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다우딩

Hugh Dowding
영국 국가기관 영국 영국인 1882–1970 ○ 자연사

레이더 방공체계의 설계자

“시카고의 갱스터들이 차에 방탄유리를 달 수 있다면, 우리 조종사들도 같은 것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영국 공군 장교 휴 다우딩은 전투기 중심의 방공을 일찍 중시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영국 전투기지휘부에서 레이더, 관측망, 습격 plotting, 무선통제를 하나의 체계로 묶어 소수의 전투기로 독일 공군의 공격에 대응했다. 1940년 영국 전투에서 예비 전력과 조종사를 보존한 신중한 운용은 방어의 지속성을 높였지만, 전후에는 대형 편대 전술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지휘권을 잃었다.

다른 이름: 휴 캐스월 트레멘히어 다우딩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투기지휘부 해임과 전후의 다우딩

1940년 11월 24일 다우딩은 마지못해 전투기지휘부 지휘권을 내려놓았고, '대형 편대' 전술의 옹호자였던 숄토 더글러스가 그를 대신했다. 처칠은 그를 신형 항공기 조달을 맡는 대미 항공사절단 책임자로 임명해 충격을 완화하려 했다. 1941년 11월에는 그의 책 『천사의 열두 군단』 출판이 보류되었는데, 영국 정부는 그 내용이 독일군에 유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이 책은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야 출간되었다.

전투기지휘부를 떠난 뒤 다우딩은 항공생산부의 특무로 미국에 파견되었으나 직언으로 인기를 잃었고, 귀국 후에는 영국 공군의 인력 운용을 검토하는 연구를 이끌었다. 1942년 7월 영국 공군에서 퇴역했으며, 1943년 6월 2일 벤틀리 수도원의 다우딩 남작으로 서임되었다. 퇴역 후 그는 영국 공군이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했다는 생각에 점차 뼈아파했고, 대형 편대 옹호자들의 음모가 자신의 해임을 조작했다고 주장한 로버트 라이트의 저서를 승인했다. 영국 공군은 그를 영국 공군 원수 진급에서 제외했다. 1951년에는 전사한 조종사를 기리며 빅긴힐의 성 조지 예배당 주춧돌을 놓았다.

퇴역 후 다우딩은 심령술에 깊이 관심을 가진 작가이자 강연자가 되었다. 1943년 첫 저서를 시작으로 여러 권을 썼고, 전통적 기독교를 거부하고 윤회를 주장하는 신지학회에 가입했다. 신지학과 심령술 신념에 따라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상원에서 식용 동물의 도살을 다룬 여러 차례의 호소를 했다. 반생체실험 운동가였던 그는 1970년 2월 15일 켄트주 로열 턴브리지웰스 자택에서 사망했고, 유해는 화장되어 웨스트민스터 사원 영국 공군 예배당의 영국 전투 기념 창 아래에 안치되었다. 그의 아들 데릭이 남작 작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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