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일본

사건 13 · 소속 인물 33 · 출신 인물 34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국경은 현재 세계를 기준으로 표시합니다.

국가 변천

  1. 1910 조선조선병합
  2. 1945 조선조선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13전체보기

  1. 1911–1916신해혁명과 중화민국의 탄생1911년 10월 우창의 신군 봉기가 각 성의 독립 선언으로 번져 청 왕조가 무너지고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이 섰다.
  2. 1914–1918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협상국과 동맹국이 벌인 세계전쟁.
  3. 1915–19215·4 운동과 중국공산당의 창당1915년 『신청년』이 연 신문화운동은 유교와 낡은 문체를 공격했고, 1919년 5월 4일 베르사유의 산둥 결정에 항의한…
  4.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1918년부터 1922년까지 소비에트 공화국은 백군 장군들과 십여 개 열강의 개입군에 포위된 채 생존을 건 전쟁을 치렀다.
  5. 1918–19231차 세계대전의 여파: 강화 조약과 혁명의 물결1918년 가을 불가리아·오스만·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차례로 휴전하면서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조가 무너지고…
  6. 1918.05–1922.10시베리아와 극동의 내전1918년 5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반란으로 시베리아의 소비에트 권력이 무너진 뒤, 우랄 동쪽은 옴스크 정부와 콜차크…
  7. 1924–1927제1차 국공합작과 북벌, 1927년의 파국소련의 원조와 코민테른의 지시로 공산당원이 국민당에 가입한 국공합작은 황푸군관학교와 북벌로 군벌 중국을 흔들었다.
  8. 1937–1945중일전쟁과 제2차 국공합작1937년 7월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시작된 전면전에서 일본군은 연안 도시와 철도를 점령했고 국민정부는 충칭으로 물러났다.
  9. 1938–1941소련-일본 국경 전쟁과 중립조약소련-일본 국경 전쟁은 1938년 하산 호 전투와 1939년 할힌골 전투를 중심으로 소련·몽골과 일본·만주국 사이에서 벌어진…
  10. 1941–1945태평양 전쟁태평양 전쟁은 1941년 12월 일본 제국이 미국과 영국 세력권을 공격하면서 본격화된 1941년부터 1945년까지의…
  11. 1942.06.04–07미드웨이 해전1942년 4월 둘리틀 공습으로 본토 방어의 빈틈이 드러나자, 진주만에서 살아남은 미국 항모를 없애려던 연합함대 사령장관…
  12. 1945–19548월 혁명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일본이 항복한 1945년 8월 베트민은 8월 혁명으로 권력을 잡고 9월 2일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13. 1945.08소련의 대일 참전과 만주 작전만주 전략공세작전은 1945년 8월 9일부터 9월 2일까지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 최후의 대규모 지상 작전이었다.

정당·세력·조직 6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33전체보기

가타야마 센

片山潜
코민테른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본 일본 1859–1933 ○ 자연사

플레하노프와 악수한 일본 공산주의의 아버지, 코민테른의 동아시아 전략가

1904년 암스테르담 대회. 의장이 러일전쟁 중인 양국 대표 — 플레하노프와 가타야마 — 가 부의장으로 함께 선출되었음을 알리자, 두 사람은 일어나 말없이 손을 굳게 잡았다. 회의장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일본 공산주의의 아버지. 오카야마 출신으로 미국 유학 후 일본 최초의 노조와 사회민주당을 창건했다. 코민테른 집행위원으로 동아시아 반제국주의 전략을 입안했으며, 모스크바 크렘린 벽에 안장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84–1896미국 유학, 그리넬 칼리지·예일 신학부 졸업, 기독교·사회주의 전향
  • 1896–1901귀국, 철공조합·『노동세계』 창간, 사회민주당 창당
  • 1904암스테르담 제2인터내셔널, 플레하노프와 반전 악수
  • 1911–1912도쿄 시가전차 파업 주도, 9개월 투옥
  • 1914–1921미국 망명, CPUSA 가입, 일본인 노동자 공산 그룹 조직
  • 1921–1922멕시코 경유 소비에트 러시아, 일본공산당 창립 주도
  • 1922–1933코민테른 집행위원·상임간부회, 반제·반전 국제회의

스즈키 간타로

鈴木貫太郎
일본 국가기관 일본 일본 1868–1948 ○ 자연사

항복 결정을 조율한 해군 출신 총리

1945년 8월 10일, 그는 교착한 회의에서 “이제 제가 어전에 나아가 성의를 여쭙고, 그 뜻으로 회의의 결정을 삼고자 합니다”라고 제안했다.

