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세볼로트 미하일로비치 예이헨바움

Всеволод Михайлович Эйхенбаум
소련 러시아 1882–1945 ○ 결핵 · 파리

아나키스트 통합을 이론화하고 볼셰비키가 억압한 혁명을 기록한 러시아 아나키스트 지식인

『골로스 트루다』, 1917년: '볼셰비키가 권력을 공고히 하고 합법화하면… 국가와 인민의 삶을 위에서부터 운영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반대를 철권으로 분쇄할 권위주의적 정치·국가 기구를 발전시킬 것이다.'

러시아 아나키스트 지식인이자 마흐놉시치나의 지도적 이론가. 페트로그라드에서 『골로스 트루다』를 편집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나바트 연합을 공동 창설했으며, 마흐노 군사혁명평의회 의장으로서 아나키스트 통합 이론을 발전시켜 공산주의·개인주의·생디칼리즘 아나키스트들의 협력을 주창했다. 1922년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추방된 후, 1917–1921년 혁명의 아나키스트적 결정판인 『미지의 혁명』을 저술했으며, 동지 마흐노가 추진한 플랫폼주의 중앙집권화에 반대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아나키스트 통합

볼린의 '아나키스트 통합'(анархический синтез) 이론은 1918년 11월 쿠르스크에서 열린 나바트 연합 창립대회에서 구체화되었다. 이 대회에서 볼린은 아나키즘의 3대 흐름인 공산주의(자유연합적 공산주의), 생디칼리즘(노동조합을 통한 혁명적 방법), 개인주의(개인의 완전한 해방)가 서로 분리되어 적대하는 것은 운동을 약화시킬 뿐이며, 이제 이 요소들을 유기적 전체로 재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바트 연합은 이 3원칙을 받아들인 선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볼린은 이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다양한 경향의 아나키스트들을 단일 연합체로 묶어내는 데 성공했다.

볼린은 1925년 「아나키스트 통합」이라는 글에서 이 이론을 체계화했다. 그에 따르면, 아나키즘의 분화는 초기 사상을 심화하는 분석 단계에서는 유익했으나, 이제 그 역할은 끝났으며 계파 간 적대는 운동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가 제안한 중간 지대, 완고한 교조도 아니고 무원칙한 부유도 아닌 지대는 연방제와 자유로운 규율, 집단적 책임을 기반으로 한 '통합적 조직'이었다. 이는 아나키스트들을 하나의 정당으로 만들려는 '정파적' 시도가 아니라, 공통의 실천적 기반 위에서 다양한 경향이 공존하는 운동을 지향했다.

이 통합 이론은 1926년 표트르 아르시노프와 네스토르 마흐노가 발표한 「조직 강령」(Platform)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강령파가 이론적·전술적 통일성과 집단적 책임을 요구하며 긴밀한 전위조직을 주창한 데 반해, 볼린은 이것이 아나키즘의 분권주의 원칙을 배반하고 권위주의적 정당의 재현이라고 비판했다. 1927년 볼린은 세냐 플레신, 몰리 슈타이머 등과 함께 「강령에 대한 답변」을 발표하여 통합주의적 대안을 제시했고, 이 논쟁은 20세기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플랫폼 대 통합'이라는 핵심 논쟁축을 형성했다. 이 논쟁으로 한때 가까웠던 마흐노와의 관계는 파탄 났지만, 마흐노 사망(1934년) 직전 두 사람은 화해했다.

볼린의 통합 이론은 이후 세바스티앵 포르의 「아나키스트 백과사전」을 통해 프랑스와 국제 아나키스트 운동에 확산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국제아나키스트연맹(IFA) 등 여러 조직의 이론적 기반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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