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발칸 전쟁의 강화를 추진하다 1913년 1월 바브알리 습격으로 쫓겨난 친영국 대재상
1833년 키프로스 니코시아에서 포병 대위의 아들로 태어나 이집트에서 공부하고 이집트 총독 아바스 1세를 섬겼다. 1851년 런던을 다녀온 뒤 평생 영국을 동경해 「영국인 카밀」로 불렸다. 1860년부터 오스만 정부에서 여러 주를 다스렸고 네 차례 대재상을 지냈다. 1908년 청년튀르크 혁명 뒤 대재상이 되었으나 통일진보위원회와 맞서다 불신임을 받았다. 1912년 10월 다시 대재상이 되어 제1차 발칸 전쟁을 외교로 끝내려 했고, 1913년 1월 큰 영토 상실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1월 23일 통일진보위원회의 정변으로 총구 앞에서 물러났다. 이집트를 거쳐 영국이 점령한 키프로스로 망명했고 같은 해 11월 그곳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메흐메트 카밀 파샤
주요 활동과 소속
- 1885–1913 정부·행정 · 튀르키예 국가기관
- 1860–1879 정부·행정 · 튀르키예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860–1879오스만 각 주 행정관·총독
- 1885–1891오스만 대재상
- 1895오스만 대재상
- 1908–1909오스만 대재상
- 1912–1913오스만 대재상, 바브알리 습격으로 사임
- 1913이집트를 거쳐 키프로스로 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