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강령 (1968)
Action Programme (1968)
1968년 4월 5일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채택한 개혁 강령으로, 프라하의 봄의 핵심 정책 문서다. 일부 연구는 발표 시점을 4월 10일로 본다. 검열 폐지, 집회·표현·이동의 자유, 경제 개혁과 연방제, 비밀경찰 권한 축소를 담았으나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8월 바르샤바조약군 침공으로 이행이 중단됐고 1970년 공식 폐기됐다.
상세
초안 작성과 내용
행동강령은 1967년부터 즈데네크 믈리나르시가 이끈 위원회가 준비한 배경 문서를 토대로 1968년 1월부터 3월까지 약 200명이 참여해 작성했다. 학술 연구에 따르면 '작업반' 형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믈리나르시(사회주의 민주주의), 라도반 리흐타(과학·문화·교육), 오타 시크(국민경제와 생활수준)의 영향이 컸다. 30여 쪽 분량의 이 문서는 1960년대의 사회 발전, 경제 위기, 스탈린주의 비판과 국제적 데탕트에 대응해 기존 문제에 대한 부분적 분석과 일련의 개혁 제안을 결합했다.
강령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개혁파가 구상한 '부흥 과정'을 펼쳐낸 것이었다. 주요 목표는 정치 체제의 개혁, 즉 기존의 국가사회주의를 민주적 사회주의, 곧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로 전환하는 것이었고, 소련에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체코슬로바키아의 고유한 경로를 상정했다. 문서 자체는 우선적 중공업 확대가 다른 부문을 희생시켰고 원료·노동력·투자에 과도한 요구를 했다고 이례적으로 솔직하게 비판했으며, 20년 만에 중앙집권적 경제 모델이 작동하지 않았고 국가의 가능성과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경제 비판은 문서의 표현대로 진행됐다. 중공업 성장은 체코슬로바키아 생산의 상당한 기술적 후퇴를 낳고 시장 균형을 무너뜨렸으며 국제적 지위를 악화시켰고, 결국 정체와 경우에 따라 생활수준의 하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문서는 임금 상승의 둔화, 생활수준의 정체, 참담한 주택 사정, 취약한 운송 체계, 질 낮은 상품과 서비스를 지적했다.
경제 개혁의 핵심은 지시적 관리와 중앙 계획을 제거하고, 생산부를 몇 개의 부문 관청으로 대체해 국영기업에 규칙을 정하게 하며, 노동자 기업평의회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소규모 사기업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68년 1분기에 임금이 10.4퍼센트, 1인당 월평균 약 106크라운 올랐고, 임금과 사회적 요구가 노동조합과 정부 간의 교섭 대상이 되는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 나타났다.
시민적 자유와 정치 제도
문서 자체는 앞 시기의 변형을 개인숭배, 불충분한 경험, 교조주의와 주관주의에 돌렸고, 당시 당과 국가의 지도 기관과 기구가 체코슬로바키아 조건에 맞지 않는 구상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데 대해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종파주의, 민주적 권리의 억압, 법률 위반을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자 유사한 방법에 대한 경고라고 규정했다. 적대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내부 발전의 주요 특징이 사회의 모든 사회주의 집단을 결합하는 것이 되어 가고 있다고 보았고, 격렬한 계급투쟁 시기에 쓰던 지도 방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논했다. 폭넓은 사회적 주도성, 솔직한 의견 교환, 사회·정치 체제 전반의 민주화가 사회주의 사회의 역동성의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시민적 자유의 보장과 관련해 강령은 집회의 권리, 자발적 조직과 결사의 구성, 표현의 자유(실질적으로 검열 폐지), 해외여행과 연결된 거주·이동의 자유를 확인했다. 강령의 거의 모든 조치는 법률 초안과 동시에 작성되었다. 또 슬로바키아의 자치를 강화하는 연방제를 제안했는데, 1968년 침공 이후 이 연방제는 행동강령 전체에서 실현된 유일한 조항이었다.
강령은 국가 권력의 엄격한 분리를 구상했다. 공산당이 아니라 국민의회가 정부를 통제하고, 법원은 독립적이 되어야 했다. 정치적 다원주의는 권고되지 않았으나 공산당은 다른 조직과 자유롭게 경쟁하며 지도적 역할을 정당화해야 했다. 지도적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강령의 중심 사상이었다. 당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해야 하며, 지시가 아니라 민주적 수단으로 그 역할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령은 여당과 야당의 체제를 거부했으므로, KSČ는 지도적 역할을 유지하면서도 어느 정도 다른 협력자와 권력을 나누게 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요점에는 새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안에서 슬로바키아를 완전한 동등한 지위로 승격시키는 것, 오래 지연된 공업·농업 개혁, 시민적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개정 헌법, 과거에 권리를 침해당한 시민들의 완전한 명예회복이 포함되었다.
