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이끌었으나 유대인 학살의 책임 논쟁에 휩싸인 독립운동가
러시아의 운명에서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떼어놓지 말아야 합니다. 러시아가 패배하면 그 재앙은 우크라이나에도 미칠 것입니다.
폴타바 출신의 사회민주주의 언론인으로, 1917년 중앙라다 군사사무총서기를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군 총사령관과 집정내각(디렉토리야) 수반을 지냈다. 볼셰비키·백군·폴란드 사이에서 독립을 수호하려 싸웠으나 1920년 패퇴 후 폴란드, 이어 파리로 망명했다. 그의 군대 휘하에서 약 5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으며, 페틀류라가 이를 막지 못했는지 의도적으로 방치했는지는 오늘날까지 논쟁의 대상이다. 1926년 파리에서 유대인 아나키스트 숄롬 슈바르츠바르트에게 암살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7–1920 군사·지휘 ·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경력 연표
- 1900–1917우크라이나 혁명당(RUP)·우크라이나 사회민주노동당(USDRP) 활동, 언론인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운동 주도
- 1917.5–1917.12중앙라다 군사사무총서기, 우크라이나 군 편성 주도
- 1918.1–1918.3하이다마키 코쉬 지휘관, 키예프 아르세날 봉기 진압
- 1918.11–1919.2우크라이나 집정내각(디렉토리야) 군사총책
- 1919.2–1920.12집정내각 수반 겸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군 총사령관
- 1920.4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 체결, 대볼셰비키 동맹
- 1924–1926파리 망명정부에서 주간지 『트리주브(Тризуб)』 발행
관련 역사 사건
- 1917–1921우크라이나 혁명과 전쟁디렉토리아와 인민공화국군 지도자1919년 2월부터 디렉토리아의 수반으로 인민공화국군을 이끌었고, 1920년 4월 피우수트스키와 바르샤바 협정을 맺어 갈리치아를 내주는 대가로 폴란드의 동맹을 얻었다.
-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수반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집정내각(디렉토리야) 수반으로서 볼셰비키·백군·폴란드 세력 사이에서 독립을 수호하려 싸웠고, 1920년 패퇴 후 폴란드로 망명했다.
- 1919–1921소비에트-폴란드 전쟁폴란드와 동맹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수반1920년 4월 바르샤바 협정으로 폴란드와 동맹해 키예프 공세에 참여했으나, 10월 폴란드의 휴전으로 홀로 남아 11월 군대와 함께 폴란드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