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독일

사건 54 · 소속 인물 217 · 출신 인물 250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국경은 현재 세계를 기준으로 표시합니다.

국가 변천

  1. 1795 폴란드폴란드병합
  2. 1918 폴란드폴란드독립
  3. 1938 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병합
  4. 1939 폴란드폴란드병합
  5. 1945 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폴란드폴란드독립
  6. 1949 분단,동독동독성립
  7. 1990 동독동독통합으로 통일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54전체보기

  1. 1792–1802프랑스 혁명 전쟁제1·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배경과 전개.
  2. 1848–18491848년 혁명1845~1847년의 흉작과 산업 불황 속에서 1848년 1월 팔레르모, 2월 파리의 봉기가 「인민의 봄」을 열었다.
  3. 1848.03–1849.07독일 3월 혁명흉작과 빈곤, 메테르니히 체제에 대한 불만이 쌓인 3월 전기 끝에, 1848년 2월 파리 혁명 소식이 바덴의 만하임 집회와…
  4. 1870–1871보불전쟁에스파냐 왕위를 둘러싼 호엔촐레른 후보 문제와 비스마르크가 손질해 공개한 엠스 전보로 1870년 7월 19일 프랑스가…
  5. 1870–1871파리 코뮌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제2제정이 무너지고 파리가 넉 달 동안 포위된 뒤, 왕당파 다수의 국민의회와 무장한 파리 국민방위군이…
  6. 1885–1941.11.06유럽의 성개혁 운동과 1930년대의 반동 (1885~1941)19세기 말 성과학과 신맬서스주의, 사회주의의 가족론에서 자란 성개혁 운동은 독일 형법 제175조·제218조, 영국의…
  7. 1893–1896제2인터내셔널 초기의 분쟁1893년 취리히 대회는 「정치 행동」을 인정하는 정당과 노동조합만 받는 결의로 란다우어 등 아나키스트를 쫓아냈고, 폴란드…
  8. 1897.05.15–1935.09.01독일 성개혁 운동과 나치의 파괴 (1897~1935)1871년 형법의 제175조와 제218조에 맞서 1897년 히르슈펠트의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 1905년 슈퇴커의…
  9. 1907–1919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제2인터내셔널은 1907년 슈투트가르트와 1912년 바젤에서 전쟁에 맞서겠다고 결의했다.
  10. 1914–1918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협상국과 동맹국이 벌인 세계전쟁.
  11. 1917–1921우크라이나 혁명과 전쟁1917년 3월 키예프에 세워진 중앙라다는 연방 러시아 안의 자치에서 출발해 1918년 1월 독립을 선언했지만, 그 뒤 4년…
  12. 1917.03–1920.10핀란드 독립과 내전러시아 혁명 속에 자치를 되찾고 1917년 12월 독립을 선언한 핀란드는 1918년 1월 남부의 적색 핀란드와 북부의 백색…
  13. 1917.03–1921.03벨라루스 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벨로루시1917년 벨라루스 민족운동이 일어났지만 민스크의 실권은 서부 전선의 볼셰비키가 쥐었고, 12월 전벨라루스 대회는 해산되었다.
  14. 1917.05–1921.10볼가·우랄 무슬림과 크림 타타르의 민족운동1917년 5월 전러시아 무슬림 대회는 영토 연방제와 문화자치를 두고 갈렸고, 볼가·우랄에서는 이델-우랄 국가 구상과…
  15. 1917.11–1921.10자캅카스의 혁명과 전쟁10월 혁명을 인정하지 않은 자캅카스는 1918년 오스만의 공세 속에 한 달짜리 연방을 거쳐 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16. 1917.12–1918.11브레스트 강화와 독일의 동방 점령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는 군대가 사라진 소비에트 러시아가 독일과 맺은 강요된 평화였다.
  17. 1918–19231차 세계대전의 여파: 강화 조약과 혁명의 물결1918년 가을 불가리아·오스만·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차례로 휴전하면서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조가 무너지고…
  18. 1918.10–1919.08독일 11월 혁명1918년 11월 킬 수병 봉기가 전국의 노동자·병사 평의회로 번져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9. 1918.11–1920.10발트 독립전쟁과 국경의 강화1918년 11월 독일이 무너진 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신생 정부는 붉은 군대, 러시아 백군, 독일…
  20. 1919–1921코민테른의 창설1919년 3월 볼셰비키는 세계 혁명이 임박했다고 보고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했다.
  21. 1919–1938호르티 체제: 백색테러에서 우경화까지1919년 평의회 공화국이 무너진 뒤 호르티의 국민군 장교 부대들은 공산당원·사회민주당원·유대인을 겨냥한 헝가리 백색테러를…
  22. 1920.11–1936.06.27소련의 낙태 합법화·금지와 남색죄 재범죄화제정 러시아는 낙태를 엄하게 처벌했지만 거의 집행하지 않았고, 의사들은 혁명 전부터 비범죄화를 주장했다.
  23. 1930–1934나치 집권과 수권법대공황으로 의회 다수가 무너지자 1930년부터 대통령 긴급명령에 기댄 대통령 내각이 이어졌고, 나치당은 선거와 돌격대의 거리…
  24. 1931–1941.11.06스페인 제2공화국의 성개혁과 프랑코 체제의 반동 (1931~1941)1931년 공화국 헌법은 남녀평등과 이혼권을 명문화했고, 의회는 캄포아모르와 켄트의 토론 끝에 여성 참정권을 의결했다.
  25. 1934–1939코민테른의 인민전선 전환1928년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주적으로 삼던 코민테른은 1933년 나치 집권과 1934년 프랑스·오스트리아의 반파시즘 투쟁을…
  26. 1936–1939스페인 내전1936년 7월 군부의 반란은 정부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무장으로 저지됐고, 그 자리에서 카탈루냐와 아라곤의 공장과 토지가…
  27. 1938–1944.03추축국 편의 헝가리: 빈 중재에서 돈강까지1938~1941년 헝가리는 두 차례의 빈 중재와 루테니아·유고슬라비아 점령으로 트리아농 조약에서 잃은 땅의 일부를…
