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에티오피아

사건 1 · 소속 인물 6 · 출신 인물 6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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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변천

  1. 1936 이탈리아이탈리아에 병합
  2. 1941 이탈리아이탈리아에서 독립
  3. 1993 에리트리아에리트리아분리 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1전체보기

  1. 1974–1977에티오피아 혁명과 데르그의 권력투쟁1974년 군부 위원회 데르그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폐위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정당·세력·조직 3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6전체보기

하일레 셀라시에 1세

ቀዳማዊ ኃይለ ሥላሴ
에티오피아 국가기관 반혁명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1892–1975 ✕ 폐위 후 데르그에 피살

근대화와 반파시즘의 상징이었지만 토지의 질서는 건드리지 않은 마지막 황제

그는 1936년 국제연맹 연단에서 ‘신과 역사는 여러분의 심판을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솔로몬 왕조의 후예인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에티오피아를 근대화하고 국제연맹 연설로 반파시즘의 상징이 된 20세기의 군주였다. 섭정 시절부터 개혁을 이끌어 1931년 헌법과 노예제 폐지를 단행했고, 이탈리아로부터의 망명을 거쳐 1941년 영국군과 함께 귀환해 제정을 회복했다. 그러나 북부의 리스트·구울트 토지와 남부의 토지수여제를 그대로 둔 채 귀족·교회와 타협한 근대화는 농민의 소작 굴레를 풀지 못했고, 1972년 웰로 기근으로 민심이 이탈했다. 1974년 9월 데르그에 폐위된 그는 이듬해 3월 자신의 토지제도를 폐지한 국유화가 내려진 직후인 8월, 군부의 명령으로 목졸려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6섭정 겸 황태자, 사실상의 실권자
  • 1917레울-라스(공작) 서임
  • 1928네구스(왕) 즉위
  • 1930황제(만민의 왕) 대관
  • 1936–1941이탈리아 점령기에 영국으로 망명
  • 1941귀환, 제정 복원
  • 1963아프리카통일기구(OAU) 창설 주재, 초대 의장
  • 19749월 데르그에 폐위

테파리 벤티

ተፈሪ በንቲ
에티오피아 국가기관 마르크스-레닌주의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1921–1977 ✕ 군부 숙청으로 피살

데르그의 초기 의장

1975년 7월 그는 ‘구체제를 거부한 모든 세력’의 ‘밑으로부터’ 세워지는 통일전선을 제안했고, 멩기스투 진영은 이 전략을 반대했다.

1974년 말 에티오피아 데르그 의장이 된 군인이다. 토지와 주요 산업의 국유화가 진행된 시기에 국가원수를 맡았으나 군부 내부 권력투쟁을 통제하지 못했다. 1977년 2월 살해됐고 멩기스투가 지도부의 우위를 굳혔다.

상세 이력 보기
  • 1941에티오피아 육군 입대
  • 1967워싱턴 주재 무관
  • 1974제4사단 준장
  • 1974–1977데르그(PMAC) 의장 겸 국가원수

아트나푸 아바테

አጥናፉ አባተ

데르그의 마지막 독립 지도자

1977년 2월 3일 그는 수도 밖에서 민병 부대에 깃발을 수여하고 있었고, 관측자들은 그 일이 목숨을 구했다고 보았다. 11월 11일 데르그 본부에서 체포돼 이튿날 총살형에 처해졌다.

에티오피아 군인으로 1974년 황제를 축출한 군사위원회 데르그의 창설 세대다. 제4사단 소령으로 데르그 부의장에 선출됐고 1975년 4월 이후 중령이 됐다. 1976년 에리트레아 전선에 보낼 수만 명의 농민 민병 모집을 맡았고 보수적·민족주의적·종교적 성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977년 2월 3일 총격에서 살아남아 제1부의장이 됐으나 같은 해 11월 12일 멩기스투의 명령으로 처형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974데르그 창설에 참여, 부의장 선출(제4사단 대표)
  • 1975중령 진급
  • 1974–1977테파리 벤티 아래 데르그 부의장·국가군사행정위원회 제2부의장
  • 1976농민 민병 조직 책임(라자 작전)
  • 19771977년 2월 제1부의장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መንግሥቱ ኃይለ ማርያም

데르그의 권력 집중

데르그 회의에서 그는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를 종 ‘바리아’로 부르던 귀족들을 겨냥해 “내가 곧 이 무식한 자들을 콩을 갈게 하리라”라고 선언했다.

