우첸코는 4월 28일 체르노빌을 방문해 피란민 수용 상황을 살피고 의료진이 요청한 요오드 공급과 오염된 작업복 세탁, 학교·병원 청소 등의 조치를 확인했다고 회고했다. 당국은 5월 1일 키이우에서 행진을 진행했으며, 셰우첸코는 모스크바에서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 지도부가 가진 정보와 책임을 둘러싼 논쟁의 일부다.

셰우첸코는 키이우 어린이 대피를 주장했지만, 모스크바 보건부 차관은 어린이에 대한 대피가 필요 없다는 견해를 전했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의료진과 따로 협의하고, 5월 6일 군 민방위 책임자가 제시한 오염 지역 지도를 본 뒤 볼로디미르 셰르비츠키 우크라이나 공산당 제1서기에게 다시 대피를 요청했다. 셰우첸코의 회고에 따르면, 당국은 학교 단위로 일정을 짜고 다른 소비에트 공화국과 협의해 수용지를 마련했으며, 키이우와 오염 지역에서 어린이 52만 6천 명을 닷새 동안 대피시켰다. 이 수치는 그녀가 사후 인터뷰에서 전한 자신의 활동에 대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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