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이탈리아

사건 23 · 소속 인물 58 · 출신 인물 61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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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변천

  1. 1929 바티칸 시국바티칸 시국독립
  2. 1936 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병합
  3. 1941 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독립
  4. 1960 소말리아소말리아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23전체보기

  1. 1792–1802프랑스 혁명 전쟁제1·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배경과 전개.
  2. 1848–18491848년 혁명1845~1847년의 흉작과 산업 불황 속에서 1848년 1월 팔레르모, 2월 파리의 봉기가 「인민의 봄」을 열었다.
  3. 1848.01–1849.08이탈리아의 1848년 혁명과 제1차 독립전쟁빈 체제 아래 오스트리아가 북부를 지배하고 여러 군주국으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에서 1848년 1월 12일 팔레르모 봉기가…
  4. 1848.02–1851.12프랑스 1848년 혁명과 제2공화국재산 자격 선거로 인구의 1%만 투표하던 7월 왕정은 1846~1847년 흉작과 공황, 부패 추문 속에서 선거 개혁을 요구한…
  5. 1893–1896제2인터내셔널 초기의 분쟁1893년 취리히 대회는 「정치 행동」을 인정하는 정당과 노동조합만 받는 결의로 란다우어 등 아나키스트를 쫓아냈고, 폴란드…
  6. 1914–1918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협상국과 동맹국이 벌인 세계전쟁.
  7. 1918–19231차 세계대전의 여파: 강화 조약과 혁명의 물결1918년 가을 불가리아·오스만·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차례로 휴전하면서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조가 무너지고…
  8. 1919–1921코민테른의 창설1919년 3월 볼셰비키는 세계 혁명이 임박했다고 보고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했다.
  9. 1919–1926로마 진군1차 세계대전 뒤 「불구가 된 승리」에 대한 분노와 「붉은 2년」(1919~1920)의 파업·공장 점거 속에서, 1919년…
  10. 1919–1938호르티 체제: 백색테러에서 우경화까지1919년 평의회 공화국이 무너진 뒤 호르티의 국민군 장교 부대들은 공산당원·사회민주당원·유대인을 겨냥한 헝가리 백색테러를…
  11. 1936–1939스페인 내전1936년 7월 군부의 반란은 정부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무장으로 저지됐고, 그 자리에서 카탈루냐와 아라곤의 공장과 토지가…
  12. 1938–1944.03추축국 편의 헝가리: 빈 중재에서 돈강까지1938~1941년 헝가리는 두 차례의 빈 중재와 루테니아·유고슬라비아 점령으로 트리아농 조약에서 잃은 땅의 일부를…
  13. 1939–1945추축국 점령하의 유럽: 협력과 저항1941~1942년 절정기에 추축국은 유럽 대륙 인구의 절반 이상을 다스렸다.
  14. 1940–1944프랑스 침공과 비시 정부이 사건은 1940년 5월 10일부터 1944년 해방까지 독일의 프랑스 정복과 제3공화국의 붕괴, 비시의 통치를 가리킨다.
  15. 1940.06.10–1943.05.13북아프리카 전역1940년 6월 이탈리아의 참전으로 시작된 북아프리카 전역은 이집트를 침공한 이탈리아군이 컴퍼스 작전으로 무너지고, 독일이…
  16. 1940.07–1941.05영국 본토 항공전영국 본토 항공전은 1940년 7월부터 1941년 5월까지 독일 공군과 영국 공군이 영국 해협과 영국 본토의 제공권을 두고…
  17. 1941–1945대조국전쟁1941년 6월 나치 독일의 기습 침공으로 시작된 대조국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상전이었다.
  18. 1941–1945그리스 저항과 12월 사건그리스 저항과 12월 사건은 1941년 추축국 점령에서 시작되어 1945년 바르키자 협정으로 이어진 저항과 권력투쟁이다.
  19. 1941–1945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전쟁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전쟁은 1941년 4월 추축국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침공하고 분할한 뒤 1945년까지 벌어진 공산당…
  20. 1942–1943스탈린그라드 전투스탈린그라드 전투는 1942년 7월 17일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소련의 스탈린그라드와 돈강 하류 및 볼가강 주변에서…
  21. 1943–1945이탈리아 전선과 무솔리니의 몰락이탈리아 전선은 1943년 7월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으로 시작되어 1945년 5월 독일군의 이탈리아 항복으로 끝난 제2차…
  22. 1943.07.05–08.23쿠르스크 전투1943년 봄 제3차 하리코프 전투 뒤 쿠르스크를 가운데 둔 소련군 돌출부가 독일군 전선 안으로 튀어나왔다.
  23. 1947–1948마셜 플랜과 냉전의 시작1947년 미국이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을 내놓자, 소련은 그것을 미국 자본에 유럽을 종속시키려는 시도로 규정했다.

