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우크라이나

사건 13 · 소속 인물 12 · 출신 인물 131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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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변천

  1. 1918 러시아러시아에서 독립
  2. 1922 소련소련결성에 참여
  3. 1991 소련소련해체로 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13전체보기

  1. 1917–1921우크라이나 혁명과 전쟁1917년 3월 키예프에 세워진 중앙라다는 연방 러시아 안의 자치에서 출발해 1918년 1월 독립을 선언했지만, 그 뒤 4년…
  2. 1917.03–1924.10베사라비아의 혁명과 루마니아 합병2월 혁명 뒤 베사라비아에서는 몰도바 민족운동과 농민의 토지 점거, 병사 위원회가 함께 일어났고, 1917년 12월 스파툴…
  3. 1917.05–1921.10볼가·우랄 무슬림과 크림 타타르의 민족운동1917년 5월 전러시아 무슬림 대회는 영토 연방제와 문화자치를 두고 갈렸고, 볼가·우랄에서는 이델-우랄 국가 구상과…
  4. 1917.12–1918.11브레스트 강화와 독일의 동방 점령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는 군대가 사라진 소비에트 러시아가 독일과 맺은 강요된 평화였다.
  5. 1918–19231차 세계대전의 여파: 강화 조약과 혁명의 물결1918년 가을 불가리아·오스만·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차례로 휴전하면서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조가 무너지고…
  6. 1919–1921소비에트-폴란드 전쟁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은 무너진 세 제국의 국경 지대에서 부활한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가 1919년부터 1921년까지 벌인…
  7. 1920.11–1936.06.27소련의 낙태 합법화·금지와 남색죄 재범죄화제정 러시아는 낙태를 엄하게 처벌했지만 거의 집행하지 않았고, 의사들은 혁명 전부터 비범죄화를 주장했다.
  8. 1922.12소련의 결성1922년 12월 30일,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야·자캅카스의 소비에트 공화국들이 대등한 자격으로 연방조약을 맺어…
  9. 1932–1933홀로도모르와 집단화 기근홀로도모르는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인위적 기근으로, 약 390만 명이 아사한 재앙이다.
  10. 1986체르노빌 참사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4호기가 폭발해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럽으로 퍼졌다.
  11. 1988–1991민족위기와 중앙권력의 붕괴1988년 숨가이트 포그롬에서 1991년 빌뉴스 유혈사태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은 페레스트로이카 아래에서 소련의 민족질서와…
  12. 1991노보오가료보 협상과 신연방조약1991년 3월 국민투표에서 연방 유지가 76%의 찬성을 얻자, 고르바초프는 이를 마지막 정치적 자본으로 삼았다.
  13. 19918월 쿠데타와 소련의 해체1991년 8월, 신연방조약 체결을 막으려는 보수 강경파가 고르바초프를 감금하고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세워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당·세력·조직 11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12전체보기

미하일로 세르히요비치 흐루셰프스키

Михайло Сергійович Грушевський

우크라이나를 독자적 역사 주체로 서술한 역사학자이자 중앙라다 의장

1917년 3월 중앙라다는 모스크바에서 유배 중이던 그를 부재중 의장으로 선출했고, 그의 귀환이 민주 세력 통합의 희망으로 받아들여졌다.

『우크라이나-루스의 역사』로 우크라이나를 독자적 역사 주체로 서술한 역사학자로 1917~1918년 중앙라다 의장을 맡았다. 1924년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감시 속에서 1934년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0키이우대학교 졸업, 학위논문 금메달
  • 1894리비우대학교 역사학 교수
  • 1897셰우첸코 학술회 회장(1897~1913)
  • 1917중앙라다 의장(1917~1918), 부재중 선출
  • 1919빈에서 우크라이나 사회학연구소 설립
  • 1924소비에트 우크라이나 귀환, 전우크라이나과학원 회원
  • 1929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31반혁명 혐의로 체포

파울로 페트로비치 스코로파츠키

Павло Петрович Скоропадський

독일 점령 하 우크라이나국의 마지막 헤트만

1918년 4월 29일 키예프에서 전우크라이나 지주대회가 만장일치로 ‘헤트만 만세!’를 외치며 파울로 스코로파츠키를 우크라이나의 헤트만으로 추대했다.

코사크 헤트만 가문의 후예이자 제정 러시아 군단장으로 1차 세계대전을 치른 귀족 장군. 1918년 4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이후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독일군의 후원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중앙라다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우크라이나국의 헤트만으로 즉위했다. 8개월간의 집권기 동안 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와 국립대학을 세우고 외교 관계를 수립했으나, 대지주 중심의 토지 정책과 독일 점령군의 곡물 강제 징발이 농민의 광범한 저항을 불렀다. 1918년 11월 독일 패전과 함께 페틀류라가 이끈 반헤트만 봉기에 밀려 퇴위했고, 이후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나치 협력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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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3근위 기병연대 장교 임관
  • 1904–1905러일전쟁에서 코사크 부대 지휘, 훈장 수훈
  • 1912소장 승진, 니콜라이 2세의 시종무관
  • 1914–1916제1차 세계대전에서 기병사단 지휘, 중장 승진
  • 1917제34군단장, 우크라이나화하여 제1우크라이나군단으로 개편
  • 1917.10자유코사크 총사령관(오타만)으로 선출
  • 1918.04–12우크라이나국 헤트만
  • 1919–1945독일 망명, 헤트만 운동 지도

시몬 바실리요비치 페틀류라

Симон Васильович Петлюра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이끌었으나 유대인 학살의 책임 논쟁에 휩싸인 독립운동가

러시아의 운명에서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떼어놓지 말아야 합니다. 러시아가 패배하면 그 재앙은 우크라이나에도 미칠 것입니다.