  28. 1939–1945추축국 점령하의 유럽: 협력과 저항1941~1942년 절정기에 추축국은 유럽 대륙 인구의 절반 이상을 다스렸다.
  29. 1939.08–1940.08독소 불가침조약과 동유럽 분할독소 불가침조약은 1939년 8월 23일 밤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소련 외무인민위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와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30. 1939.09–1941.06발트 3국 병합과 1941년 6월 추방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의정서에 따라 소련은 1939년 9~10월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 상호원조조약과 소련군 기지를…
  31. 1940–1944프랑스 침공과 비시 정부이 사건은 1940년 5월 10일부터 1944년 해방까지 독일의 프랑스 정복과 제3공화국의 붕괴, 비시의 통치를 가리킨다.
  32. 1940–1944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해방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해방은 1940년 독일의 프랑스 패배와 비시 정부 수립에서 시작되어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프로방스…
  33. 1940.06.10–1943.05.13북아프리카 전역1940년 6월 이탈리아의 참전으로 시작된 북아프리카 전역은 이집트를 침공한 이탈리아군이 컴퍼스 작전으로 무너지고, 독일이…
  34. 1940.07–1941.05영국 본토 항공전영국 본토 항공전은 1940년 7월부터 1941년 5월까지 독일 공군과 영국 공군이 영국 해협과 영국 본토의 제공권을 두고…
  35. 1941–1944제2전선과 노르망디 상륙제2전선과 노르망디 상륙은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뒤 제기된 서유럽 재개전 요구가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36. 1941–1944레닌그라드 봉쇄레닌그라드 봉쇄는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독일군과 핀란드군이 소련의 레닌그라드를 육상에서…
  37. 1941–1945대조국전쟁1941년 6월 나치 독일의 기습 침공으로 시작된 대조국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상전이었다.
  38. 1941–1945그리스 저항과 12월 사건그리스 저항과 12월 사건은 1941년 추축국 점령에서 시작되어 1945년 바르키자 협정으로 이어진 저항과 권력투쟁이다.
  39. 1941–1945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전쟁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전쟁은 1941년 4월 추축국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침공하고 분할한 뒤 1945년까지 벌어진 공산당…
  40. 1941.06–1944.11독일 점령하의 발트 3국: 6월 봉기에서 홀로코스트와 1944년 퇴각까지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과 함께 리투아니아에서는 6월 봉기와 임시정부, 에스토니아에서는 숲의 형제들의 「여름…
  41. 1942–1943스탈린그라드 전투스탈린그라드 전투는 1942년 7월 17일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소련의 스탈린그라드와 돈강 하류 및 볼가강 주변에서…
  42. 1943–1945이탈리아 전선과 무솔리니의 몰락이탈리아 전선은 1943년 7월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으로 시작되어 1945년 5월 독일군의 이탈리아 항복으로 끝난 제2차…
  43. 1943.07.05–08.23쿠르스크 전투1943년 봄 제3차 하리코프 전투 뒤 쿠르스크를 가운데 둔 소련군 돌출부가 독일군 전선 안으로 튀어나왔다.
  44. 1944–1953발트 3국의 재점령: 숲의 형제들과 1949년의 추방1944년 여름부터 1945년 5월 쿠를란트의 항복까지 붉은군대는 발트 3국을 다시 점령했고, 돌아온 공화국 지도자들은…
  45. 1944.03–1945.02독일 점령하의 헝가리: 마르가레테 작전에서 부다페스트 포위까지1944년 3월 19일 독일군은 연합국과 휴전을 꾀하던 헝가리를 점령했다.
  46. 1944.08–10바르샤바 봉기바르샤바 봉기는 1944년 8월 1일부터 10월 2일까지 독일 점령에 맞서 폴란드 국내군이 수도를 해방하고 소련군보다 먼저…
  47. 1945–1949동독: 소련 군정에서 독일민주공화국까지1945년 6월 카를스호르스트에 소련군정청이 세워졌고, 4월 말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울브리히트 그룹이 베를린 행정을 짰다.
  48. 1945.02–08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1945년 2월 크림반도의 휴양지 얄타에서 스탈린·루스벨트·처칠이, 7월과 8월 베를린 교외 포츠담에서…
  49. 1947–1948마셜 플랜과 냉전의 시작1947년 미국이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을 내놓자, 소련은 그것을 미국 자본에 유럽을 종속시키려는 시도로 규정했다.
  50. 1948–1949베를린 봉쇄와 공수베를린 봉쇄(1948년 6월 24일–1949년 5월 12일)는 소련이 서방 연합국이 장악한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모든…
  51. 1952.07–1953.071953년 동독 6월 봉기1952년 7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사회주의의 계획적 건설」을 선포하고 집단화·재무장·중공업 투자와 교회 탄압을…
  52. 1961베를린 장벽 건설베를린 장벽은 1961년 8월 13일 동독 정부가 서베를린을 둘러싸며 쌓은 156km의 경계 요새 시설이다.
  53. 1975헬싱키 협정헬싱키 협정(1975년 8월 1일)은 유럽 33개국과 미국, 캐나다 등 35개국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서명한…
  54. 1985–1989신사고 외교와 냉전의 종식고르바초프는 핵전쟁에는 승자가 없으며 안보는 상대를 위협해서가 아니라 상대와 함께 얻는 것이라는 「신사고」를 내걸고 소련…

