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차오

张春桥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공산주의 중국 중국 1917–2005 ○ 사형 선고 후 감형, 1998년 석방

문화대혁명 '사인방'의 이론가, 상하이 인민공사를 조직하고 부르주아지 전면독재를 주창한 정치인

1980년 재판에서 장춘차오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수년 후 가족 면회가 허용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중국 문화대혁명의 핵심 이론가이자 '사인방' 구성원. 1938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상하이에서 《해방일보》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58년 「부르주아 법권 사상을 타파하자」를 발표해 마오쩌둥의 주목을 받았고, 문화대혁명기 중앙문화혁명소조 성원으로 1967년 상하이 인민공사를 조직해 기존 시 정부를 전복시켰다. 1975년 부총리로서 「부르주아지에 대한 전면독재를 실시하자」를 집필해 사회주의 이행기 계급투쟁 노선을 정식화했으며, 마오 사후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1998년 석방될 때까지 마오주의 신념을 고수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상하이 권력 장악과 혁명위원회

1967년 1월 상하이에서 반란파 조직들이 당·정부 기관의 권력을 장악하자, 장춘차오는 베이징 중앙문화혁명소조의 지원을 받아 노동자총사령부를 이끌며 새 권력기구의 수립을 추진했다. 노동자총사령부는 당시 상하이의 주요 반란파 세력이었다. 당초 파리코뮌을 본뜬 상하이 인민공사를 1월 26일 출범시키려 했으나, 계획은 2월 5일로 미뤄졌다. 그 사이 중앙 지도부가 홍위병·당 간부·군인을 결합한 혁명위원회 모델을 선호하면서 인민공사는 출범 직후부터 대안이 되었다. 2월 24일 마오쩌둥은 인민공사 설치가 시기상조라며 이를 공식 중단하고 상하이 혁명위원회로 바꾸었다. 장춘차오는 새 위원회의 책임자로 남았다.

장춘차오의 권력 장악은 기존 상하이 당 지도부를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반란파 세력들을 중앙이 승인하는 행정기구 아래 통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한 연구는 상하이의 권력 장악을 중앙 당국이 조직한 내부 쿠데타로 해석하며, 그 결과 장춘차오가 노동운동을 제압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상하이에서는 다른 지역을 괴롭힌 파벌 간 무력 충돌이 이후 재현되지 않았다. 1967년 9월까지 권력 장악이 23개 성급 수도에서 선포됐지만, 첫 11주 동안 중앙이 승인한 지역은 네 곳뿐이었다. 상하이 방식의 확산은 대중의 권력 장악만으로 완결되지 않았으며, 중앙이 신뢰하는 지도자와 반란파 통합, 군·당 간부가 참여하는 새 권력구조의 수립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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