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러시아

사건 30 · 소속 인물 215 · 출신 인물 1196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국경은 현재 세계를 기준으로 표시합니다.

국가 변천

  1. 1795 폴란드폴란드병합
  2. 1801 그루지야그루지야병합
  3. 1917 핀란드핀란드독립
  4. 1918 그루지야그루지야라트비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리투아니아아르메니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아제르바이잔에스토니아에스토니아우크라이나우크라이나폴란드폴란드독립
  5. 1922 소련소련결성에 참여
  6. 1991 소련소련해체로 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30전체보기

  1. 1792–1802프랑스 혁명 전쟁제1·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배경과 전개.
  2. 1848–18491848년 혁명1845~1847년의 흉작과 산업 불황 속에서 1848년 1월 팔레르모, 2월 파리의 봉기가 「인민의 봄」을 열었다.
  3. 1848.03–1849.10헝가리 혁명과 독립전쟁1848년 3월 빈 봉기로 메테르니히가 물러나고 3월 15일 페슈트에서 페퇴피와 「3월 청년들」이 12개조를 내건 무혈…
  4. 1885–1941.11.06유럽의 성개혁 운동과 1930년대의 반동 (1885~1941)19세기 말 성과학과 신맬서스주의, 사회주의의 가족론에서 자란 성개혁 운동은 독일 형법 제175조·제218조, 영국의…
  5. 1905–19071905년 혁명피의 일요일 학살로 시작된 1905년 혁명은 대중 파업과 육해군 반란, 농민 봉기가 결합해 발트·폴란드·핀란드·캅카스까지…
  6. 1907–1919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제2인터내셔널은 1907년 슈투트가르트와 1912년 바젤에서 전쟁에 맞서겠다고 결의했다.
  7. 1914–1918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협상국과 동맹국이 벌인 세계전쟁.
  8. 1915–19215·4 운동과 중국공산당의 창당1915년 『신청년』이 연 신문화운동은 유교와 낡은 문체를 공격했고, 1919년 5월 4일 베르사유의 산둥 결정에 항의한…
  9. 1917–1921우크라이나 혁명과 전쟁1917년 3월 키예프에 세워진 중앙라다는 연방 러시아 안의 자치에서 출발해 1918년 1월 독립을 선언했지만, 그 뒤 4년…
  10. 1917.02–072월 혁명1917년 2월 혁명은 페트로그라드의 여성 방직 노동자들이 세계 여성의 날에 빵과 전쟁 종식을 요구하며 시작한 파업에서…
  11. 1917.03–1920.10핀란드 독립과 내전러시아 혁명 속에 자치를 되찾고 1917년 12월 독립을 선언한 핀란드는 1918년 1월 남부의 적색 핀란드와 북부의 백색…
  12. 1917.03–1921.03벨라루스 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벨로루시1917년 벨라루스 민족운동이 일어났지만 민스크의 실권은 서부 전선의 볼셰비키가 쥐었고, 12월 전벨라루스 대회는 해산되었다.
  13. 1917.03–1924.10베사라비아의 혁명과 루마니아 합병2월 혁명 뒤 베사라비아에서는 몰도바 민족운동과 농민의 토지 점거, 병사 위원회가 함께 일어났고, 1917년 12월 스파툴…
  14. 1917.05–1921.10볼가·우랄 무슬림과 크림 타타르의 민족운동1917년 5월 전러시아 무슬림 대회는 영토 연방제와 문화자치를 두고 갈렸고, 볼가·우랄에서는 이델-우랄 국가 구상과…
  15. 1917.10–1918.0110월 혁명1917년 가을 코르닐로프 반란이 좌절된 뒤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가 다수파가 되었고, 트로츠키가…
  16. 1917.11–1921.10자캅카스의 혁명과 전쟁10월 혁명을 인정하지 않은 자캅카스는 1918년 오스만의 공세 속에 한 달짜리 연방을 거쳐 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17. 1917.11–1924.10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전쟁1917년 타슈켄트에서 권력을 잡은 소비에트는 러시아인 정착민과 철도 노동자의 정권이었고, 무슬림이 세운 코칸트 자치국을…
  18. 1917.12–1918.11브레스트 강화와 독일의 동방 점령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는 군대가 사라진 소비에트 러시아가 독일과 맺은 강요된 평화였다.
  19.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1918년부터 1922년까지 소비에트 공화국은 백군 장군들과 십여 개 열강의 개입군에 포위된 채 생존을 건 전쟁을 치렀다.
  20. 1918–1922탐보프 반란과 농민 봉기곡물 할당 징발과 식량 부대의 수색은 1918년부터 농민 봉기를 낳았고, 백군이 패한 1920년 여름부터는 탐보프주의…
  21. 1918.05–1922.10시베리아와 극동의 내전1918년 5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반란으로 시베리아의 소비에트 권력이 무너진 뒤, 우랄 동쪽은 옴스크 정부와 콜차크…
  22. 1918.11–1920.10발트 독립전쟁과 국경의 강화1918년 11월 독일이 무너진 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신생 정부는 붉은 군대, 러시아 백군, 독일…
  23. 1919–1921코민테른의 창설1919년 3월 볼셰비키는 세계 혁명이 임박했다고 보고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했다.
  24. 1920.11–1936.06.27소련의 낙태 합법화·금지와 남색죄 재범죄화제정 러시아는 낙태를 엄하게 처벌했지만 거의 집행하지 않았고, 의사들은 혁명 전부터 비범죄화를 주장했다.
  25. 1921–19221921~1922년 대기근1921~1922년 대기근은 제1차 세계대전·혁명·내전으로 황폐해진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1921년 봄 극심한 가뭄이 덮치면서…
  26. 1921–1924몽골 혁명과 인민공화국 수립1921년 혁명 이후 몽골은 제한된 군주제에서 인민공화국으로 이동했다.
  27. 1922.12소련의 결성1922년 12월 30일,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야·자캅카스의 소비에트 공화국들이 대등한 자격으로 연방조약을 맺어…
  28. 1987–1991경제 개혁 논쟁과 500일 계획1987년 국영기업법과 1988년 협동조합법으로 시작된 경제 개혁은 계획도 시장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를 낳았다.
  29. 1991노보오가료보 협상과 신연방조약1991년 3월 국민투표에서 연방 유지가 76%의 찬성을 얻자, 고르바초프는 이를 마지막 정치적 자본으로 삼았다.
  30. 19918월 쿠데타와 소련의 해체1991년 8월, 신연방조약 체결을 막으려는 보수 강경파가 고르바초프를 감금하고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세워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당·세력·조직 38