정당·세력·조직 51

정당

세력·운동

무장 조직

기관·단체

국가기관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217전체보기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폰 브라운슈바이크

Karl Wilhelm Ferdinand von Braunschweig-Wolfenbüttel
독일 국가기관 왕정·왕당파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신성 로마 제국) 독일 1735–1806 ✕ 아우어슈테트 전상으로 사망

브라운슈바이크 선언을 낸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 사령관

1792년 7월 25일 코블렌츠에서 자기 이름으로 선언을 내, 프랑스 왕실이 해를 입으면 파리와 주민에게 가혹한 보복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군주로, 프리드리히 대왕의 조카이자 프로이센군 원수였다. 1792년 전쟁이 시작되자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 사령관이 되었고, 7월 25일 코블렌츠에서 이른바 브라운슈바이크 선언을 냈다. 명의는 공작이었지만 문안은 망명 귀족 쪽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을 지키려던 이 위협은 파리에서 오히려 왕정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그는 롱위와 베르됭을 점령했으나 9월 20일 발미에서 진격을 멈추고 프랑스에서 철수했다. 1806년 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780아버지를 이어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군주가 되었다.
  • 1792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 사령관으로 7월 25일 브라운슈바이크 선언을 냈다.
  • 1792롱위와 베르됭을 점령했으나 9월 20일 발미에서 진격을 멈추고 프랑스에서 물러났다.
  • 1806프로이센군을 이끌고 아우어슈테트에서 싸우다 치명상을 입고 11월 10일 오텐젠에서 사망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Friedrich Wilhelm II
독일 국가기관 왕정·왕당파 프로이센 독일 (프로이센) 1744–1797 ○ 재위 중 포츠담에서 사망

필니츠 선언에 서명하고 대프랑스 원정에 나선 프로이센 왕

1791년 8월 필니츠에서 레오폴트 2세와 함께 프랑스 왕을 지지하는 선언에 서명했고, 1792년 여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이끄는 원정에 직접 참가했다.

