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슬라브 회의를 주재하고 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를 내세운 체코의 역사가, 「민족의 아버지」
1798년 모라비아의 호드슬라비체에서 개신교 교사 집안에 태어났다. 1823년 프라하에 자리 잡아 보헤미아 박물관 잡지를 편집했고,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체코 민족사』를 펴냈는데 첫 권은 1836년 독일어로 나왔다. 체코 민족 부흥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민족의 아버지」라 불렸다. 1848년 「프랑크푸르트에 보내는 편지」로 독일 예비의회 참석을 거절했고, 6월 프라하 슬라브 회의의 의장을 맡았으며, 크렘지어 제국의회 의원으로 남독일과 슬라브 국가들의 연방인 강한 오스트리아, 곧 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를 주장했다. 1861년 오스트리아 상원 종신 의원이 되었고 1876년 프라하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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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3프라하 정착, 보헤미아 박물관 잡지 편집
- 1836『체코 민족사』 첫 권
- 1848프라하 슬라브 회의 의장
- 1848–1849크렘지어 제국의회 의원
- 1861오스트리아 상원 종신 의원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른 국민영웅에서 프라하의 봄의 뜻밖의 보루가 된 군인 대통령
1968년 8월 모스크바에서 브레즈네프가 ‘노동자-농민 정부’를 세우라 요구하자, 스보보다는 둡체크와 개혁파 지도부를 석방하지 않으면 내 머리에 총알을 박겠다고 응수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서 탈영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합류한 1차대전 참전자로, 2차대전에서는 소련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조직해 동부전선을 누비며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1948년 국방장관으로서 ‘군대는 인민을 향해 진군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며 공산당의 2월 쿠데타를 방조했으나, 곧 숙청당해 1950년대를 수감과 은둔으로 보냈다. 1968년 3월 둡체크의 추천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프라하의 봄 개혁에 동의했고, 8월 바르샤바조약군 침공 직후 모스크바에서 브레즈네프 앞에서 권총 자살을 위협하며 납치된 개혁파 지도부의 석방을 이끌어냈다. 이후 정상화 국면에서 신문 검열에 협력하고 둡체크 교체를 방조하는 등 소극적 순응으로 일관하다 1975년 헌법 조항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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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5–1920체코슬로바키아 군단: 즈보로프·바흐마치 전투, 시베리아 철수
- 1921–1939체코슬로바키아군 장교; 뮌헨 위기 당시 대대장
- 1939–1945폴란드·소련에서 체코슬로바키아군 편성; 제1군단장으로 키예프·두클라 해방
- 1945–1950체코슬로바키아 국방장관
- 1950–1951부총리 겸 체육위원장으로 전보
- 1951–1954숙청: 체포·수감 후 석방, 고향 협동조합에서 노동
- 1954–1959클레멘트 고트발트 군사대학 총장
- 1968–1975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서기장으로 1948년 2월 쿠데타를 조직하고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한 실무 책임자
1947년 9월 코민포름 회의에서 슬란스키는 모스크바의 권력 장악 지령을 받고 프라하로 돌아왔다. ‘국제 무대에서처럼 국내 전선에서도 공세로 전환했다’ — 1948년 2월 쿠데타의 서막이었다.
1929년 KSČ 중앙위원·정치국원이 된 후 고트발트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대전 중 모스크바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방송을 이끌고 1944년 슬로바키아 민족봉기에 참가했다. 1945~1951년 서기장으로서 당 기구를 장악해 1948년 2월 쿠데타의 실무를 지휘, 체코슬로바키아를 소비에트형 인민민주주의 국가로 전환시켰다. 1951년 체포되어 1952년 반국가 음모·트로츠키주의·티토주의·시오니즘 혐의로 사형당했으며, 이 재판은 동구권 숙청 중 가장 뚜렷한 반유대주의 성격을 띠었다. 1963년 사법 복권, 1968년 당적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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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 입당
- 1924KSČ 기관지 《루데 프라보》 편집자
- 1927–1928KSČ 오스트라바 지역당 서기
- 1928–1929KSČ 클라드노 지역당 서기
- 1929KSČ 중앙위원·정치국원 선출
- 1935–1938체코슬로바키아 국회의원
- 1939–1945모스크바 망명, 체코슬로바키아 라디오 방송 주필, 슬로바키아 민족봉기 참가
- 1945–1951KSČ 중앙위원회 서기장
- 1948인민민병대 사령관 겸직, 2월 쿠데타 실무 지휘
- 1951체코슬로바키아 부총리
스탈린주의 정통을 고수하다 프라하의 봄 개혁운동에 의해 축출된 체코슬로바키아 지도자
1965년 메이데이 집회 직후 즉석 인터뷰에서 “고기가 곧 나올 겁니다!”(Maso bude vbrzku!)라고 선언했다. 국민들은 “그 ‘곧’이라는 곳이 도대체 어디냐”고 물으며 온 나라가 웃었다.
1921년 KSČ 창립 당원이자 자물쇠공 출신으로, 슬란스키 숙청 과정에서 당 기구를 타고 부상했으며, 고트발트 사후 제1서기(1953–1968)와 대통령(1957–1968)을 겸직하며 15년간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치했다. 스탈린주의 정통을 고수하며 중앙계획·검열을 강화하고 1950년대 정치재판 청산을 거부했으나, 경제 침체와 슬로바키아의 불만이 누적되며 정권 기반이 잠식되었다. 1968년 1월 둡체크에게 당직을 내주며 강제 사임함으로써 개혁의 최대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이는 곧바로 프라하의 봄을 촉발했다. 1971년 정상화 국면에서 중앙위원으로 재선되었으나 실질적 영향력은 없었고, 1975년 프라하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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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 창립 당원으로 입당
- 1937–1938KSČ 호도닌 지역위원회 서기
- 1941–1945나치 점령 하 지하활동으로 체포,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수감
- 1945–1951KSČ 프라하 시당 제1서기
- 1951–1953KSČ 정치서기국 위원 겸 부총리
- 1953–1968KSČ 중앙위원회 제1서기
- 1957–1968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 1971정상화 국면 KSČ 중앙위원 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