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대공황을 예측하고도 자본주의의 적응력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연구소가 폐쇄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1920년대 말, 모두가 자본주의 안정화를 확신할 때 대공황을 예측했고, 모두가 자본주의 붕괴를 말할 때 그 종말을 예측하여 스탈린의 신임을 얻었다.
헝가리 출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1927년부터 20년간 소련 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세계정치연구소(ИМХМП)를 이끌며 코민테른 최고의 경제분석가로 활약했다. 1929년 대공황의 도래와 종료를 정통 노선에 역행하여 정확히 예측해 스탈린의 신임을 얻었으나, 전후에는 전시 국가개입으로 자본주의가 적응·안정화될 수 있다고 분석한 저작으로 1947년 연구소 폐쇄와 함께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스탈린 사후 복권되어 1963년 레닌상을 수상했고, 유언에 따라 사후 공개된 유고에서는 소련 관료제의 변질과 국제주의 포기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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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헝가리 사회민주당 입당, 당 기관지 《넵서버》 경제부 편집
- 1909부다페스트대학 철학박사 — 칸트의 이율배반론 연구
- 1919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재무인민위원 → 최고국민경제회의 의장
- 1920소련 망명,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입당, 코민테른 활동 시작
- 1921–1927코민테른 통계정보연구소(베를린 '바르가 사무소') 소장
- 1927–1947소련 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세계정치연구소(ИМХМП) 소장
- 1939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63현대 자본주의 연구로 레닌상 수상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 『역사와 계급의식』으로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방향을 바꾼 헝가리 사상가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진 지금, 루카치의 문제 제기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의 유일한 생존 형식으로 보인다.” — 말년의 대담에서
『역사와 계급의식』(1923)으로 물화와 계급의식을 정식화하여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토대를 놓은 헝가리 철학자. 1919년 평의회 공화국과 1956년 너지 임레 정부에서 문화장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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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2–1906부다페스트 대학 법학부 졸업, 콜로주바르 대학 법학 박사
- 1909『드라마의 형식』으로 부다페스트 대학 철학 박사
- 1912–1918하이델베르크에서 짐멜·베버·블로흐와 교류, 철학·미학 연구
- 1918헝가리 공산당(KMP) 입당
- 1919.3–8헝가리 평의회 공화국 문화교육 인민위원 대리 겸 적군 정치위원
- 1919–1929빈 망명, KMP 지하활동 — 1928년 중앙위 총서기 선출 후 '우경화' 해임
- 1923『역사와 계급의식』 출간 — 코민테른으로부터 수정주의 비판
- 1929–1945모스크바 체류 —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 『문학비평』 활동
- 1941NKVD 체포, 2개월 구금 — 디미트로프 개입으로 석방
- 1942소련 과학아카데미에서 『젊은 헤겔』로 박사학위
- 1945–1958부다페스트 대학 미학 교수, 국회의원
- 1956.10–11너지 임레 정부 문화장관 — 혁명 진압 후 루마니아 억류
- 1957–1967당 제명 — 1967년 복권. 『미학의 특수성』(1963) 집필
소련 탱크 앞에서 중립을 선언한 목사 출신 대통령
1956년 11월 1일 기자회견에서 소련의 재침공 가능성을 묻자 "그런 비극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개혁교회 목사에서 독립소지주당 창립자·지도자로 헝가리 전후 민주화의 얼굴이 된 정치인. 1945년 총선 승리로 총리에 오르고 이듬해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공산당의 살라미 전술로 1948년 사위의 조작된 반역 혐의를 빌미로 사임당하고 8년간 연금되었다. 1956년 10월 너지 임레의 혁명 정부에 합류해 11월 1일 바르샤바조약 탈퇴와 중립 선언에 동참했고, 봉기 진압 후 6년형을 받았다. 1989년 대법원이 형을 무효화하며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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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29개혁교회 목사, 교회 정기간행물 편집
- 1936–44소지주당 국회의원, 전쟁 탈퇴 압박, 독일 점령 후 은신
- 1945–46총리
- 1946–48공화국 대통령, 강제 사임
- 1948–56가택 연금
- 1956.10–11너지 임레 혁명정부 국가장관
- 1958–59/19896년형 선고, 1959년 사면, 1989년 복권
헝가리 스탈린화의 설계자, '살라미 전술'로 일당독재를 구축
1940년 11월 6일, 16년의 호르티 감옥 생활을 마치고 모스크바에 도착한 라코시는 바로 다음날 붉은광장 혁명기념일 열병식에서 레닌 묘단 위 스탈린의 곁에 섰다.
헝가리 공산당과 노동자당 최고 지도자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군과 함께 귀국해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1919년 쿤 벨러의 평의회 공화국에서 활약한 후 코민테른 서기를 지냈고, 호르티 정권 아래 16년간 투옥되었다. 1945년 귀국 후 '살라미 전술'로 경쟁 세력을 단계적으로 제거하며 일당 지배를 완성했다. 1952년 총리를 겸해 중공업화와 집단화를 추진했으나,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의 압력으로 1956년 7월 해임되었고 혁명 후 소련에서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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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헝가리 평의회 공화국 통상 인민위원, 적위대·적군 지휘
- 1921–1924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서기
- 1925–1940호르티 정권 아래 투옥 (8.5년형 이후 종신형, 1940년 석방)
- 1940–1945모스크바에서 헝가리 공산당 해외국 지도
- 1945–1948헝가리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 1948–1956헝가리 노동자당(MDP) 중앙위원회 제1서기 (1953년까지 서기장)
- 1952–1953헝가리 인민공화국 각료회의 의장
- 1956–1971소련 강제 망명 (키르기스스탄, 아르자마스, 고리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