스즈키 간타로는 일본 해군 대장 출신 정치가로, 천황의 시종장과 추밀원 의장을 거쳐 전쟁 말기의 총리가 되었다. 그는 공개적으로는 군부의 전쟁 수행 노선을 받들었지만, 1945년 내각과 최고전쟁지도회의의 대립을 관리하며 전쟁을 끝낼 통로를 열었다. 원폭 투하와 소련의 대일 참전 뒤에도 이른바 ‘Big Six’의 교착은 계속되었고, 스즈키는 천황 주재 회의에서 결정을 천황의 재가에 맡기는 절차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일본 정부는 포츠담 선언 수락을 결정했지만, 그 과정은 침략전쟁의 책임과 군부의 저항을 지운 것이 아니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84–1887해군병학교 입교 및 졸업
  • 1904–1905제4구축대 사령, 일본해 해전 참전
  • 1914–1917해군차관
  • 1924–1925연합함대 사령장관, 해군군령부장
  • 1929–1936천황 시종장 겸 추밀고문관
  • 1944–1945추밀원 의장
  • 1945.04–08일본 내각총리대신, 항복 결정 주도
  • 1945.12–1946.06추밀원 의장, 공직 추방으로 사임

아라키 사다오

荒木貞夫
일본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일본 일본인 1877–1966 ○ 전범 유죄 · 1955년 석방

황도파의 군국주의 지도자

1932년 5·15 사건으로 이누카이 총리가 해군 청년 장교들에게 암살되자, 육군대신 아라키는 이들을 ‘억누를 수 없는 애국자’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아라키 사다오는 일본 제국 육군의 장군이자 황도파의 대표적 지도자로, 천황 중심의 국가 개조와 대외 팽창을 결합한 군국주의를 주장했다. 1931년 만주사변 뒤 육군대신이 되어 관동군의 기정사실을 정부의 정책으로 굳히는 데 기여했고, 소련 극동을 겨냥한 북진론도 지지했다. 그러나 그가 후원한 청년 장교 세력은 통제에서 벗어나 2·26 사건으로 폭발했고, 사건 뒤 현역에서 물러났다.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955년 석방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7육군사관학교 졸업, 임관
  • 1907육군대학 수석 졸업
  • 1915–1918러시아군 종군무관, 시베리아 출병 참가
  • 1924–1925헌병사령관
  • 1928–1930육군대학 교장
  • 1931–1934육군대신, 관동군의 만주 점령과 만주국 승인을 추진
  • 1938–1939문부대신, 황도교육과 전시 동원 추진
  • 1946–1955극동국제군사재판 유죄 판결, 복역 후 석방

마쓰이 이와네

松井石根
일본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일본 일본 1878–1948 ✕ 교수형

상하이 파견군과 중지나방면군을 이끌고 난징을 점령한 장군, 난징 대학살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나고야의 몰락한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러일전쟁에 참전했고, 일본 육군의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이자 범아시아주의자로 대아시아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1935년 예편했으나 1937년 8월 상하이 전투를 위해 다시 불려 나왔고, 상하이를 차지한 뒤 군 수뇌부를 설득해 난징으로 진격했다. 그의 지휘 아래 12월 13일 난징을 점령한 부대가 난징 대학살을 저질렀다. 1938년 군에서 물러났고,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전쟁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1948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4러일전쟁 참전
  • 1922–1924하얼빈에서 장쭤린의 고문, 관동군 정보 업무
  • 1935예편
  • 1937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으로 복귀, 12월 난징 점령
  • 1938군에서 물러나 내각 참의
  • 1948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유죄, 교수형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34전체보기

가타야마 센

片山潜
코민테른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본 일본 1859–1933 ○ 자연사

플레하노프와 악수한 일본 공산주의의 아버지, 코민테른의 동아시아 전략가

1904년 암스테르담 대회. 의장이 러일전쟁 중인 양국 대표 — 플레하노프와 가타야마 — 가 부의장으로 함께 선출되었음을 알리자, 두 사람은 일어나 말없이 손을 굳게 잡았다. 회의장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일본 공산주의의 아버지. 오카야마 출신으로 미국 유학 후 일본 최초의 노조와 사회민주당을 창건했다. 코민테른 집행위원으로 동아시아 반제국주의 전략을 입안했으며, 모스크바 크렘린 벽에 안장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84–1896미국 유학, 그리넬 칼리지·예일 신학부 졸업, 기독교·사회주의 전향
  • 1896–1901귀국, 철공조합·『노동세계』 창간, 사회민주당 창당
  • 1904암스테르담 제2인터내셔널, 플레하노프와 반전 악수
  • 1911–1912도쿄 시가전차 파업 주도, 9개월 투옥
  • 1914–1921미국 망명, CPUSA 가입, 일본인 노동자 공산 그룹 조직
  • 1921–1922멕시코 경유 소비에트 러시아, 일본공산당 창립 주도
  • 1922–1933코민테른 집행위원·상임간부회, 반제·반전 국제회의

