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일본, 미국을 차례로 상대해 베트남 독립을 이끈 혁명가
“독립과 자유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 대미 항전 라디오 연설(1966)
베트남의 혁명가. 30년 망명 중 프랑스공산당 창립과 베트남공산당 창당에 참여했고, 1945년 비엣민을 이끌어 베트남 독립을 선언했다. 프랑스·미국과 맞서 북베트남을 이끈 독립의 상징.
상세 이력 보기
- 1911–1920선원·노동자로 세계를 떠돌다 프랑스공산당 창립에 참여
- 1925《프랑스 식민주의 재판》 출간
- 1927혁명 교육서 《혁명의 길》 출간
- 1930베트남공산당 창립
- 1941–1945비엣민 결성 — 일본·프랑스에 맞선 독립투쟁
- 1945.09베트남민주공화국 독립 선언, 초대 주석
- 1946–1954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 디엔비엔푸 승리
- 1955–1969북베트남 주석으로 통일 전쟁 지도
바오다이를 몰아내고 남베트남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가 1963년 쿠데타 때 살해된 정치가
1955년 바오다이를 축출하고 남베트남 대통령이 된 응오딘지엠은 가족을 정권 요직에 기용하고 반대파를 투옥·처형했다. 1963년 불교도 시위가 확산하자 미국은 지원을 거두었고, 군부 쿠데타로 살해되었다.
후에의 가톨릭 관료 집안에서 태어나 식민지 관리를 지낸 반공 민족주의자였다. 1954년 6월 제네바 회의 도중 바오다이가 베트남국 총리로 임명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1955년 국민투표로 바오다이를 몰아내고 남베트남(베트남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제네바 협정이 약속한 1956년 통일 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가족 중심의 권위주의 통치와 불교도 탄압으로 반발을 샀고, 1963년 미국 중앙정보국이 지지한 쿠데타 때 붙잡혀 살해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3바오다이 황제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지냈으나 프랑스가 개혁을 거부하자 사임했다.
- 1954–1955바오다이의 요청으로 베트남국 총리를 지냈다.
- 1955–1963정부가 통제한 국민투표에서 바오다이를 축출한 뒤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 대통령으로 통치했다. 1956년 전국 자유선거를 규정한 제네바 협정을 이행하지 않았다.
북베트남의 초대 주중 대사이자 친중파 원로로, 1979년 중월전쟁 뒤 중국으로 망명한 정치국원 출신 정치가
1979년 중월전쟁 뒤 카라치에서 감시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베트남의 화교 박해를 비난하고 소련에 굴종한다고 지도부를 비판했다.
응에안 성 출신의 혁명가로 호찌민과 함께 초기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1950~1957년 북베트남의 초대 주중 대사를 지내며 두 나라를 잇는 핵심 통로였고, 1956~1976년 정치국원, 1958~1979년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중소분열 때 북베트남이 잠시 중국 쪽으로 기운 1960년대 초 영향력이 정점에 이르렀으나,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밀려났다. 1979년 7월 동독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던 중 카라치에서 감시를 따돌리고 중국 영사관으로 피신해 베이징으로 갔고, 8월 기자회견에서 베트남의 화교 박해를 비난했다. 1991년 베이징에서 숨졌다.
상세 이력 보기
- 1930호찌민과 함께 인도차이나 공산당 창당을 도왔다.
- 1950–1957북베트남 초대 주중 대사로 재임했다.
- 1958–1979북베트남 및 통일 베트남 국회 상임위원회 부의장을 지냈다.
- 1960–1976베트남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선출
- 1963당 국제연락부장에 임명되어 친중 노선의 대외 정책을 맡았다.
- 1976제4차 당대회에서 정치국과 중앙위원회에서 배제되었다.
- 1979중월전쟁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32년간 베트남을 이끈 호찌민의 가장 가까운 동지이자 최장수 총리
1970년대 말 팜반동은 한 방문객에게 말했다: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단순하지만,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1926년 광저우에서 호찌민의 혁명 훈련 과정을 수료한 후, 팜반동은 베트남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평생을 보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말기 제네바 회담(1954) 북베트남 대표단장으로서 협정에 서명했고, 베트남 전쟁 기간 내내 북베트남의 대외적 얼굴로서 외교와 언론 대응을 주도했다. 1955년부터 1987년까지 32년간 총리로 재임하며 전쟁 수행, 통일, 전후 사회주의 건설을 진두지휘했으나, 전시 동원형 경제 체제를 평화기에도 고수하여 경제난을 심화시켰다. 호찌민이 ‘또 하나의 나’라고 부를 만큼 신임한 혁명가로, 보응우옌잡·레주언과 함께 베트남 현대사의 전 과정을 형성한 핵심 지도자였다.
상세 이력 보기
- 1926광저우에서 호찌민 주관 혁명 훈련 수료, 베트남 청년혁명동지회 가입
- 1929–1936프랑스 식민 당국에 체포되어 꼰다오 감옥에서 7년 복역
- 1940보응우옌잡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 인도차이나 공산당 입당
- 1945–1946베트남 민주 공화국 초대 재무장관
- 1949–1954부총리 겸 외무장관, 제네바 회담 북베트남 대표단장
- 1955–1987북베트남 및 통일 베트남 총리 (32년)
- 1986–1997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