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07–1941.05

영국 본토 항공전

독일은 왜 영국을 바다 건너 침공하지 못했으며, 영국은 어떻게 하늘을 지켜냈는가?

영국 본토 항공전은 1940년 7월부터 1941년 5월까지 독일 공군과 영국 공군이 영국 해협과 영국 본토의 제공권을 두고 벌인 항공전이다.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의 패배 뒤 독일은 영국을 협상으로 굴복시키거나 침공하려 했고, 이를 위해 영국 전투기지휘부를 무너뜨리고 해협의 제해권을 뒷받침할 제공권을 얻으려 했다. 7월에는 해협 선박과 항구를 공격했고, 8월에는 비행장과 레이더망을 겨냥했으며, 9월 7일부터 런던과 도시들에 대한 대규모 폭격으로 전환했다. 영국은 레이더, 관측대, 지휘통제망, 허리케인과 스핏파이어를 결합해 독일의 주간 공습을 막았고, 독일은 1940년 9월 침공을 무기한 미루었다. 야간 폭격은 1941년 5월까지 이어졌지만 영국을 전쟁에서 이탈시키지는 못했다.

대륙이 무너진 날, 섬의 방어가 시험대에 올랐다

1940년 5월 10일 아침, 영국이 맞은 위기는 단순히 독일 공군이 강해졌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1939년 9월 전쟁이 시작되자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독일을 봉쇄하고 대륙에서 막아야 했지만, 1940년 봄까지 그 전쟁은 본토의 장기 방공전으로 바뀔 조짐을 보였다. 독일군은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전선의 약한 지점을 찔렀고, 전차부대는 뫼즈강을 돌파한 뒤 연합군의 후방과 해협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영국 원정군은 프랑스군과 함께 북쪽에 고립되었고, 됭케르크에서 빠져나오더라도 포병, 차량, 탄약을 남겨야 했다. 프랑스 총리 폴 레노가 5월 15일 윈스턴 처칠에게 전화해 “우리는 패배했다. 전투에서 졌다”고 말한 것은 군대의 사기가 아니라 연합국의 작전 체계가 붕괴하고 있음을 알린 것이었다.

영국은 이때 이미 하늘을 지키기 위한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두었다. 1936년 창설된 전투기지휘부는 휴 다우딩 아래에서 폭격기와 전투기를 같은 방식으로 쓰지 않고, 제한된 전투기를 본토의 결정적 지점에 보존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널리 퍼진 “폭격기는 언제나 뚫고 들어온다”는 믿음에 맞서 다우딩은 조기 경보와 지상 통제가 있으면 전투기를 계속 공중에 띄워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았다. 그의 구상은 단순한 레이더 장비가 아니었다. 해안의 체인 홈과 저고도 탐지망, 자원 관측대가 습격을 찾으면 정보가 벤틀리 프라이어리의 필터실로 모였고, 네 개 집단과 각 구역의 작전실이 허리케인과 스핏파이어를 무전으로 유도했다. 이 체계는 완성품이 아니었다. 해안을 넘은 폭격기는 레이더의 사각으로 들어갔고 관측 보고는 높이와 규모를 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속 순찰 대신 필요한 순간에 출격하게 해 연료, 기체, 조종사를 아꼈다.

따라서 5월 10일의 정치적 압력은 두 방향에서 왔다. 프랑스와 영국의 지휘부는 대륙을 붙들기 위해 전투기와 폭격기를 프랑스로 보내려 했고, 다우딩은 더 많은 전력을 보내면 영국 본토 방어가 위험해진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프랑스 전투에서 영국 공군은 큰 손실을 입었고, 영국은 독일의 해안 기지와 폭격기 앞에 동맹군도 깊이도 부족한 상태로 남았다. 그러나 독일의 승리도 영국을 자동으로 항복시키지는 않았다. 영국 정부가 선택해야 할 것은 대륙 탈환이 아니라, 섬을 전쟁에서 이탈시키려는 다음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방공망과 생산 능력을 보존하는 일이었다. 본토 항공전은 바로 이 상반된 요구, 동맹국을 구할 것인가 본토를 지킬 것인가가 만든 조건에서 시작되었다.