스즈키 간타로

鈴木貫太郎
일본 국가기관 일본 일본 1868–1948 ○ 자연사

항복 결정을 조율한 해군 출신 총리

1945년 8월 10일, 그는 교착한 회의에서 “이제 제가 어전에 나아가 성의를 여쭙고, 그 뜻으로 회의의 결정을 삼고자 합니다”라고 제안했다.

스즈키 간타로는 일본 해군 대장 출신 정치가로, 천황의 시종장과 추밀원 의장을 거쳐 전쟁 말기의 총리가 되었다. 그는 공개적으로는 군부의 전쟁 수행 노선을 받들었지만, 1945년 내각과 최고전쟁지도회의의 대립을 관리하며 전쟁을 끝낼 통로를 열었다. 원폭 투하와 소련의 대일 참전 뒤에도 이른바 ‘Big Six’의 교착은 계속되었고, 스즈키는 천황 주재 회의에서 결정을 천황의 재가에 맡기는 절차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일본 정부는 포츠담 선언 수락을 결정했지만, 그 과정은 침략전쟁의 책임과 군부의 저항을 지운 것이 아니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84–1887해군병학교 입교 및 졸업
  • 1904–1905제4구축대 사령, 일본해 해전 참전
  • 1914–1917해군차관
  • 1924–1925연합함대 사령장관, 해군군령부장
  • 1929–1936천황 시종장 겸 추밀고문관
  • 1944–1945추밀원 의장
  • 1945.04–08일본 내각총리대신, 항복 결정 주도
  • 1945.12–1946.06추밀원 의장, 공직 추방으로 사임

아라키 사다오

荒木貞夫
일본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일본 일본인 1877–1966 ○ 전범 유죄 · 1955년 석방

황도파의 군국주의 지도자

1932년 5·15 사건으로 이누카이 총리가 해군 청년 장교들에게 암살되자, 육군대신 아라키는 이들을 ‘억누를 수 없는 애국자’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아라키 사다오는 일본 제국 육군의 장군이자 황도파의 대표적 지도자로, 천황 중심의 국가 개조와 대외 팽창을 결합한 군국주의를 주장했다. 1931년 만주사변 뒤 육군대신이 되어 관동군의 기정사실을 정부의 정책으로 굳히는 데 기여했고, 소련 극동을 겨냥한 북진론도 지지했다. 그러나 그가 후원한 청년 장교 세력은 통제에서 벗어나 2·26 사건으로 폭발했고, 사건 뒤 현역에서 물러났다.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955년 석방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7육군사관학교 졸업, 임관
  • 1907육군대학 수석 졸업
  • 1915–1918러시아군 종군무관, 시베리아 출병 참가
  • 1924–1925헌병사령관
  • 1928–1930육군대학 교장
  • 1931–1934육군대신, 관동군의 만주 점령과 만주국 승인을 추진
  • 1938–1939문부대신, 황도교육과 전시 동원 추진
  • 1946–1955극동국제군사재판 유죄 판결, 복역 후 석방

마쓰이 이와네

松井石根
일본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일본 일본 1878–1948 ✕ 교수형

상하이 파견군과 중지나방면군을 이끌고 난징을 점령한 장군, 난징 대학살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나고야의 몰락한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러일전쟁에 참전했고, 일본 육군의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이자 범아시아주의자로 대아시아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1935년 예편했으나 1937년 8월 상하이 전투를 위해 다시 불려 나왔고, 상하이를 차지한 뒤 군 수뇌부를 설득해 난징으로 진격했다. 그의 지휘 아래 12월 13일 난징을 점령한 부대가 난징 대학살을 저질렀다. 1938년 군에서 물러났고,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전쟁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1948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4러일전쟁 참전
  • 1922–1924하얼빈에서 장쭤린의 고문, 관동군 정보 업무
  • 1935예편
  • 1937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으로 복귀, 12월 난징 점령
  • 1938군에서 물러나 내각 참의
  • 1948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유죄, 교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