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회의에 항의해 재무부를 떠나 배상의 해악을 경고한 영국 경제학자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킹스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1915년 재무부에 들어가 연합국 간 신용 조건을 설계했다. 파리 강화회의에서는 독일의 배상액을 지불 능력을 넘지 않게 하려 했으나 고위 협상에서 대부분 밀려났고, 조약에 실망해 재무부를 떠났다. 1919년 『평화의 경제적 귀결』로 조약의 해악을 예측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대공황 속에서 유효수요가 경제활동 수준을 정한다고 보고 재정·통화 정책으로 불황에 맞설 것을 주장했으며, 1936년 『일반이론』을 냈다. 1944년 브레턴우즈 협상에서 영국 대표단을 이끌었으나 미국안에 밀렸다. 1946년 심장마비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09–1946 학술·연구 · 영국 국가기관
- 1915–1919 경제·재정·계획 · 영국 국가기관
- 1944 외교·국제활동 · 영국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915–1919재무부 관리
- 1919파리 강화회의 재무부 대표, 사임
- 1919『평화의 경제적 귀결』
- 1936『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 1944브레턴우즈 회의 영국 대표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