1974년 혁명으로 등장한 에티오피아 군부 위원회 데르그의 지도자다. 1977년 내부 권력투쟁 뒤 우위를 굳혔고 군사·당국가 체제를 이끌었다. 토지개혁과 국가 주도 개발은 정치적 탄압과 장기 전쟁 속에서 추진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957홀레타 군사학교 졸업, 소위 임관
  • 1974데르그 위원(제3사단 대표)
  • 1974–1977데르그 부의장
  • 1977–1987데르그 의장, 군정 수반
  • 1984–1991에티오피아노동자당 서기장
  • 1987–1991에티오피아인민민주공화국 대통령
  • 1991짐바브웨로 망명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6전체보기

하일레 셀라시에 1세

ቀዳማዊ ኃይለ ሥላሴ
에티오피아 국가기관 반혁명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1892–1975 ✕ 폐위 후 데르그에 피살

근대화와 반파시즘의 상징이었지만 토지의 질서는 건드리지 않은 마지막 황제

그는 1936년 국제연맹 연단에서 ‘신과 역사는 여러분의 심판을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솔로몬 왕조의 후예인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에티오피아를 근대화하고 국제연맹 연설로 반파시즘의 상징이 된 20세기의 군주였다. 섭정 시절부터 개혁을 이끌어 1931년 헌법과 노예제 폐지를 단행했고, 이탈리아로부터의 망명을 거쳐 1941년 영국군과 함께 귀환해 제정을 회복했다. 그러나 북부의 리스트·구울트 토지와 남부의 토지수여제를 그대로 둔 채 귀족·교회와 타협한 근대화는 농민의 소작 굴레를 풀지 못했고, 1972년 웰로 기근으로 민심이 이탈했다. 1974년 9월 데르그에 폐위된 그는 이듬해 3월 자신의 토지제도를 폐지한 국유화가 내려진 직후인 8월, 군부의 명령으로 목졸려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6섭정 겸 황태자, 사실상의 실권자
  • 1917레울-라스(공작) 서임
  • 1928네구스(왕) 즉위
  • 1930황제(만민의 왕) 대관
  • 1936–1941이탈리아 점령기에 영국으로 망명
  • 1941귀환, 제정 복원
  • 1963아프리카통일기구(OAU) 창설 주재, 초대 의장
  • 19749월 데르그에 폐위

테파리 벤티

ተፈሪ በንቲ
에티오피아 국가기관 마르크스-레닌주의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1921–1977 ✕ 군부 숙청으로 피살

데르그의 초기 의장

1975년 7월 그는 ‘구체제를 거부한 모든 세력’의 ‘밑으로부터’ 세워지는 통일전선을 제안했고, 멩기스투 진영은 이 전략을 반대했다.

1974년 말 에티오피아 데르그 의장이 된 군인이다. 토지와 주요 산업의 국유화가 진행된 시기에 국가원수를 맡았으나 군부 내부 권력투쟁을 통제하지 못했다. 1977년 2월 살해됐고 멩기스투가 지도부의 우위를 굳혔다.

상세 이력 보기
  • 1941에티오피아 육군 입대
  • 1967워싱턴 주재 무관
  • 1974제4사단 준장
  • 1974–1977데르그(PMAC) 의장 겸 국가원수

아트나푸 아바테

አጥናፉ አባተ

데르그의 마지막 독립 지도자

1977년 2월 3일 그는 수도 밖에서 민병 부대에 깃발을 수여하고 있었고, 관측자들은 그 일이 목숨을 구했다고 보았다. 11월 11일 데르그 본부에서 체포돼 이튿날 총살형에 처해졌다.

에티오피아 군인으로 1974년 황제를 축출한 군사위원회 데르그의 창설 세대다. 제4사단 소령으로 데르그 부의장에 선출됐고 1975년 4월 이후 중령이 됐다. 1976년 에리트레아 전선에 보낼 수만 명의 농민 민병 모집을 맡았고 보수적·민족주의적·종교적 성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977년 2월 3일 총격에서 살아남아 제1부의장이 됐으나 같은 해 11월 12일 멩기스투의 명령으로 처형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974데르그 창설에 참여, 부의장 선출(제4사단 대표)
  • 1975중령 진급
  • 1974–1977테파리 벤티 아래 데르그 부의장·국가군사행정위원회 제2부의장
  • 1976농민 민병 조직 책임(라자 작전)
  • 19771977년 2월 제1부의장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መንግሥቱ ኃይለ ማርያም

데르그의 권력 집중

데르그 회의에서 그는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를 종 ‘바리아’로 부르던 귀족들을 겨냥해 “내가 곧 이 무식한 자들을 콩을 갈게 하리라”라고 선언했다.

1974년 혁명으로 등장한 에티오피아 군부 위원회 데르그의 지도자다. 1977년 내부 권력투쟁 뒤 우위를 굳혔고 군사·당국가 체제를 이끌었다. 토지개혁과 국가 주도 개발은 정치적 탄압과 장기 전쟁 속에서 추진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957홀레타 군사학교 졸업, 소위 임관
  • 1974데르그 위원(제3사단 대표)
  • 1974–1977데르그 부의장
  • 1977–1987데르그 의장, 군정 수반
  • 1984–1991에티오피아노동자당 서기장
  • 1987–1991에티오피아인민민주공화국 대통령
  • 1991짐바브웨로 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