이념적 다원주의와 관련해 강령은 '이익 다원주의'를 제안했다. 당원과 비당원을 포함한 시민들이 민족전선의 하위 기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민주적 토론에서 해결책을 제안하며, 비당원의 완전한 참여와 당원 자격에 조건 지워지지 않는 직업 경로가 보장되는 구상이었다. 강령은 또한 과학·교육·문화를 다루어, 과학 연구의 완전한 자유를 규정하고 과학 저작과 학술지가 검열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했다. 국가 차원의 민주적 요구와 관련해서는 낡은 선거법과 후보자 선택에 대한 불만으로 지방 인민위원회, 국민의회, 슬로바키아 민족의회 선거를 연기하고, 더 많은 후보를 허용하는 새 규칙 아래 가을에 실시하기로 했다. 당 내부에서는 간부를 비밀투표로 선출하고, 당·국가·공공의 지도적 직무를 한 사람이 겸직하는 것을 금지하며, 공산주의자가 자발적으로 당을 떠날 수 있게 했다.
외교와 후속 경과
강령은 서방 국가와의 우호 관계 유지와 소련 및 동구권 국가와의 협력을 함께 포함하는 외교 정책을 다루었고, 10년의 이행기를 거쳐 민주적 선거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체르나나트리소우 회담에서 둡체크는 개혁파의 제안을 변호하면서도 바르샤바조약과 코메콘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다.
강령을 작성한 이들은 전후 공산 정권의 행동 자체를 비판하지 않으려 조심했고, 다만 유용성을 다했다고 판단한 정책들을 지적했다. 전후 직후의 상황은 '중앙집권적이고 지시·행정적인 방법'을 요구했으나 '적대 계급'이 패배한 뒤에는 그러한 방법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노동자는 이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자격과 기술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 내부에는 경제 노선을 둘러싼 견해차가 있었다. 일부 경제학자는 더 혼합적인 경제를 원했고 다른 이들은 경제가 대체로 계획경제로 남기를 바랐으며, 경제 개혁을 이끈 오타 시크는 자신의 경제관을 '제3의 길'로 보았다. 둡체크는 경제 개혁이 공산당의 지도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고 계속 강조했다. 개혁이 KSČ의 지도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고 규정되었음에도, 개혁을 즉시 시행하라는 대중적 압력이 커졌다. 급진적 요소들의 발언이 거세지고 1968년 6월 26일 신문에 반소 논쟁이 나타났으며, 사회민주당이 별도 정당 결성을 시작하고 새로운 무소속 정치 클럽들이 만들어졌다. 당 보수파는 탄압을 촉구했고 둡체크는 자제를 권하며 KSČ의 지도력을 다시 강조했다.
제14차 당대회는 행동강령을 당 규약에 반영하고 연방제 법률을 기초하며 새 중앙위원회를 선출할 예정이었다. 강령의 이행은 1968년 8월 21일 바르샤바조약군 침공으로 끝났고, 이후의 해들은 '정상화'로 규정된다. 행동강령은 1970년에야 KSČ 중앙위원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무효화되었으나, 실질적 효력은 1968년 늦여름에 이미 끝났다. 침공은 통상 프라하의 봄과 강령의 종료로 취급된다.
구별되는 문서
행동강령은 '이천 단어' 선언과 다른 문서다. 개혁파 작가 루드비크 바출리크가 작성해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1968년 6월 17일에 서명하고 6월 27일에 발표한 이 민간 호소문은, 국민이 당에 공개성의 기준을 요구하도록 촉구한 것이었다. 둡체크와 당 간부회, 민족전선, 내각은 물론 소련도 이를 비난했다.
행동강령은 더 넓은 개념인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와도 구별된다. 라도반 리흐타가 처음 만든 이 표어는 1968년 4월 KSČ 간부회에서 합의된 사회민주주의적·민주사회주의적 강령을 가리켰다. 그것은 공산당의 통치를 여전히 허용하면서 선진 사회주의 사회를 추구하는 온건한 민주화, 경제 현대화, 정치적 자유화의 과정을 서술했다. 프라하의 봄을 촉발하는 데 결정적이었고, 1968년 8월 21일 바르샤바조약군 침공으로 되돌려졌다.
행동강령은 사회주의로부터의 이탈도, 헌법에 명시된 KSČ의 지도적 역할로부터의 이탈도 아니었다. 당이 그 역할을 '충분히 얻어낼' 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고 다소 모호하게 밝히면서, '인민의 자발적 지지'에 의존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롭고 진보적인 사회주의 발전에 가장 헌신적으로 봉사한다'고 주장했으며, KSČ가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정치적 지도를 올바른 발전의 조건으로 간주하고 노동계급에 계속 기반을 둘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Wikipedia: Action Programme adopted April 1968 under Dubček, contents including press/speech/travel freedoms, consumer-goods emphasis, multiparty government possibility, secret-police limits, federalization, ten-year democratic transition, drafted by reform economists with Ota Šik.
- britannica.com Britannica: the Action Program as 'the crowning achievement of the new reformist government under Dubček,' adopted by the Central Committee April 1968, encompassing economic reforms, political democratization, Slovak parity in a new federation, constitutional civil rights, rehabilitation of past victims, and a strict division of powers.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 britannica.com
- cs.wikipedia.org
- 위키백과 (영문)
- ct24.ceskatelevize.cz
-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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