1786년 숙부 프리드리히 2세를 이어 프로이센 왕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선왕의 계몽 통치에서 물러나 검열과 종교 통제를 강화했다. 프랑스 혁명에 대응해 오스트리아와의 오랜 대립을 접고, 1791년 8월 필니츠에서 레오폴트 2세와 함께 선언을 냈으며 1792년 2월 정식 동맹을 맺었다. 1792년과 1793년 대프랑스 원정에 직접 참가했으나 재정 부족에 묶였고, 조정은 폴란드 분할에 더 관심을 두었다. 1795년 바젤에서 프랑스와 단독 강화를 맺었고 1797년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786숙부 프리드리히 2세가 죽자 프로이센 왕으로 즉위했다.
  • 17918월 필니츠에서 레오폴트 2세와 함께 프랑스 왕을 지지하는 선언을 냈다.
  • 1792–17932월 오스트리아와 정식 동맹을 맺고, 1792년과 1793년 대프랑스 원정에 직접 참가했다.
  • 1793–1795제2·3차 폴란드 분할로 영토를 얻었고, 1795년 4월 바젤 조약으로 프랑스와 단독 강화했다.
  • 179711월 16일 포츠담에서 사망했다.
독일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독일 독일 1784–1877 ○ 자연사

1848년 슐레스비히 전쟁의 연방군 사령관을 지내고 11월 베를린에 진주해 혁명을 누른 프로이센 원수

1784년 슈테틴의 발트 독일계 브랑겔 가문에서 태어나 1796년 용기병 연대에 들어갔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공을 세워 철십자 훈장을 받았고, 1834년 뮌스터 사단장으로 쾰른 분쟁 때의 소요를 눌렀다. 1848년 4월부터 말뫼 휴전(8월 26일)까지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 독일 연방군 제2군단을 지휘했다. 철수 명령에는 자신이 프로이센 왕이 아니라 제국 섭정의 지휘를 받는다며 버텼다. 그해 가을 마르크 총사령관이 되어 11월 10일 베를린에 진주해 계엄을 선포하고 프로이센 국민의회를 해산시켰다. 1856년 원수가 되었고, 여든 살에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의 연합군을 지휘했다. 「파파 브랑겔」로 불렸고 1877년 베를린에서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796프로이센 용기병 연대 입대
  • 1848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 연방군 제2군단장
  • 1848베를린 진주·계엄 선포
  • 1856프로이센 원수
  • 1864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연합군 사령관

다비트 한제만

David Hansemann

1848년 캄프하우젠 3월 내각의 재무장관을 지낸 아헨의 기업가, 디스콘토 협회의 창립자

1790년 함부르크 핑켄베르더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17년부터 아헨에서 사업을 일으켰고 라인 철도 회사 부사장을 맡는 등 라인주의 철도 건설에 앞장섰다. 1843년 라인주 의회, 1847년 연합 의회 의원이 되었고 타협에 열린 자유주의의 대표 인물로 꼽혔다. 1848년 캄프하우젠의 3월 내각에서 재무장관이 되었고, 다음 아우어스발트 내각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다 9월 8일 물러났다. 귀족에게는 위험한 급진파로, 급진파에게는 기득권의 하인으로 보였고 마르크스는 그를 「자유주의 아첨꾼」이라 비웃었다. 정계를 떠나 1851년 디스콘토 협회를 세웠다. 1864년 슐랑엔바트에서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37라인 철도 회사 부사장
  • 1847프로이센 연합 의회 의원
  • 1848프로이센 재무장관
  • 1851디스콘토 협회 설립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250전체보기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폰 브라운슈바이크

Karl Wilhelm Ferdinand von Braunschweig-Wolfenbüttel
독일 국가기관 왕정·왕당파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신성 로마 제국) 독일 1735–1806 ✕ 아우어슈테트 전상으로 사망

브라운슈바이크 선언을 낸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 사령관

1792년 7월 25일 코블렌츠에서 자기 이름으로 선언을 내, 프랑스 왕실이 해를 입으면 파리와 주민에게 가혹한 보복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군주로, 프리드리히 대왕의 조카이자 프로이센군 원수였다. 1792년 전쟁이 시작되자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 사령관이 되었고, 7월 25일 코블렌츠에서 이른바 브라운슈바이크 선언을 냈다. 명의는 공작이었지만 문안은 망명 귀족 쪽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을 지키려던 이 위협은 파리에서 오히려 왕정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그는 롱위와 베르됭을 점령했으나 9월 20일 발미에서 진격을 멈추고 프랑스에서 철수했다. 1806년 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780아버지를 이어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군주가 되었다.
  • 1792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 사령관으로 7월 25일 브라운슈바이크 선언을 냈다.
  • 1792롱위와 베르됭을 점령했으나 9월 20일 발미에서 진격을 멈추고 프랑스에서 물러났다.
  • 1806프로이센군을 이끌고 아우어슈테트에서 싸우다 치명상을 입고 11월 10일 오텐젠에서 사망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Friedrich Wilhelm II
독일 국가기관 왕정·왕당파 프로이센 독일 (프로이센) 1744–1797 ○ 재위 중 포츠담에서 사망

