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가장 오랜 벗이자 가장 원칙적인 적수
1918년, 마르토프는 스탈린이 1907년 당에서 제명된 전력이 있음을 폭로했다. 스탈린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혁명재판소는 마르토프에게 ‘공적 견책’을 선고했다.
이스크라를 레닌과 함께 만든 동지였으나, 1903년 당원 자격 조항 하나를 두고 갈라져 멘셰비키의 지도자가 되었다. 10월 이후에도 나라를 떠나지 않고 합법 야당의 자리를 지키려 애썼고, 1920년 출국을 「허락받아」 베를린에서 결핵으로 죽었다. 병상의 레닌이 그의 안부를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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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페테르부르크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레닌과 공동)
- 1900–1903이스크라 편집진, 1903년 분열로 멘셰비키 지도자
- 1914–1917반전 국제주의파
- 1917–1920멘셰비키 국제주의파 지도, 합법 야당 시도
- 1921–1923베를린에서 『사회주의 통보』 창간
발칸 전쟁 중 정변으로 권력을 잡고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지휘한 통일진보위원회의 지도자
에디르네 주 크르잘리에서 태어나 우편 사무원으로 일하며 통일진보위원회에 들어갔다가 투옥되었다. 1908년 혁명 뒤 의원이 되었고 1909년 내무장관에 올랐다. 제1차 발칸 전쟁 중 에디르네 할양 소문이 돌자 1913년 1월 23일 엔베르와 함께 정부 청사를 습격해 카밀 파샤 내각을 무너뜨렸고, 다시 내무장관이 되어 엔베르·제말과 「세 파샤」 독재를 이끌었다. 1915년 4월 24일 아르메니아 지식인 체포·추방을 명령하고 5월 강제이주법을 공포해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일으켰다. 1917년 대재상이 되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교섭했고 1918년 독일로 달아났다. 궐석 사형 선고를 받았고 1921년 베를린에서 아르메니아 혁명연맹의 테힐리리안에게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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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6통일진보위원회 세포 활동으로 투옥
- 1908오스만 의회 의원 (에디르네)
- 1909–1911오스만 내무장관
- 1913바브알리 습격 정변 주도
- 1913–1918오스만 내무장관
- 1917–1918오스만 대재상
- 1918독일로 망명
「세 파샤」의 전쟁장관으로 오스만을 참전시키고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를 주도한 군인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나 통일진보위원회에 들어갔고 1908년 청년 튀르크 혁명의 영웅이 되었다. 1913년 쿠데타로 정부를 무너뜨리고 전쟁장관이 되어 탈라트·제말과 「세 파샤」로 제국을 다스렸다. 독일과의 동맹으로 오스만을 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였고, 1914년 12월 사르카미시에서 대군을 잃은 뒤 패배를 아르메니아인 탓으로 돌렸다. 아르메니아인·그리스인·아시리아인 제노사이드의 주요 가해자였다. 패전 뒤 달아나 궐석 사형을 선고받았다. 볼셰비키와 손잡았다가 1921년 중앙아시아에서 바스마치 반란군 편으로 넘어갔고, 1922년 붉은군대와 싸우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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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청년 튀르크 혁명 지도자
- 1913내각 청사 습격 쿠데타
- 1914–1918오스만 전쟁장관
- 1914사르카미시 전투 패배
- 1919–1920궐석 사형 선고
- 1921–1922바스마치 반란 가담
갈리폴리에서 이름을 얻고 국민운동을 이끌어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운 대통령
살로니카에서 태어나 청년 튀르크 운동에 가담했고, 1차 세계대전 때 갈리폴리 방어로 이름을 얻었다. 패전 뒤 1919년 5월 삼순에 상륙해 점령에 맞선 국민운동을 조직했고, 1920년 앙카라에 대국민의회를 열었다. 볼셰비키 정부의 금과 무기 지원을 받아 그리스군을 물리쳤고, 로잔 조약으로 승리를 인정받았다. 이 시기 아나톨리아의 아르메니아인·그리스인에 대한 인종 청소가 학살·추방·주민 교환으로 마무리되었다. 1922년 술탄제를 폐지하고 1923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일당 체제 아래 세속화와 튀르크화 정책을 폈다. 1938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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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5갈리폴리 전투 제19사단장
- 1919삼순 상륙, 국민운동 조직
- 1920앙카라 대국민의회 의장
- 1921–1922사카리아·둠루프나르 전투 승리
- 1923–1938튀르키예 공화국 초대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