폴타바 출신의 사회민주주의 언론인으로, 1917년 중앙라다 군사사무총서기를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군 총사령관과 집정내각(디렉토리야) 수반을 지냈다. 볼셰비키·백군·폴란드 사이에서 독립을 수호하려 싸웠으나 1920년 패퇴 후 폴란드, 이어 파리로 망명했다. 그의 군대 휘하에서 약 5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으며, 페틀류라가 이를 막지 못했는지 의도적으로 방치했는지는 오늘날까지 논쟁의 대상이다. 1926년 파리에서 유대인 아나키스트 숄롬 슈바르츠바르트에게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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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0–1917우크라이나 혁명당(RUP)·우크라이나 사회민주노동당(USDRP) 활동, 언론인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운동 주도
  • 1917.05–12중앙라다 군사사무총서기, 우크라이나 군 편성 주도
  • 1918.01–03하이다마키 코쉬 지휘관, 키예프 아르세날 봉기 진압
  • 1918.11–1919.02우크라이나 집정내각(디렉토리야) 군사총책
  • 1919.02–1920.12집정내각 수반 겸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군 총사령관
  • 1920.04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 체결, 대볼셰비키 동맹
  • 1924–1926파리 망명정부에서 주간지 『트리주브(Тризуб)』 발행

볼로디미르 키릴로비치 빈니첸코

Володимир Кирилович Винниченко

중앙라다 총서기국과 디렉토리아를 이끈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의 작가

당신들이 러시아에 노동자·농민 독재를 세웠듯,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우크라이나어의 독재를 세워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의 작가로 1917년 중앙라다 총서기국을 이끌고 1918년 디렉토리아 초대 의장으로 키예프를 되찾았다. 소비에트와의 협상을 주장하다 페틀류라와 갈라져 1919년 사임했고 프랑스에서 1951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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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우크라이나 사회민주노동당 창립
  • 1917중앙라다 부의장 겸 총서기국 초대 의장(내무 겸임)
  • 1918.01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총리, 곧 사임
  • 1918.12디렉토리아 의장으로 키예프 탈환
  • 1919–1920회고록 「민족의 재생」 집필
  • 1920우크라이나 SSR 인민위원회 부의장 겸 외무인민위원, 곧 재망명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131전체보기

이반 파스케비치

Иван Паскевич

1831년 바르샤바를 함락하고 1849년 헝가리 원정군을 이끌어 빌라고시 항복을 받아 낸 러시아 원수

1782년 폴타바에서 자포로제 코사크 가문의 아버지와 벨라루스 귀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800년 근위대에 임관했다. 아우스터리츠·보로디노·라이프치히 전투를 치렀고, 1826~1828년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에서 에리반 칸국을 정복해 에리반 백작이 되었으며 1829년 원수가 되었다. 1831년 폴란드 11월 봉기를 진압해 바르샤바를 함락하고 폴란드 총독이 되었는데, 그의 통치는 「파스케비치의 밤」이라 불리며 탄압과 러시아화로 악명이 높았다. 1849년 오스트리아를 돕는 러시아 원정군을 이끌고 헝가리에 들어가 빌라고시에서 헝가리군의 항복을 받아 냈다. 크림 전쟁 초기 도나우 원정군을 지휘하다 다쳤고 1856년 바르샤바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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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00근위대 임관
  • 1826–1828러시아-페르시아 전쟁 사령관, 에리반 백작
  • 1831–1856폴란드 총독
  • 1849헝가리 원정군 총사령관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스테프냐크-크라프친스키

