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괴링

Hermann Göring

나치 국가의 전쟁과 약탈을 조직한 공군 원수

1940년 8월, 런던과 민간 도시로 공습을 돌린 결정은 RAF에 회복할 시간을 주었다.

헤르만 괴링은 제1차 세계대전의 전투기 조종사에서 나치 독일의 핵심 권력자이자 공군 최고지휘관으로 변신했다. 그는 프로이센 경찰과 게슈타포 창설, 재무장과 전시경제 동원을 주도하며 독재와 침략전쟁의 국가기구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그는 루프트바페의 역량을 과대평가했고, 공군기지와 전투기 방어망을 압박하던 작전을 영국 도시 폭격으로 돌리는 데 관여해 RAF가 회복할 시간을 주었다. 전쟁 뒤 뉘른베르크에서 주요 전쟁범죄자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집행 전날 자살했다.

다른 이름: 헤르만 빌헬름 괴링 · 헤르만 게링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라이히스베르케와 점령지 경제 약탈 (1936~1945)

1936년 10월 괴링은 4개년 계획 전권위원이 되어 독일 경제 전체를 전쟁 준비에 동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국내 철광석 확보가 계획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자, 그는 루르 민간 제철업자들이 경제성이 없다고 본 잘츠기터 저품위 철광석 개발을 국가 사업으로 밀어붙였다. 1937년 7월 국가 소유의 라이히스베르케 헤르만 괴링이 설립되어 루르를 능가하는 제철 생산을 목표로 삼았고, 파울 플라이거가 운영을 맡았다. 괴링은 도청과 감시로 업계의 조직적 반발을 사전에 차단했으며, 1937년 11월 경제장관 할마르 샤흐트가 사임한 뒤에는 경제부와 훗날 제국은행까지 통제 아래 두었다.

라이히스베르케는 곧 국가 독점적 군수 복합체로 성장했다. 1938년 2월 자본금을 500만에서 4억 라이히스마르크로 늘렸고, 4월에는 라인메탈을 흡수해 무기 생산에 진출했다. 안슐루스 뒤에는 오스트리아 중공업을,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뒤에는 체코 중공업의 50~60퍼센트를 삼켰다. 알피네 몬탄게젤샤프트 장악이나 로스차일드 소유 비트코비체 제철소 강제 몰수처럼 인수 방식은 주식 매입에서 강제 접수까지 다양했고, 폴란드·프랑스·소련 점령지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1941년 말 라이히스베르케는 자본금 24억 라이히스마르크와 노동자 약 50만 명을 거느린 유럽 최대 기업이 되었다.

이 팽창은 강제노동과 약탈 위에 세워졌다. 잘츠기터 사업장 노동자의 상당수는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네덜란드 등에서 동원된 외국인이었고, 게슈타포는 현장에 수용소를 두어 '부적응' 노동자를 가두었다. 1944년 5월부터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이 노동력으로 동원되었고, 잘츠기터에 노동력을 공급한 세 수용소에는 최대 6,500명이 수감되어 있었다. 괴링은 유대인 재산과 유럽 미술품 약탈의 중심 인물이기도 했다. 미 육군 정보부의 미술품 약탈자 적기 명단에 그의 이름이 135회 등장하며, 알프레트 로젠베르크가 이끈 약탈 조직과 협력해 프랑스에서만 2만 6천량의 미술품과 가구가 독일로 반출되었다. 그의 소장품은 약 1,500점, 추정 가치 2억 달러에 이르렀다. 뉘른베르크 판결문은 그를 '노예노동 프로그램의 책임자이자 유대인 및 기타 인종에 대한 탄압 프로그램의 창시자'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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