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현장에서 60일을 보내고, 은폐된 진실을 테이프에 녹음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과학자
“나는 빈에서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전한 진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소련의 무기화학자 발레리 레가소프는 쿠르차토프 원자력연구소 제1부소장으로서 1986년 4월 26일 저녁 체르노빌 참사 현장에 처음 도착한 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정부위원회에서 과학적 수습을 이끌며 붕소·모래 투하를 제안했고, 빈 IAEA 회의에서 5시간에 걸친 보고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으나 원자로 설계 결함의 전모를 밝히지 못했다. 사고 2주기 다음날인 1988년 4월 27일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으며, 유서처럼 남긴 오디오 테이프에는 소련 원자력 체계의 은폐와 부실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 담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64–1972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61–1964엔지니어 → 교대조장, 시베리아 화학콤비나트 (톰스크-7)
- 1964–1972연구원, 쿠르차토프 연구소; 1967년 화학 후보박사, 1972년 화학 박사
- 1972–1983과학 담당 부소장, 쿠르차토프 연구소
- 1981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83–1988제1부소장, 쿠르차토프 연구소; 방사화학·화학기술 학과장, 모스크바 국립대
- 1986–1988정부위원회 위원, 체르노빌 사고 수습
관련 역사 사건
체르노빌 사고 조사와 국제 보고
1986년 8월 레가소프는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고 후 검토 회의에 소련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해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소련 측 조사 결과를 국제 전문가들에게 보고했다. IAEA는 그해 9월 첫 INSAG 보고서를 내놓았으며, 이후 추가 정보에 따라 1992년 보고서에서 1986년의 원인 분석을 다시 검토했다. 따라서 빈 보고는 사고 직후의 소련 공식 설명이 국제적 논의의 토대가 된 동시에, 당시 확인된 사실과 이후의 재평가 사이에 간극이 있었던 국면으로 볼 수 있다. 레가소프가 보고에서 무엇을 알고 있었거나 의도적으로 누락했는지는 별도 사료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