정당

세력·운동

무장 조직

기관·단체

국가기관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215전체보기

이반 파스케비치

Иван Паскевич

1831년 바르샤바를 함락하고 1849년 헝가리 원정군을 이끌어 빌라고시 항복을 받아 낸 러시아 원수

1782년 폴타바에서 자포로제 코사크 가문의 아버지와 벨라루스 귀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800년 근위대에 임관했다. 아우스터리츠·보로디노·라이프치히 전투를 치렀고, 1826~1828년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에서 에리반 칸국을 정복해 에리반 백작이 되었으며 1829년 원수가 되었다. 1831년 폴란드 11월 봉기를 진압해 바르샤바를 함락하고 폴란드 총독이 되었는데, 그의 통치는 「파스케비치의 밤」이라 불리며 탄압과 러시아화로 악명이 높았다. 1849년 오스트리아를 돕는 러시아 원정군을 이끌고 헝가리에 들어가 빌라고시에서 헝가리군의 항복을 받아 냈다. 크림 전쟁 초기 도나우 원정군을 지휘하다 다쳤고 1856년 바르샤바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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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00근위대 임관
  • 1826–1828러시아-페르시아 전쟁 사령관, 에리반 백작
  • 1831–1856폴란드 총독
  • 1849헝가리 원정군 총사령관

니콜라이 1세

Николай I

폴란드 11월 봉기와 헝가리 혁명을 짓밟아 「유럽의 헌병」으로 불린 러시아 황제

1796년 가치나 궁에서 파벨 대공(뒤의 파벨 1세)의 아홉째 아이로 태어났다. 1825년 형 알렉산드르 1세가 죽은 뒤 즉위했고, 그 첫날 데카브리스트 봉기를 진압했다. 황제 직속 제3부와 헌병대로 거대한 밀정망을 운영하며 반대파를 억눌렀고, 1831년 폴란드의 11월 봉기를 진압했다. 유럽 대륙의 혁명을 억누르겠다고 나서 「유럽의 헌병」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1848년 유럽의 반동을 이끌었다. 1849년 프란츠 요제프의 요청으로 파스케비치의 군대를 보내 헝가리 혁명을 진압했으며, 프로이센에도 자유주의 헌법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압박했다. 1853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시작된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의 군사적·행정적 낙후가 드러나는 가운데 1855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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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5즉위, 데카브리스트 봉기 진압
  • 1831폴란드 11월 봉기 진압
  • 1849헝가리 혁명 진압에 원정군 파견
  • 1853–1855크림 전쟁

비사리온 그리고리예비치 벨린스키

Виссарион Григорьевич Белинский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제국 러시아 1811–1848 ○ 폐결핵

