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친독 라트비아 정부를 이끈 목사이자 작가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영리한 연설이나 조약이 아니라 힘이다”는 1924년 반역 재판 석상에서 남긴 말이다.
라트비아 문학의 대표적 소설가이자 루터교 목사로 1919년 5월 리예파야 쿠데타 뒤 폰 데어 골츠가 뒷받침한 친독 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체시스 전투 뒤 정권이 무너져 독일로 피했고 1924년 귀국해 국가반역죄로 추방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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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918
러시아 복음루터교회마티시·칼스나바·비에탈바 교구 목사
종교 -
1917–
문학·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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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라트비아 국가기관친독 임시정부 총리
정부·행정 -
문학·예술대표
경력 연표
- 1890–1899도르파트(타르투) 대학 신학부 수학
- 1903–1906체시스에서 잡지 《아우스트룸스》 편집·발행
- 1906–1918마티시·칼스나바·비에탈바 교구 루터교 목사
- 1917라트비아 농민연합 창립 참여, 이사
- 1919.05–06친독 임시정부 수반(총리)
- 1924국가반역죄 유죄 판결, 대통령 사면 뒤 추방
- 1926–1930동프로이센 알트슈타트 독일 교구 목사
관련 역사 사건
- 1905–19071905년 혁명1905년 혁명의 반대자1905년 혁명에 반대하고 독일계 지주층과 협력하는 보수 노선을 취했다.
-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1919년 친독 라트비아 정부 수반1919년 4월 리예파야 쿠데타 뒤 5월 10일 폰 데어 골츠가 뒷받침한 친독 정부의 수반이 되었고, 6월 체시스 전투 뒤 정권이 무너져 독일로 피했다.
- 1918.11–1920.10발트 독립전쟁과 국경의 강화1919년 친독 라트비아 정부 수반1919년 4월 리예파야 쿠데타 뒤 5월 10일 폰 데어 골츠가 뒷받침한 친독 정부의 수반이 되었고, 6월 체시스 전투 뒤 정권이 무너져 독일로 피했다.
혁명과 독립전쟁
루터교 목사이자 라트비아 문학의 대표적 소설가로, 1905년 혁명에 반대해 독일계 지주층과 협력하는 보수 노선을 취했다. 1919년 4월 16일 리예파야 쿠데타로 울마니스 정부가 쫓겨난 뒤 5월 10일 폰 데어 골츠의 지원을 받는 정부의 수반이 되었고, 5월 22일 독일계 부대가 리가를 탈환하자 리가에 들어갔다. 6월 체시스 전투에서 독일 향토방위군이 에스토니아군에 패하고 7월 연합국 중재로 울마니스가 복귀하면서 정권은 무너졌다. 독일로 피했다가 1924년 라트비아로 돌아와 국가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추방되었다. 1942년 리가에서 죽었다. 라트비아에서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배신자」와 동의어였고, 문학사에서의 평가와 정치사에서의 평가가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