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류학자에서 모잠비크 해방전선의 창립자로
“비록 대학 생활을 무엇보다 사랑했지만, 나는 남은 생애를 조국 해방 전쟁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였으나, 교수직을 버리고 흩어진 모잠비크 해방 조직들을 한데 모아 해방전선(FRELIMO)을 창립했다. 초대 의장으로서 1964년 무장 투쟁을 개시해 독립 전쟁의 토대를 놓고 이를 이끌다가, 1969년 서신 폭탄으로 암살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53오벌린 칼리지 인류학·사회학 학사
- 1955노스웨스턴대 석사
- 1957–1961유엔 신탁통치국 연구관 — 아프리카 현지 조사
- 1960노스웨스턴대 인류학 박사 — 허스코비츠 지도
- 1961–1963시러큐스대 교수 — 동아프리카학 프로그램 구축
- 1962FRELIMO 창립, 초대 의장 선출
- 1964포르투갈 식민 통치에 맞서 무장 해방 투쟁 개시 (9월 25일)
- 1968제2차 FRELIMO 대회 — 사회주의 노선과 지구전 전략 채택, 의장 재선
- 1969.02.03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서신 폭탄으로 암살
농업 기술자에서 아프리카 해방 이론의 거장으로
“거짓을 말하지 말라. 쉬운 승리를 주장하지 말라.” — 당 지침(1965)
기니비사우·카보베르데의 반식민 혁명가, PAIGC 창립자. 농업 조사로 식민지 현실을 파악하고 무장 투쟁과 문화 해방을 결합한 전략으로 포르투갈 식민 통치에 맞섰다. 1973년 독립 직전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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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1952리스본 농업대학 — 아프리카 민족주의 학생 서클 조직
- 1952–1954포르투갈령 기니 농업 조사 — 나라를 마을 단위로 파악
- 1956기니-카보베르데 독립아프리카당(PAIGC) 창립
- 1963–1973무장 해방 투쟁 지도 — 해방구에 학교와 진료소
- 1966제1차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인민연대회의에서 《이론이라는 무기》 발표
- 1973.01독립 선언 몇 달 전 코나크리에서 암살
「앙골라의 숙청」으로 1977년 5월 진압을 연구한 포르투갈 역사가
2014년 10월 30일 리스본에서 죽었다. 남편이자 공동 저자인 알바루 마테우스는 그보다 한 해 앞선 2013년 8월에 죽었다.
포르투갈의 역사가. 비아나두카스텔루 태생으로 1952년에 나 2014년 10월 30일 리스본에서 죽었다. 포르투갈 식민지와 식민지 전쟁, 정치경찰을 연구했고 박사 논문을 『식민지 전쟁 속의 PIDE/DGS 1961-1974』(2004)로 펴냈다. 남편이자 공동 저자인 알바루 마테우스와 함께 앙골라·모잠비크 관련 저작을 냈으며, 1977년 5월 27일을 다룬 『앙골라의 숙청』(2007)에서 아고스티뉴 네투에게 니투 알베스 지지자 학살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옛 정치범들을 면담한 녹음과 기록은 토레 두 톰부에 소장돼 있다.
상세 이력 보기
- 1952포르투갈 비아나두카스텔루에서 태어나다
- 2004박사 연구를 『식민지 전쟁 속의 PIDE/DGS 1961-1974』로 출간하다
- 2007알바루 마테우스와 함께 『앙골라의 숙청』을 내다
- 201410월 30일 리스본에서 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