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튀르키예

사건 8 · 소속 인물 9 · 출신 인물 9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국경은 현재 세계를 기준으로 표시합니다.

국가 변천

  1. 1830 그리스그리스독립
  2. 1878 루마니아루마니아몬테네그로몬테네그로세르비아세르비아독립
  3. 1908 불가리아불가리아독립
  4. 1912 알바니아알바니아독립
  5. 1918 예멘예멘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8전체보기

  1. 1792–1802프랑스 혁명 전쟁제1·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배경과 전개.
  2. 1912–1913발칸 전쟁1912년 러시아의 후원 아래 불가리아·세르비아·그리스·몬테네그로가 비밀 조약으로 발칸 동맹을 맺었다.
  3. 1914–1918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협상국과 동맹국이 벌인 세계전쟁.
  4. 1917.11–1921.10자캅카스의 혁명과 전쟁10월 혁명을 인정하지 않은 자캅카스는 1918년 오스만의 공세 속에 한 달짜리 연방을 거쳐 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5. 1917.12–1918.11브레스트 강화와 독일의 동방 점령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는 군대가 사라진 소비에트 러시아가 독일과 맺은 강요된 평화였다.
  6. 1918–19231차 세계대전의 여파: 강화 조약과 혁명의 물결1918년 가을 불가리아·오스만·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차례로 휴전하면서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조가 무너지고…
  7. 1938–1944.03추축국 편의 헝가리: 빈 중재에서 돈강까지1938~1941년 헝가리는 두 차례의 빈 중재와 루테니아·유고슬라비아 점령으로 트리아농 조약에서 잃은 땅의 일부를…
  8. 1962쿠바 미사일 위기쿠바 미사일 위기는 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면서 미국과 정면충돌한 13일간의 대치다.

정당·세력·조직 4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9전체보기

카밀 파샤

Kıbrıslı Mehmed Kâmil Paşa
튀르키예 국가기관 자유주의·공화주의 튀르키예 키프로스 (튀르크계) 1833–1913 → 망명지에서 사망

제1차 발칸 전쟁의 강화를 추진하다 1913년 1월 바브알리 습격으로 쫓겨난 친영국 대재상

1833년 키프로스 니코시아에서 포병 대위의 아들로 태어나 이집트에서 공부하고 이집트 총독 아바스 1세를 섬겼다. 1851년 런던을 다녀온 뒤 평생 영국을 동경해 「영국인 카밀」로 불렸다. 1860년부터 오스만 정부에서 여러 주를 다스렸고 네 차례 대재상을 지냈다. 1908년 청년튀르크 혁명 뒤 대재상이 되었으나 통일진보위원회와 맞서다 불신임을 받았다. 1912년 10월 다시 대재상이 되어 제1차 발칸 전쟁을 외교로 끝내려 했고, 1913년 1월 큰 영토 상실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1월 23일 통일진보위원회의 정변으로 총구 앞에서 물러났다. 이집트를 거쳐 영국이 점령한 키프로스로 망명했고 같은 해 11월 그곳에서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60–1879오스만 각 주 행정관·총독
  • 1885–1891오스만 대재상
  • 1895오스만 대재상
  • 1908–1909오스만 대재상
  • 1912–1913오스만 대재상, 바브알리 습격으로 사임
  • 1913이집트를 거쳐 키프로스로 망명

탈라트 파샤

Mehmed Talât Paşa
튀르키예 국가기관 민족주의 튀르키예 튀르키예 1874–1921 ✕ 베를린에서 암살

발칸 전쟁 중 정변으로 권력을 잡고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지휘한 통일진보위원회의 지도자