정당·세력·조직 17

정당

세력·운동

국가기관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58전체보기

카를로 아르멜리니

Carlo Armellini
로마 공화국 (1849)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이탈리아 이탈리아 1777–1863 → 망명지에서 사망

교황 정부 내무장관을 거쳐 1849년 마치니·사피와 로마 공화국 3두 정치를 맡은 로마의 법률가

1777년 로마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이름난 법률가가 되었다. 온건파로서 비오 9세 초기의 개혁 정치를 지지했고, 런던에서 마치니를 만난 뒤 청년 이탈리아의 사상에 다가가 1848년 의원으로 뽑혔다. 펠레그리노 로시가 암살되고 교황이 로마를 떠난 뒤 1848년 12월 23일 교황 정부의 내무장관이 되어 제헌의회 소집을 준비했다. 1849년 3월 29일 마치니·사피와 함께 로마 공화국 3두 정치의 일원이 되었고 공화국 헌법 작성에 참여했다. 프랑스군에 공화국이 무너지자 벨기에로 망명해 1863년 생조스텐노드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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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8의원 당선, 교황 정부 내무장관
  • 1849로마 공화국 3두 정치
  • 1849–1863벨기에 망명

루제로 세티모

Ruggero Settimo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이탈리아 이탈리아 1778–1863 ○ 자연사

1848~1849년 독립 시칠리아의 정부 수반이었고 통일 뒤 이탈리아 상원 의장이 된 제독

1778년 팔레르모의 귀족 집안에 태어나 부르봉 해군 장교가 되었고, 영국 함대와 함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싸워 몰타를 되찾고 가에타를 지켰다. 1811년 건강 문제로 군을 떠난 뒤 1812년 시칠리아 정부의 해군장관을 지냈고, 1820~1821년 혁명 위원회에 참여했다. 1848년 시칠리아 독립 혁명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칠리아 상원 의장으로서 정부 수반이 되어 16개월 동안 독립 시칠리아의 실질적 국가 원수였다. 페르디난도 2세의 군대가 반란을 진압하자 몰타로 망명해 12년을 보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 상원 의장에 뽑혀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고, 1863년 몰타의 발레타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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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2시칠리아 정부 해군장관
  • 1848–1849시칠리아 혁명 정부 수반
  • 1849–1861몰타 망명
  • 1861–1863이탈리아 상원 의장

굴리엘모 페페

Guglielmo Pepe
산마르코 공화국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이탈리아 이탈리아 1783–1855 → 망명지에서 사망

1848년 나폴리 왕의 소환 명령을 거부하고 베네치아로 가서 산마르코 공화국 방어군을 지휘한 장군

1783년 칼라브리아의 스퀼라체에서 태어났다. 1799년 나폴리 공화국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프랑스로 추방되었고, 나폴레옹군에서 싸운 뒤 1813년 장군으로 돌아와 나폴리군 재편을 도왔다. 카르보나리를 민병대로 조직했고, 1820년 혁명 뒤 육군 감찰관이 되었으며, 1821년 3월 리에티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공격했다가 격퇴되었다. 이후 영국·프랑스 등지에서 망명하며 정치 저술을 냈다. 1848년 나폴리로 돌아와 피에몬테와 함께 오스트리아와 싸울 나폴리군 사령관이 되었으나, 볼로냐에서 왕의 소환 명령을 받자 사직하고 의용병 2,000명과 포강을 건넜다. 베네치아에서 마닌과 함께 방어군을 지휘했고, 항복 때 사면에서 제외되어 다시 망명했다가 1855년 토리노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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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0–1821나폴리군 감찰관, 리에티 전투
  • 1848북부 원정 나폴리군 사령관
  • 1848–1849베네치아 방어군 사령관

카를로 필란제리

Carlo Filangieri

1848~1849년 메시나와 카타니아를 함락해 시칠리아 혁명을 진압하고 총독이 된 나폴리 장군

1784년 살레르노 근처 카바데티레니에서 법철학자 가에타노 필란제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파리 사관학교를 나와 나폴레옹군에서 아우스터리츠 전투 등에 참전했고, 뮈라 밑에서 장군이 되었다. 1820년 혁명 때 입헌파에 서서 페페 휘하에서 오스트리아군과 싸워 파면되었으나, 1831년 페르디난도 2세가 다시 불러 군 개혁을 맡겼다. 1848년 왕에게 헌법을 내주라고 권했지만, 시칠리아가 분리를 선언하자 원정군을 이끌고 9월 메시나를 격전 끝에 점령했고, 카타니아를 함락할 때는 부하들이 많은 만행을 저질렀다. 1849년 5월까지 섬 전체를 되찾고 1855년까지 시칠리아 총독을 지냈다. 1859년 프란체스코 2세의 총리 겸 전쟁장관이 되었다가 물러났고, 1867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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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31페르디난도 2세의 군 개혁 담당
  • 1848–1849시칠리아 원정군 사령관
  • 1849–1855시칠리아 총독
  • 1859양시칠리아 총리 겸 전쟁장관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61전체보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éon Bonaparte

혁명의 전쟁에서 황제가 된 정복자

1799년 11월 9–10일 브뤼메르 쿠데타로 그는 탈레랑·시에예스 등과 결탁해 총검으로 무장한 병력으로 오백인회를 해산시키고 총재정부를 무너뜨렸으며, 이후 제1통령으로서 실권을 장악했다.