러시아 급진 인텔리겐치아의 아버지로 불린 문학 비평가

러시아가 구원을 찾을 곳은 신비주의도 금욕주의도 아니다. 계몽, 인도주의, 그리고 인간 존엄의 각성이다. — 고골에게 보낸 편지, 1847년

비사리온 벨린스키는 러시아 문학 비평의 창시자이자 혁명적 민주주의 사상의 선구자로, ‘급진 인텔리겐치아의 아버지’로 불린다. 모스크바대학에서 퇴학당한 후 『텔레스코프』, 『조국의 수기』, 『동시대인』 등 주요 문예지를 무대로 활동하며 푸시킨·고골·레르몬토프·도스토옙스키의 재능을 세상에 알렸다. 헤겔 철학을 거쳐 사회주의로 나아간 그의 사상은 ‘문학은 사회를 위해 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집약되며, 이는 체르니솁스키와 도브롤류보프를 거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먼 선구가 되었다. 1847년 고골에게 보낸 서한에서 농노제와 전제정치를 정면으로 비판했으며, 이 편지는 차르 검열하에서 필사본으로 유통되며 페트라솁스키 서클과 후대 혁명가들에게 지하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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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9–1832모스크바대학 문학부 수학, 반농노제 희곡으로 퇴학
  • 1834『텔레스코프』지에 『문학적 환상』 발표로 비평가 데뷔
  • 1838–1839『모스크바 관찰자』 비공식 편집자
  • 1839–1846『조국의 수기』 수석 비평가, 러시아 최고의 비평가로 부상
  • 1841헤겔주의 ‘현실과의 화해’ 단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사회주의자로 선언
  • 1846–1848네크라소프의 『동시대인』에서 비평 활동, 『1847년 러시아 문학 개관』 집필
  • 1847고골의 『친구와의 왕복서한선』을 규탄하는 공개서한 작성, 필사본으로 전국 유포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게르첸

Александр Иванович Герцен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러시아 1812–1870 ○ 폐렴

러시아 농민사회주의의 창시자, 《종》의 발행인

「우리는 해방하는 자와 함께, 그가 해방하는 한 함께 간다」 — 1858년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을 환영하며 《종》에 게재한 논설에서.

러시아의 작가·철학자이자 ‘러시아 사회주의’의 창시자. 농민 공동체(오브시나)에 기초해 자본주의를 우회하는 사회주의 이행론을 정립했다. 런던 망명 중 발행한 《종》(콜로콜)은 개혁기 여론을 움직였다.

상세 이력 보기
  • 1829–1833모스크바 대학 물리수학부 수학, 후보자 학위 취득
  • 1835–1842반정부 모임 혐의로 체포, 페름·뱟카·블라디미르·노브고로드 유형
  • 1842–1847모스크바에서 서구파 지식인으로 활동, 소설 《누구의 죄인가》 발표
  • 1847러시아를 영구히 떠나 유럽 망명
  • 1852런던 정착, 자유 러시아 인쇄소 설립
  • 1855–1868연감 《북극성》 발행, 푸시킨·레르몬토프의 금지시와 자유주의 논설 수록
  • 1857–1867주간지 《종》(콜로콜) 발행, 러시아 개혁 여론 주도
  • 1864–1870제네바에서 망명 출판 지속, 만년의 《과거와 사색》 집필 완성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1196전체보기

니콜라이 1세

Николай I

폴란드 11월 봉기와 헝가리 혁명을 짓밟아 「유럽의 헌병」으로 불린 러시아 황제

1796년 가치나 궁에서 파벨 대공(뒤의 파벨 1세)의 아홉째 아이로 태어났다. 1825년 형 알렉산드르 1세가 죽은 뒤 즉위했고, 그 첫날 데카브리스트 봉기를 진압했다. 황제 직속 제3부와 헌병대로 거대한 밀정망을 운영하며 반대파를 억눌렀고, 1831년 폴란드의 11월 봉기를 진압했다. 유럽 대륙의 혁명을 억누르겠다고 나서 「유럽의 헌병」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1848년 유럽의 반동을 이끌었다. 1849년 프란츠 요제프의 요청으로 파스케비치의 군대를 보내 헝가리 혁명을 진압했으며, 프로이센에도 자유주의 헌법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압박했다. 1853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시작된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의 군사적·행정적 낙후가 드러나는 가운데 1855년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25즉위, 데카브리스트 봉기 진압
  • 1831폴란드 11월 봉기 진압
  • 1849헝가리 혁명 진압에 원정군 파견
  • 1853–1855크림 전쟁

비사리온 그리고리예비치 벨린스키

Виссарион Григорьевич Белинский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제국 러시아 1811–1848 ○ 폐결핵

