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의 권위주의 통치와 1987년 계엄 해제를 잇는 총통
장제스의 장남으로 소련에서 공부하고 일한 뒤 1937년 중국으로 돌아왔다. 국민정부의 지방 행정과 정보·보안 체계에서 권력을 쌓았으며 타이완에서는 국방부장과 행정원장을 지냈다. 1975년 국민당 주석, 1978년 중화민국 총통이 되어 경제 개발과 권위주의적 통치를 이어 갔다. 집권 말기 야당 결성과 언론 개방의 여지를 넓히고 1987년 타이완 계엄을 해제했다. 1988년 재임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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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1937소련 유학과 근무
- 1937중국 귀환
- 1972–1978행정원장
- 1975국민당 주석 취임
- 1978–1988중화민국 총통
- 1987.07.15타이완 계엄 해제
류샤오보 등과 단식하고 광장 철수를 협상한 타이완 음악가
타이완 출신의 작곡가·가수로 「용의 후예」로 이름을 알렸다. 1983년 중국 대륙으로 건너갔고 1989년 톈안먼 시위에 참여했다. 류샤오보 등과 단식하며 비폭력을 호소했고 6월 4일 새벽 계엄군과 협상해 학생들의 철수에 관여했다. 광장에 끝까지 남았던 목격자로서 철수 과정과 시내 발포를 구분하는 증언을 남겼다. 1990년 타이완으로 추방된 뒤 해외에서도 음악 활동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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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용의 후예」 작곡
- 1983타이완에서 중국 대륙으로 이동
- 1989류샤오보 등과 단식
- 1989.06.04광장 철수 협상 참여
- 1990타이완으로 추방
리펑과의 TV 대화로 알려진 위구르계 학생운동 지도자
위구르계로 본명은 외르케시 될레트. 베이징사범대학 학생이던 1989년 대학생 자치 조직과 단식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5월 18일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대화에서 리펑 총리에게 항의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진압 뒤 중국을 떠나 망명했고 이후 타이완에 정착해 정치 평론과 민주화 운동을 이어 갔다. 2014년과 2016년 타이완 입법위원 선거에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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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베이징사범대학 학생으로 단식운동 참여
- 1989리펑과의 텔레비전 대화에서 항의
- 1989진압 뒤 망명
- 1996타이완 정착
- 2014–2016입법위원 선거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