결과

독일의 제공권 확보 실패는 해상 침공 계획인 작전명 바다사자를 실행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독일이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결정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패배가 되었다. 영국은 항구와 공업도시, 주거지를 폭격당했고 민간인과 방공 인력이 큰 희생을 치렀지만 항복하지 않았다. 1941년 5월 독일 공군의 주력은 소련 침공 준비를 위해 동부로 이동했고, 영국은 이후 연합국의 폭격과 제2전선 준비를 위한 기지로 남았다. 이 전환의 다음 국면은 이 사이트의 「대조국전쟁」에서 다룬다.

연표

  1. 1940.05.10
    프랑스 전투와 고립

    독일의 서부 공세가 시작되고 윈스턴 처칠이 영국 총리가 되었으며,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의 붕괴로 영국은 대륙의 동맹군 없이 남았다.

  2. 1940.06.04
    됭케르크 철수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됭케르크에서 철수했지만 중장비를 잃었고, 영국 본토 방어와 공중전이 전쟁의 다음 결정적 과제가 되었다.

  3. 1940.06.18
    항공전의 예고

    처칠은 하원에서 프랑스 전투가 끝났으며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해 항복이 아닌 장기 항전을 정부의 노선으로 제시했다.

  4. 1940.07.04
    해협 봉쇄의 시작

    독일 공군은 영국 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집중 공격해 화물선 네 척을 침몰시키고 세 척을 손상시켰으며, 대형 상선의 해협 횡단은 중단되었다.

  5. 1940.07.10
    공식적인 전투 개시

    영국이 공식적으로 정한 항공전의 시작일로, 독일 공군은 항구와 선박을 압박하고 영국 전투기지휘부의 출격을 소모시키려 했다.

  6. 1940.07.16
    작전명 바다사자

    아돌프 히틀러는 영국 상륙작전 준비를 명령했으며, 해협을 건널 조건으로 영국 공군을 먼저 무력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7. 1940.08.13
    독수리의 날

    독일 공군은 영국 남부의 비행장과 방공 기반시설을 무너뜨리려는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지만 전투기지휘부를 결정적으로 제거하지 못했다.

  8. 1940.08.15
    가장 큰 출격일

    독일 공군은 전투 기간 중 가장 많은 출격을 감행했고 영국 전투기 34대를 파괴했지만, 영국의 레이더와 지휘망은 계속 작동했다.

  9. 1940.09.07
    런던 대공습

    독일은 런던 항만을 시작으로 영국 도시들에 대한 주야간 폭격인 블리츠로 전환했고, 전투기지휘부 비행장에 대한 압박은 완화되었다.

  10. 1940.09.15
    영국 본토 항공전의 날

    독일 공군이 런던에 가장 무거운 공습을 가했으나 영국 전투기들이 이를 저지했고, 독일의 제공권 확보 전망은 더욱 약해졌다.

  11. 1940.09.17
    침공 무기한 연기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한 히틀러는 작전명 바다사자의 실행을 무기한 연기했으며, 상륙 함대와 바지선은 항구에 남았다.

  12. 1940.11.14
    코번트리 폭격

    독일 공군은 코번트리를 12시간 동안 폭격해 도심과 성당을 파괴했고 560명 이상이 사망했지만, 공장과 도시는 곧 기능을 회복했다.

  13. 1941.02.19
    항구로 향한 폭격

    히틀러는 폭격의 중심을 항구 시설로 옮겼고, 2월 19일부터 5월 12일까지 그 목표에 대한 공격 51회가 이루어졌다.

  14. 1941.05.12
    대규모 공습의 끝

    영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야간 공습이 사실상 끝났고, 독일 공군의 주력은 소련 침공을 준비하는 동부 전선으로 이동했다.

관련 인물 3명

관련 용어

출처: Winston S. Churchill, Their Finest Hour, House of Commons speech, 18 June 1940Royal Air Force Museum, History of the Battle of Britain: Operation Sealion, Royal Air Force MuseumRoyal Air Force Museum, History of the Battle of Britain: RADAR, The Battle Winner?, Royal Air Force Museum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Battle of Britain Begins, Holocaust EncyclopediaRichard Overy, The Battle of Britain: The Myth and the Reality, Penguin Books, 2000Francis K. Mason, Battle Over Britain: A History of the German Air Assaults on Great Britain 1940–1941, McWhirter Twins,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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