러시아 급진 인텔리겐치아의 아버지로 불린 문학 비평가

러시아가 구원을 찾을 곳은 신비주의도 금욕주의도 아니다. 계몽, 인도주의, 그리고 인간 존엄의 각성이다. — 고골에게 보낸 편지, 1847년

비사리온 벨린스키는 러시아 문학 비평의 창시자이자 혁명적 민주주의 사상의 선구자로, ‘급진 인텔리겐치아의 아버지’로 불린다. 모스크바대학에서 퇴학당한 후 『텔레스코프』, 『조국의 수기』, 『동시대인』 등 주요 문예지를 무대로 활동하며 푸시킨·고골·레르몬토프·도스토옙스키의 재능을 세상에 알렸다. 헤겔 철학을 거쳐 사회주의로 나아간 그의 사상은 ‘문학은 사회를 위해 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집약되며, 이는 체르니솁스키와 도브롤류보프를 거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먼 선구가 되었다. 1847년 고골에게 보낸 서한에서 농노제와 전제정치를 정면으로 비판했으며, 이 편지는 차르 검열하에서 필사본으로 유통되며 페트라솁스키 서클과 후대 혁명가들에게 지하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29–1832모스크바대학 문학부 수학, 반농노제 희곡으로 퇴학
  • 1834『텔레스코프』지에 『문학적 환상』 발표로 비평가 데뷔
  • 1838–1839『모스크바 관찰자』 비공식 편집자
  • 1839–1846『조국의 수기』 수석 비평가, 러시아 최고의 비평가로 부상
  • 1841헤겔주의 ‘현실과의 화해’ 단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사회주의자로 선언
  • 1846–1848네크라소프의 『동시대인』에서 비평 활동, 『1847년 러시아 문학 개관』 집필
  • 1847고골의 『친구와의 왕복서한선』을 규탄하는 공개서한 작성, 필사본으로 전국 유포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게르첸

Александр Иванович Герцен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러시아 1812–1870 ○ 폐렴

러시아 농민사회주의의 창시자, 《종》의 발행인

「우리는 해방하는 자와 함께, 그가 해방하는 한 함께 간다」 — 1858년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을 환영하며 《종》에 게재한 논설에서.

러시아의 작가·철학자이자 ‘러시아 사회주의’의 창시자. 농민 공동체(오브시나)에 기초해 자본주의를 우회하는 사회주의 이행론을 정립했다. 런던 망명 중 발행한 《종》(콜로콜)은 개혁기 여론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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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9–1833모스크바 대학 물리수학부 수학, 후보자 학위 취득
  • 1835–1842반정부 모임 혐의로 체포, 페름·뱟카·블라디미르·노브고로드 유형
  • 1842–1847모스크바에서 서구파 지식인으로 활동, 소설 《누구의 죄인가》 발표
  • 1847러시아를 영구히 떠나 유럽 망명
  • 1852런던 정착, 자유 러시아 인쇄소 설립
  • 1855–1868연감 《북극성》 발행, 푸시킨·레르몬토프의 금지시와 자유주의 논설 수록
  • 1857–1867주간지 《종》(콜로콜) 발행, 러시아 개혁 여론 주도
  • 1864–1870제네바에서 망명 출판 지속, 만년의 《과거와 사색》 집필 완성

니콜라이 플라토노비치 오가료프

Николай Платонович Огарёв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러시아 1813–1877 ○ 사망

게르첸과 함께 《종》을 편집한 러시아 유토피아 사회주의 이론가

「우리는 이 언덕 위에서, 목숨을 바쳐 우리가 선택한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 1827년 참새 언덕에서 열다섯 살의 오가료프와 게르첸이 러시아 해방을 위해 나눈 평생의 맹세.

러시아의 시인·철학자이자 혁명적 민주주의자. 1827년 참새 언덕에서 게르첸과 러시아 해방을 위한 평생의 맹세를 나누었으며, 런던 망명 중 《종》(콜로콜)과 《북극성》을 공동 발행하며 개혁기 러시아 여론을 움직였다. 농민 공동체에 기초한 ‘러시아 사회주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비밀 조직 ‘토지와 자유’의 창설에 참여했으며, 귀족기에서 라즈노친치기 혁명운동으로의 이행을 이론적으로 매개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829–1833모스크바 대학 물리수학부 및 윤리정치학부 수학
  • 1834–1839학생 서클 참여로 체포, 펜자 유형 및 주지사 사무실 근무
  • 1841–1846유럽 체류, 베를린 대학 수강, 첫 시 《Otechestvennye Zapiski》 발표
  • 1846–1856펜자 영지에서 벨로오무트 농민 1,800명 해방, 공동체 경영 실험, 첫 시집 출간
  • 1856–1867런던 망명, 게르첸과 자유 러시아 인쇄소·《종》·《북극성》 공동 운영
  • 1861–1863비밀결사 ‘토지와 자유’ 공동 창설, 폴란드 봉기 지지
  • 1865–1877제네바 이주 후 런던 귀환, 바쿠닌 협력, 그리니치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