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벨기에

사건 5 · 소속 인물 4 · 출신 인물 4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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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변천

  1. 1830 네덜란드네덜란드에서 분리 독립
  2. 1960 콩고민주공화국콩고민주공화국독립
  3. 1962 르완다르완다부룬디부룬디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5전체보기

  1. 1792–1802프랑스 혁명 전쟁제1·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배경과 전개.
  2. 1893–1896제2인터내셔널 초기의 분쟁1893년 취리히 대회는 「정치 행동」을 인정하는 정당과 노동조합만 받는 결의로 란다우어 등 아나키스트를 쫓아냈고, 폴란드…
  3. 1907–1919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제2인터내셔널은 1907년 슈투트가르트와 1912년 바젤에서 전쟁에 맞서겠다고 결의했다.
  4. 1914–1918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협상국과 동맹국이 벌인 세계전쟁.
  5. 1918–19231차 세계대전의 여파: 강화 조약과 혁명의 물결1918년 가을 불가리아·오스만·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차례로 휴전하면서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조가 무너지고…

정당·세력·조직 2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4전체보기

에밀 반데르벨데

Émile Vandervelde

국제사회주의사무국 의장으로 제2인터내셔널을 이끌다 1914년 벨기에 전시 정부에 입각한 사회주의자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노동 조항, 특히 8시간 노동일을 지지하는 조항이 조약에 포함되도록 했다. 1925년 벨기에 외무장관으로 로카르노 조약 협상에 참여했다.

벨기에 노동당의 지도자이자 법학자로, 1900년부터 국제사회주의사무국 의장을 맡아 제2인터내셔널의 얼굴이 되었다. 1914년 8월 독일이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하자 국무장관으로 입각해 조국 방위를 지지했고, 치머발트 운동에 맞서 사무국을 지키려 했다. 전후 법무장관과 외무장관을 지내며 1925년 로카르노 조약에 서명했고, 1923년 노동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장이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89벨기에 노동자당에 가입해 지도자가 되었다.
  • 1894사회당 의원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 1914국무장관으로 임명되어 전시 내각에서 일했다.
  • 1919–1920파리강화회의 조약 협상에서 노동 관련 조항, 8시간 노동일을 지지하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데 기여했다.
  • 1919법무장관으로 형벌 개혁을 추진했다.
  • 1925–1927외무장관으로 로카르노 협약 협상에 참여했다.
  • 1936–1937공중보건장관을 지냈다.

카미유 하위스만스

Camille Huysmans

1905~1922년 제2인터내셔널 서기로 전쟁 중 사무국을 지키고, 뒤에 벨기에 총리가 된 사회주의자

1917년 하위스만스가 이끈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사무국은 스톡홀름 평화회의를 추진해 교전국 사회주의자들을 중재하려 했으나, 연합국 정부의 여권 발급 거부로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플랑드르 출신의 교사·언론인으로 1905년부터 1922년까지 국제사회주의사무국 서기를 맡았다. 전쟁이 나자 사무국을 중립국 네덜란드로 옮겨 교전국 정당들을 다시 모으려 했고, 1917년 스톡홀름 회의를 준비했다. 전간기 벨기에 하원 의원과 교육장관을 지냈고, 2차 대전 중 런던으로 망명해 다시 인터내셔널 서기를 맡았다. 1946~1947년 벨기에 총리를 지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5–1922제2인터내셔널 서기
  • 1910–1965벨기에 하원 의원
  • 1925–1927교육장관
  • 1933앤트워프 시장 취임
  • 1936–1939벨기에 하원 의장
  • 1946–1947벨기에 총리
  • 1947–1949교육장관

라울 판 오버스트라텐

Raoul Van Overstraeten
벨기에 국가기관 벨기에 벨기에인 1885–1977 ○ 자연사

전쟁 경보를 냉정하게 검토한 왕실 군사고문

메헬렌 문서를 검토한 뒤, 독일의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경보를 방어 준비로 전환했다.

라울 판 오버스트라텐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복무한 벨기에 장군으로, 군사사와 작전 분석에도 힘을 쏟았다.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레오폴드 3세의 군사고문으로서 메헬렌에서 확보한 독일 공격계획을 검토하고 경보를 현실적인 방어 조치로 바꾸는 데 관여했다. 그의 신중함은 정보의 진위를 따지면서도 독일의 공격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실무적 판단으로 나타났다. 전후에는 왕실과 군의 기록을 바탕으로 벨기에의 전쟁정책을 저술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7벨기에 육군 장교로 임관
  • 1914리에주 전투, 할렌 전투, 앤트워프 포위전 및 해안 경주에 참전
  • 1916벨기에령 콩고 의용군으로 타보라 전투에 참전
  • 1933–1934기마포병 지휘관
  • 1934–1938국방장관 부관
  • 1938–1940육군대학장, 국왕의 군사고문
  • 1940–1945독일군의 전쟁포로
  • 1946–1977전후 군사사 저술가

레옹 드그렐

Léon Degrelle
렉스당 파시스트·나치 벨기에 벨기에 1906–1994 ○ 망명지에서 사망

렉스당을 이끌고 왈롱 군단으로 동부 전선에서 싸운 벨기에 나치 부역자

벨기에 부용에서 태어나 루뱅 가톨릭 대학 시절 가톨릭 행동 운동과 언론으로 정치에 들어섰다. 1930년대 초 가톨릭 출판사를 장악해 렉스당으로 바꾸었고, 렉스당은 1936년 총선에서 11%를 얻었으나 곧 쇠퇴했다. 1940년 독일의 벨기에 점령 뒤 렉스당을 부역 대중운동으로 키웠고, 1941년 독일군의 왈롱 군단을 조직해 직접 동부 전선에서 싸웠다. 군단은 1943년 무장친위대로 넘어갔고 1944년 체르카시 포위전으로 훈장을 받아 외국인 부역자의 본보기가 되었다. 궐석 사형 선고를 받고 프랑코의 스페인으로 달아나 신나치·홀로코스트 부정 저술을 내다 1994년 말라가에서 숨졌다.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4전체보기