에디르네 주 크르잘리에서 태어나 우편 사무원으로 일하며 통일진보위원회에 들어갔다가 투옥되었다. 1908년 혁명 뒤 의원이 되었고 1909년 내무장관에 올랐다. 제1차 발칸 전쟁 중 에디르네 할양 소문이 돌자 1913년 1월 23일 엔베르와 함께 정부 청사를 습격해 카밀 파샤 내각을 무너뜨렸고, 다시 내무장관이 되어 엔베르·제말과 「세 파샤」 독재를 이끌었다. 1915년 4월 24일 아르메니아 지식인 체포·추방을 명령하고 5월 강제이주법을 공포해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일으켰다. 1917년 대재상이 되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교섭했고 1918년 독일로 달아났다. 궐석 사형 선고를 받았고 1921년 베를린에서 아르메니아 혁명연맹의 테힐리리안에게 암살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6통일진보위원회 세포 활동으로 투옥
  • 1908오스만 의회 의원 (에디르네)
  • 1909–1911오스만 내무장관
  • 1913바브알리 습격 정변 주도
  • 1913–1918오스만 내무장관
  • 1917–1918오스만 대재상
  • 1918독일로 망명

엔베르 파샤

İsmail Enver Paşa
튀르키예 국가기관 민족주의 튀르키예 튀르키예 1881–1922 ✕ 붉은군대와 싸우다 전사

「세 파샤」의 전쟁장관으로 오스만을 참전시키고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를 주도한 군인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나 통일진보위원회에 들어갔고 1908년 청년 튀르크 혁명의 영웅이 되었다. 1913년 쿠데타로 정부를 무너뜨리고 전쟁장관이 되어 탈라트·제말과 「세 파샤」로 제국을 다스렸다. 독일과의 동맹으로 오스만을 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였고, 1914년 12월 사르카미시에서 대군을 잃은 뒤 패배를 아르메니아인 탓으로 돌렸다. 아르메니아인·그리스인·아시리아인 제노사이드의 주요 가해자였다. 패전 뒤 달아나 궐석 사형을 선고받았다. 볼셰비키와 손잡았다가 1921년 중앙아시아에서 바스마치 반란군 편으로 넘어갔고, 1922년 붉은군대와 싸우다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8청년 튀르크 혁명 지도자
  • 1913내각 청사 습격 쿠데타
  • 1914–1918오스만 전쟁장관
  • 1914사르카미시 전투 패배
  • 1919–1920궐석 사형 선고
  • 1921–1922바스마치 반란 가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Mustafa Kemal Atatürk
튀르키예 국가기관 민족주의 튀르키예 튀르키예 1881–1938 ○ 자연사

갈리폴리에서 이름을 얻고 국민운동을 이끌어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운 대통령

살로니카에서 태어나 청년 튀르크 운동에 가담했고, 1차 세계대전 때 갈리폴리 방어로 이름을 얻었다. 패전 뒤 1919년 5월 삼순에 상륙해 점령에 맞선 국민운동을 조직했고, 1920년 앙카라에 대국민의회를 열었다. 볼셰비키 정부의 금과 무기 지원을 받아 그리스군을 물리쳤고, 로잔 조약으로 승리를 인정받았다. 이 시기 아나톨리아의 아르메니아인·그리스인에 대한 인종 청소가 학살·추방·주민 교환으로 마무리되었다. 1922년 술탄제를 폐지하고 1923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일당 체제 아래 세속화와 튀르크화 정책을 폈다. 1938년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5갈리폴리 전투 제19사단장
  • 1919삼순 상륙, 국민운동 조직
  • 1920앙카라 대국민의회 의장
  • 1921–1922사카리아·둠루프나르 전투 승리
  • 1923–1938튀르키예 공화국 초대 대통령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9전체보기

율리 오시포비치 마르토프

Юлий Осипович Мартов
멘셰비키 사회민주주의자 소련 튀르키예 1873–1923 → 사망

레닌의 가장 오랜 벗이자 가장 원칙적인 적수

1918년, 마르토프는 스탈린이 1907년 당에서 제명된 전력이 있음을 폭로했다. 스탈린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혁명재판소는 마르토프에게 ‘공적 견책’을 선고했다.