코르시카의 이탈리아계 가문 출신으로 1785년 프랑스 왕립군 포병 소위로 임관하고 1789년 혁명을 지지했으며, 1793년 툴롱과 1795년 방데미에르에서 왕당파를 제압해 승진했다. 1796년 이탈리아 원정으로 국민적 영웅이 되고 1799년 11월 브뤼메르 쿠데타로 총재정부를 전복해 제1통령이 되었으며, 1804년 제1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1805년 아우스터리츠에서 승리했으나 1812년 러시아 원정과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무너져 1814년 엘바로 유배되었고, 1815년 백일천하 뒤 워털루에서 패해 세인트헬레나에서 1821년 사망했다. 나폴레옹 법전과 공교육 같은 개혁을 남긴 한편 점령지 약탈, 언론 폐쇄와 비판자 탄압, 식민지 노예제 부활로 논란이 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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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85프랑스 왕립군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 1793툴롱 공방전을 승리로 이끌어 준장으로 승진했다.
  • 1795방데미에르 왕당파 봉기를 진압했다.
  • 1796–1797이탈리아 원정군을 지휘해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했다.
  • 1798–1799이집트·시리아 원정을 지휘했다.
  • 1799브뤼메르 쿠데타로 총재정부를 전복하고 제1통령이 되었다.
  • 1804–1814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로 통치했다.
  • 1815백일천하 동안 다시 권좌에 올랐다가 워털루에서 최종 패배했다.

카를로 아르멜리니

Carlo Armellini
로마 공화국 (1849)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이탈리아 이탈리아 1777–1863 → 망명지에서 사망

교황 정부 내무장관을 거쳐 1849년 마치니·사피와 로마 공화국 3두 정치를 맡은 로마의 법률가

1777년 로마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이름난 법률가가 되었다. 온건파로서 비오 9세 초기의 개혁 정치를 지지했고, 런던에서 마치니를 만난 뒤 청년 이탈리아의 사상에 다가가 1848년 의원으로 뽑혔다. 펠레그리노 로시가 암살되고 교황이 로마를 떠난 뒤 1848년 12월 23일 교황 정부의 내무장관이 되어 제헌의회 소집을 준비했다. 1849년 3월 29일 마치니·사피와 함께 로마 공화국 3두 정치의 일원이 되었고 공화국 헌법 작성에 참여했다. 프랑스군에 공화국이 무너지자 벨기에로 망명해 1863년 생조스텐노드에서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48의원 당선, 교황 정부 내무장관
  • 1849로마 공화국 3두 정치
  • 1849–1863벨기에 망명

루제로 세티모

Ruggero Settimo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이탈리아 이탈리아 1778–1863 ○ 자연사

1848~1849년 독립 시칠리아의 정부 수반이었고 통일 뒤 이탈리아 상원 의장이 된 제독

1778년 팔레르모의 귀족 집안에 태어나 부르봉 해군 장교가 되었고, 영국 함대와 함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싸워 몰타를 되찾고 가에타를 지켰다. 1811년 건강 문제로 군을 떠난 뒤 1812년 시칠리아 정부의 해군장관을 지냈고, 1820~1821년 혁명 위원회에 참여했다. 1848년 시칠리아 독립 혁명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칠리아 상원 의장으로서 정부 수반이 되어 16개월 동안 독립 시칠리아의 실질적 국가 원수였다. 페르디난도 2세의 군대가 반란을 진압하자 몰타로 망명해 12년을 보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 상원 의장에 뽑혀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고, 1863년 몰타의 발레타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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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2시칠리아 정부 해군장관
  • 1848–1849시칠리아 혁명 정부 수반
  • 1849–1861몰타 망명
  • 1861–1863이탈리아 상원 의장

굴리엘모 페페

Guglielmo Pepe
산마르코 공화국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이탈리아 이탈리아 1783–1855 → 망명지에서 사망

1848년 나폴리 왕의 소환 명령을 거부하고 베네치아로 가서 산마르코 공화국 방어군을 지휘한 장군

1783년 칼라브리아의 스퀼라체에서 태어났다. 1799년 나폴리 공화국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프랑스로 추방되었고, 나폴레옹군에서 싸운 뒤 1813년 장군으로 돌아와 나폴리군 재편을 도왔다. 카르보나리를 민병대로 조직했고, 1820년 혁명 뒤 육군 감찰관이 되었으며, 1821년 3월 리에티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공격했다가 격퇴되었다. 이후 영국·프랑스 등지에서 망명하며 정치 저술을 냈다. 1848년 나폴리로 돌아와 피에몬테와 함께 오스트리아와 싸울 나폴리군 사령관이 되었으나, 볼로냐에서 왕의 소환 명령을 받자 사직하고 의용병 2,000명과 포강을 건넜다. 베네치아에서 마닌과 함께 방어군을 지휘했고, 항복 때 사면에서 제외되어 다시 망명했다가 1855년 토리노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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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0–1821나폴리군 감찰관, 리에티 전투
  • 1848북부 원정 나폴리군 사령관
  • 1848–1849베네치아 방어군 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