Сергей Михайлович Степняк-Кравчинский

차르 헌병대장을 단검으로 처단하고 펜으로 서구에 러시아 혁명을 소개한 나로드니키

1878년 메젠초프 암살 직전, 크라프친스키는 선언문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사랑을 충분히 설교했다 — 이제 증오를 불러낼 때가 왔다. 무자비한 피의 복수가 이제부터 너희 악행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러시아 나로드니키 혁명운동과 서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작가이자 혁명가. 차이콥스키 서클에서 활동하고 1878년 헌병대장 메젠초프를 단검으로 암살한 후 망명하여, 런던에서 『지하 러시아』(1883)를 출판하고 자유 러시아 출판 기금과 러시아 자유의 벗 협회를 창립해 망명 반체제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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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2–1873차이콥스키 서클(대선전회) 가입, 페테르부르크 노동자 대상 사회주의 선전
  • 1873–1874‘민중 속으로’ 참여 — 트베리·툴라 농민 선전, 체포 후 탈출
  • 1875–1876헤르체고비나 반오스만 봉기 참전; 제네바 바쿠닌계 기관지 『라보트니크』 기고
  • 1877이탈리아 베네벤토 무장봉기 참가(말라테스타·카피에로와 함께), 체포 후 사면
  • 1878토지와 자유당 입당, 기관지 편집; 8월 4일 메젠초프 암살; 11월 해외 망명
  • 1883『지하 러시아』(Underground Russia) 출판 — 서구 최초의 러시아 혁명운동 종합 보고서
  • 1889소설 『니힐리스트의 생애』(안드레이 코주호프) 출판
  • 1890–1895러시아 자유의 벗 협회·자유 러시아 출판 기금 창립, 월간 『자유 러시아』 편집

미하일 블라디미로비치 로댠코

Михаил Владимирович Родзянко

차르에게 ‘뚱보’라 불린 의회주의자, 제국의 마지막 두마 의장

1917년 2월, 참수부에 보낸 전문에서: “수도는 무정부 상태. 정부는 마비되었다. 지체는 죽음이다. 왕조의 운명이 걸린 마지막 시간이다.” 니콜라이 2세는 읽고 나서 시종장에게 말했다. “이 뚱보 로댠코가 또 무슨 헛소리를 써 보냈군.”

우크라이나계 귀족 출신으로, 1905년 10월당을 공동 창립하여 입헌군주제와 의회주의라는 두 축에서 차르 체제의 점진적 개혁을 추구했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제3·4대 국가두마 의장을 지내며 라스푸틴을 공개 비판하고 전시 정부의 무능에 맞섰다. 1917년 2월 혁명기에는 국가두마 임시위원회를 이끌며 니콜라이 2세 퇴위를 결정적으로 추동했으나, 미하일 대공이 즉위를 거부하며 입헌군주제 구상은 무너졌다. 1920년 유고슬라비아로 망명하여 빈곤 속에서 회고록 『라스푸틴의 통치』를 남겼고, 망명 군주주의자들에게 배척당한 채 숨졌다. 혁명 이전 러시아 의회 정치의 가능성과 한계를 한 몸에 체현한 인물이다.

상세 이력 보기
  • 190510월당(옥탸브리스트) 공동 창립, 입헌군주제 노선
  • 1907–1911제3대 국가두마 의원, 부의장(1909~)
  • 1911–1912제3대 국가두마 의장(구치코프 후임)
  • 1912–1917제4대 국가두마 의장, 진보블록 참여
  • 1917.02–03국가두마 임시위원회 의장, 니콜라이 2세 퇴위 협상 주도
  • 1917 여름구치코프와 자유공화당 창당
  • 1917.10–1920백군 지역(돈·크림)에서 반볼셰비키 활동
  • 1920–1924유고슬라비아 망명, 『라스푸틴의 통치: 제국의 붕괴』 집필

미하일 이바노비치 투간-바라놉스키

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Туган-Барановский
입헌민주당 마르크스주의 러시아 제국 우크라이나 1865–1919 ○ 심장마비

‘합법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윤리적 사회주의로: 공황주기론을 개척한 경제학자

1900년 4월 프스코프에서 열린 『이스크라』 창간 조직회의에서 그는 레닌, 마르토프, 스트루베와 함께 자리했으나, 정작 사회민주당 지하조직에는 끝내 가입하지 않았다.

‘합법적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 경제학자로, 1894년 『현대 영국의 공업위기』에서 자본주의 공황의 내생적 주기이론을 제시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표트르 스트루베와 함께 나로드니키에 맞서 마르크스주의 경제사 분석을 전개하고 1900년 『이스크라』 창간 회의에 참여했으나, 이후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 칸트 윤리학에 기초한 ‘윤리적 사회주의’로 전환, 협동조합 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정립했다. 1917년 2월혁명 후 우크라이나 중앙라다 재무장관과 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 창립 회원을 지냈으며, 그의 공황이론은 케인스 등 서구 거시경제학에 영향을 미쳤다.

상세 이력 보기
  • 1888하리코프 대학 졸업, 자연과학 후보학위 취득
  • 1894『현대 영국의 공업위기』 출간, 모스크바 대학 정치경제학 석사
  • 1895–1899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정치경제학 강사(사도첸트)
  • 1898『러시아 공장의 과거와 현재』 출간, 모스크바 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 1900『이스크라』 창간 조직회의 참여 (프스코프)
  • 1901–1905폴타바 지역 젬스트보 활동, 『정치경제학 최근사 개요』 집필
  • 1906–1913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및 폴리테크니크 강사·교수
  • 1909–1917『협동조합 통보』(Вестник кооперации) 편집장
  • 1917.08–11우크라이나 중앙라다 재무장관(서기)
  • 1918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 창립 회원, 사회경제부문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