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알렉세예비치 레가소프

Валерий Алексеевич Легас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36–1988 ✕ 자살

체르노빌 현장에서 60일을 보내고, 은폐된 진실을 테이프에 녹음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과학자

“나는 빈에서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전한 진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소련의 무기화학자 발레리 레가소프는 쿠르차토프 원자력연구소 제1부소장으로서 1986년 4월 26일 저녁 체르노빌 참사 현장에 처음 도착한 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정부위원회에서 과학적 수습을 이끌며 붕소·모래 투하를 제안했고, 빈 IAEA 회의에서 5시간에 걸친 보고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으나 원자로 설계 결함의 전모를 밝히지 못했다. 사고 2주기 다음날인 1988년 4월 27일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으며, 유서처럼 남긴 오디오 테이프에는 소련 원자력 체계의 은폐와 부실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 담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체르노빌 사고 조사와 국제 보고

1986년 8월 레가소프는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고 후 검토 회의에 소련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해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소련 측 조사 결과를 국제 전문가들에게 보고했다. IAEA는 그해 9월 첫 INSAG 보고서를 내놓았으며, 이후 추가 정보에 따라 1992년 보고서에서 1986년의 원인 분석을 다시 검토했다. 따라서 빈 보고는 사고 직후의 소련 공식 설명이 국제적 논의의 토대가 된 동시에, 당시 확인된 사실과 이후의 재평가 사이에 간극이 있었던 국면으로 볼 수 있다. 레가소프가 보고에서 무엇을 알고 있었거나 의도적으로 누락했는지는 별도 사료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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