이스크라를 레닌과 함께 만든 동지였으나, 1903년 당원 자격 조항 하나를 두고 갈라져 멘셰비키의 지도자가 되었다. 10월 이후에도 나라를 떠나지 않고 합법 야당의 자리를 지키려 애썼고, 1920년 출국을 「허락받아」 베를린에서 결핵으로 죽었다. 병상의 레닌이 그의 안부를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상세 이력 보기
  • 1895페테르부르크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레닌과 공동)
  • 1900–1903이스크라 편집진, 1903년 분열로 멘셰비키 지도자
  • 1914–1917반전 국제주의파
  • 1917–1920멘셰비키 국제주의파 지도, 합법 야당 시도
  • 1921–1923베를린에서 『사회주의 통보』 창간

탈라트 파샤

Mehmed Talât Paşa
튀르키예 국가기관 민족주의 튀르키예 튀르키예 1874–1921 ✕ 베를린에서 암살

발칸 전쟁 중 정변으로 권력을 잡고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지휘한 통일진보위원회의 지도자

에디르네 주 크르잘리에서 태어나 우편 사무원으로 일하며 통일진보위원회에 들어갔다가 투옥되었다. 1908년 혁명 뒤 의원이 되었고 1909년 내무장관에 올랐다. 제1차 발칸 전쟁 중 에디르네 할양 소문이 돌자 1913년 1월 23일 엔베르와 함께 정부 청사를 습격해 카밀 파샤 내각을 무너뜨렸고, 다시 내무장관이 되어 엔베르·제말과 「세 파샤」 독재를 이끌었다. 1915년 4월 24일 아르메니아 지식인 체포·추방을 명령하고 5월 강제이주법을 공포해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일으켰다. 1917년 대재상이 되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교섭했고 1918년 독일로 달아났다. 궐석 사형 선고를 받았고 1921년 베를린에서 아르메니아 혁명연맹의 테힐리리안에게 암살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6통일진보위원회 세포 활동으로 투옥
  • 1908오스만 의회 의원 (에디르네)
  • 1909–1911오스만 내무장관
  • 1913바브알리 습격 정변 주도
  • 1913–1918오스만 내무장관
  • 1917–1918오스만 대재상
  • 1918독일로 망명

엔베르 파샤

İsmail Enver Paşa
튀르키예 국가기관 민족주의 튀르키예 튀르키예 1881–1922 ✕ 붉은군대와 싸우다 전사

「세 파샤」의 전쟁장관으로 오스만을 참전시키고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를 주도한 군인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나 통일진보위원회에 들어갔고 1908년 청년 튀르크 혁명의 영웅이 되었다. 1913년 쿠데타로 정부를 무너뜨리고 전쟁장관이 되어 탈라트·제말과 「세 파샤」로 제국을 다스렸다. 독일과의 동맹으로 오스만을 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였고, 1914년 12월 사르카미시에서 대군을 잃은 뒤 패배를 아르메니아인 탓으로 돌렸다. 아르메니아인·그리스인·아시리아인 제노사이드의 주요 가해자였다. 패전 뒤 달아나 궐석 사형을 선고받았다. 볼셰비키와 손잡았다가 1921년 중앙아시아에서 바스마치 반란군 편으로 넘어갔고, 1922년 붉은군대와 싸우다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8청년 튀르크 혁명 지도자
  • 1913내각 청사 습격 쿠데타
  • 1914–1918오스만 전쟁장관
  • 1914사르카미시 전투 패배
  • 1919–1920궐석 사형 선고
  • 1921–1922바스마치 반란 가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Mustafa Kemal Atatürk
튀르키예 국가기관 민족주의 튀르키예 튀르키예 1881–1938 ○ 자연사

갈리폴리에서 이름을 얻고 국민운동을 이끌어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운 대통령

살로니카에서 태어나 청년 튀르크 운동에 가담했고, 1차 세계대전 때 갈리폴리 방어로 이름을 얻었다. 패전 뒤 1919년 5월 삼순에 상륙해 점령에 맞선 국민운동을 조직했고, 1920년 앙카라에 대국민의회를 열었다. 볼셰비키 정부의 금과 무기 지원을 받아 그리스군을 물리쳤고, 로잔 조약으로 승리를 인정받았다. 이 시기 아나톨리아의 아르메니아인·그리스인에 대한 인종 청소가 학살·추방·주민 교환으로 마무리되었다. 1922년 술탄제를 폐지하고 1923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일당 체제 아래 세속화와 튀르크화 정책을 폈다. 1938년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5갈리폴리 전투 제19사단장
  • 1919삼순 상륙, 국민운동 조직
  • 1920앙카라 대국민의회 의장
  • 1921–1922사카리아·둠루프나르 전투 승리
  • 1923–1938튀르키예 공화국 초대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