필니츠 선언에 서명하고 대프랑스 원정에 나선 프로이센 왕

1791년 8월 필니츠에서 레오폴트 2세와 함께 프랑스 왕을 지지하는 선언에 서명했고, 1792년 여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이끄는 원정에 직접 참가했다.

1786년 숙부 프리드리히 2세를 이어 프로이센 왕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선왕의 계몽 통치에서 물러나 검열과 종교 통제를 강화했다. 프랑스 혁명에 대응해 오스트리아와의 오랜 대립을 접고, 1791년 8월 필니츠에서 레오폴트 2세와 함께 선언을 냈으며 1792년 2월 정식 동맹을 맺었다. 1792년과 1793년 대프랑스 원정에 직접 참가했으나 재정 부족에 묶였고, 조정은 폴란드 분할에 더 관심을 두었다. 1795년 바젤에서 프랑스와 단독 강화를 맺었고 1797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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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86숙부 프리드리히 2세가 죽자 프로이센 왕으로 즉위했다.
  • 17918월 필니츠에서 레오폴트 2세와 함께 프랑스 왕을 지지하는 선언을 냈다.
  • 1792–17932월 오스트리아와 정식 동맹을 맺고, 1792년과 1793년 대프랑스 원정에 직접 참가했다.
  • 1793–1795제2·3차 폴란드 분할로 영토를 얻었고, 1795년 4월 바젤 조약으로 프랑스와 단독 강화했다.
  • 179711월 16일 포츠담에서 사망했다.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Klemens von Metternich

빈 회의 뒤 「메테르니히 체제」로 혁명을 억누르다 1848년 3월 빈 봉기로 쫓겨난 오스트리아 국가재상

라인란트의 메테르니히 가문에서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스트라스부르와 마인츠에서 공부했다. 1809년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되었고, 빈 회의에서 오스트리아 대표단을 이끌어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 질서를 짰다. 1821년부터 1848년까지 국가재상을 지내며 「메테르니히 체제」로 러시아·프로이센과 손잡고 혁명과 민족 운동을 억눌렀고, 1819년 카를스바트 결의로 독일의 대학과 언론을 단속했으며, 국내에서는 검열과 첩자망을 썼다. 1848년 3월 13일 빈 봉기 때 루트비히 대공의 요구로 사임하고 런던으로 망명했다. 런던·브라이턴·브뤼셀을 거쳐 1851년 빈 궁정으로 돌아와 프란츠 요제프에게 조언했고, 1859년 86세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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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09–1848오스트리아 외무장관
  • 1814–1815빈 회의 오스트리아 대표단장
  • 1821–1848오스트리아 국가재상
  • 1848–1851런던·브뤼셀 망명
독일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독일 독일 1784–1877 ○ 자연사

1848년 슐레스비히 전쟁의 연방군 사령관을 지내고 11월 베를린에 진주해 혁명을 누른 프로이센 원수

1784년 슈테틴의 발트 독일계 브랑겔 가문에서 태어나 1796년 용기병 연대에 들어갔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공을 세워 철십자 훈장을 받았고, 1834년 뮌스터 사단장으로 쾰른 분쟁 때의 소요를 눌렀다. 1848년 4월부터 말뫼 휴전(8월 26일)까지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 독일 연방군 제2군단을 지휘했다. 철수 명령에는 자신이 프로이센 왕이 아니라 제국 섭정의 지휘를 받는다며 버텼다. 그해 가을 마르크 총사령관이 되어 11월 10일 베를린에 진주해 계엄을 선포하고 프로이센 국민의회를 해산시켰다. 1856년 원수가 되었고, 여든 살에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의 연합군을 지휘했다. 「파파 브랑겔」로 불렸고 1877년 베를린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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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6프로이센 용기병 연대 입대
  • 1848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 연방군 제2군단장
  • 1848베를린 진주·계엄 선포
  • 1856프로이센 원수
  • 1864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연합군 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