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계획의 천재, 레닌그라드 사건에 죽다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보즈네센스키는 스탈린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산업이 감당할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곤 했다. 바실렙스키 원수는 "그의 말이 결정적이었고, 거의 틀리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소련의 경제학자이자 정치국원. 35세에 고스플란 의장이 되어 대조국전쟁 시기 소련 전시 경제 계획을 총괄했으며, 국가방위위원회 위원으로 산업 대피와 군수 생산 전환을 지휘했다. 1947년 『전시 소련경제』로 스탈린상을 수상하고 전후 경제 부흥 계획을 주도하며 스탈린의 총애를 받는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했다. 즈다노프 사후 말렌코프·베리야와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 레닌그라드 사건으로 몰락, 1950년 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 1930s레닌그라드 당·계획기관에서 빠르게 성장한 젊은 경제관료
- 1938–1941, 1942–1949고스플란 및 국가계획위원회 의장, 전시 생산계획 조정
- 1941–1945국가방위위원회와 전시 경제관리의 핵심 실무자
- 1946–1949전후 유력 경제 지도자로 부상, 『전시 소련경제』 저술
- 1949–1950레닌그라드 사건으로 체포·처형
관련 역사 사건
레닌그라드 사건: 몰락과 처형
1949년 3월 7일, 보즈네센스키는 갑자기 소련 각료회의 부의장직에서 해임되고 정치국에서 축출되었다. 표면적 구실은 고스플란의 기밀문서 분실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말렌코프와 베리야가 주도한 '레닌그라드 사건'의 일환이었다. 1949년 9월 당 중앙위원회에서 제명되었고, 10월 27일 체포되었다. 1950년 9월 30일 밤, 소련 대법원 군사합의부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했고, 선고 한 시간 만에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나이 46세였다. 형 알렉산드르와 누이 마리야도 같은 사건으로 처형되었다. 스탈린 사후인 1954년 4월 30일, 대법원 군사합의부는 그를 전면 복권시켰다. 한때 스탈린의 총애를 받으며 정치국원까지 오른 경제관료의 몰락은 전후 소련 권력투쟁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