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두 시밤부 몬들라느

Eduardo Chivambo Mondlane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류학자에서 모잠비크 해방전선의 창립자로

“비록 대학 생활을 무엇보다 사랑했지만, 나는 남은 생애를 조국 해방 전쟁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였으나, 교수직을 버리고 흩어진 모잠비크 해방 조직들을 한데 모아 해방전선(FRELIMO)을 창립했다. 초대 의장으로서 1964년 무장 투쟁을 개시해 독립 전쟁의 토대를 놓고 이를 이끌다가, 1969년 서신 폭탄으로 암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FRELIMO의 조직화와 해방전쟁

1962년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망명 중인 모잠비크 민족주의자 여러 단체가 통합해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을 결성했고, 몬들라느는 그해 9월 대회에서 초대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1963년 가족과 함께 다르에스살람으로 옮겨 본부를 운영했다. 망명 학생을 받아 장학금을 마련하고 모잠비크의 초·중등 교육과정을 개발하려고 모잠비크 연구소를 세웠으며, 교육을 해방운동의 주요 과제로 삼았다. 군사훈련을 위해 알제리, 아랍연합공화국, 탄자니아의 훈련소로 자원자를 보냈고, 무기와 전투원 보급을 위한 국제적 지원을 모색했다. 1964년 9월 카보델가두와 니아사에서 게릴라 작전이 시작됐다. 그는 무장투쟁에 필요한 자금과 무기를 구하려고 여러 나라를 돌았다.

몬들라느의 지도력과 투쟁의 속도·방향은 FRELIMO 내부에서 논쟁을 낳았다. 1968년 7월 니아사에서 열린 제2차 대회는 그를 의장으로 재선출했다. 대회는 장기전을 채택하고 농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삼는 전략을 승인했다. 그는 해방구를 방문해 전투원들을 살피고 주민을 위한 초기 보건소, 학교, 농업센터를 둘러봤다. 1969년 2월 3일 다르에스살람에서 책으로 표시된 우편 폭탄이 터져 그가 사망했다. 암살의 실행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