에밀 반데르벨데

Émile Vandervelde

국제사회주의사무국 의장으로 제2인터내셔널을 이끌다 1914년 벨기에 전시 정부에 입각한 사회주의자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노동 조항, 특히 8시간 노동일을 지지하는 조항이 조약에 포함되도록 했다. 1925년 벨기에 외무장관으로 로카르노 조약 협상에 참여했다.

벨기에 노동당의 지도자이자 법학자로, 1900년부터 국제사회주의사무국 의장을 맡아 제2인터내셔널의 얼굴이 되었다. 1914년 8월 독일이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하자 국무장관으로 입각해 조국 방위를 지지했고, 치머발트 운동에 맞서 사무국을 지키려 했다. 전후 법무장관과 외무장관을 지내며 1925년 로카르노 조약에 서명했고, 1923년 노동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장이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89벨기에 노동자당에 가입해 지도자가 되었다.
  • 1894사회당 의원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 1914국무장관으로 임명되어 전시 내각에서 일했다.
  • 1919–1920파리강화회의 조약 협상에서 노동 관련 조항, 8시간 노동일을 지지하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데 기여했다.
  • 1919법무장관으로 형벌 개혁을 추진했다.
  • 1925–1927외무장관으로 로카르노 협약 협상에 참여했다.
  • 1936–1937공중보건장관을 지냈다.

카미유 하위스만스

Camille Huysmans

1905~1922년 제2인터내셔널 서기로 전쟁 중 사무국을 지키고, 뒤에 벨기에 총리가 된 사회주의자

1917년 하위스만스가 이끈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사무국은 스톡홀름 평화회의를 추진해 교전국 사회주의자들을 중재하려 했으나, 연합국 정부의 여권 발급 거부로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플랑드르 출신의 교사·언론인으로 1905년부터 1922년까지 국제사회주의사무국 서기를 맡았다. 전쟁이 나자 사무국을 중립국 네덜란드로 옮겨 교전국 정당들을 다시 모으려 했고, 1917년 스톡홀름 회의를 준비했다. 전간기 벨기에 하원 의원과 교육장관을 지냈고, 2차 대전 중 런던으로 망명해 다시 인터내셔널 서기를 맡았다. 1946~1947년 벨기에 총리를 지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5–1922제2인터내셔널 서기
  • 1910–1965벨기에 하원 의원
  • 1925–1927교육장관
  • 1933앤트워프 시장 취임
  • 1936–1939벨기에 하원 의장
  • 1946–1947벨기에 총리
  • 1947–1949교육장관

라울 판 오버스트라텐

Raoul Van Overstraeten
벨기에 국가기관 벨기에 벨기에인 1885–1977 ○ 자연사

전쟁 경보를 냉정하게 검토한 왕실 군사고문

메헬렌 문서를 검토한 뒤, 독일의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경보를 방어 준비로 전환했다.

라울 판 오버스트라텐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복무한 벨기에 장군으로, 군사사와 작전 분석에도 힘을 쏟았다.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레오폴드 3세의 군사고문으로서 메헬렌에서 확보한 독일 공격계획을 검토하고 경보를 현실적인 방어 조치로 바꾸는 데 관여했다. 그의 신중함은 정보의 진위를 따지면서도 독일의 공격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실무적 판단으로 나타났다. 전후에는 왕실과 군의 기록을 바탕으로 벨기에의 전쟁정책을 저술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7벨기에 육군 장교로 임관
  • 1914리에주 전투, 할렌 전투, 앤트워프 포위전 및 해안 경주에 참전
  • 1916벨기에령 콩고 의용군으로 타보라 전투에 참전
  • 1933–1934기마포병 지휘관
  • 1934–1938국방장관 부관
  • 1938–1940육군대학장, 국왕의 군사고문
  • 1940–1945독일군의 전쟁포로
  • 1946–1977전후 군사사 저술가

레옹 드그렐

Léon Degrelle
렉스당 파시스트·나치 벨기에 벨기에 1906–1994 ○ 망명지에서 사망

렉스당을 이끌고 왈롱 군단으로 동부 전선에서 싸운 벨기에 나치 부역자

벨기에 부용에서 태어나 루뱅 가톨릭 대학 시절 가톨릭 행동 운동과 언론으로 정치에 들어섰다. 1930년대 초 가톨릭 출판사를 장악해 렉스당으로 바꾸었고, 렉스당은 1936년 총선에서 11%를 얻었으나 곧 쇠퇴했다. 1940년 독일의 벨기에 점령 뒤 렉스당을 부역 대중운동으로 키웠고, 1941년 독일군의 왈롱 군단을 조직해 직접 동부 전선에서 싸웠다. 군단은 1943년 무장친위대로 넘어갔고 1944년 체르카시 포위전으로 훈장을 받아 외국인 부역자의 본보기가 되었다. 궐석 사형 선고를 받고 프랑코의 스페인으로 달아나 신나치·홀로코스트 부정 저술을 내다 1994년 말라가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