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ie Stadt · 1958~1961년 베를린 위기

자유도시

Free City

냉전기 베를린 문제에서 자유도시는 서방 연합군의 철수와 비무장화를 전제로 서베를린을 별도의 국제적 지위를 가진 도시로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소련은 1958년과 1961년 이 구상을 최후통첩과 결부해 제시했지만, 서방은 점령국의 권리와 서베를린への 접근을 보장하던 전후 질서를 포기하지 않으려 이를 거부했다.

상세

1958년 11월 소련은 미국, 영국, 프랑스에 6개월 안에 서베를린을 비무장 자유도시로 만들고 군대를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서방이 거부하면 소련이 동독과 별도 평화조약을 맺어 베를린으로 통하는 육상·수상·항공 통로의 통제를 동독에 넘길 수 있다고 통보했다. 이 구상은 베를린의 4대국 공동관리와 서방의 접근권을 해체하고 동독의 주권을 강화하려는 협상안이었으며, 서방은 법적 권리와 도시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주둔과 접근을 유지했다. 1961년 빈 정상회담 뒤 흐루쇼프가 요구를 되풀이했으나 합의는 없었고, 동독은 8월 국경을 폐쇄하고 장벽을 세웠다. 따라서 자유도시는 실현된 국제법적 지위가 아니라 베를린 위기에서 충돌한 전후 질서와 주권 구상의 이름이었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supports the 1958 proposal, demilitarization, transfer of access control, and Western refusal)
  2. 위키백과 (영문) (supports the renewed 1961 demand and its connection to the Wall crisis)
  3. germanhistorydocs.org (published document collection, supports the 27 November 1958 Soviet note and its six-month demand for a demilitarized free city)
  4. history.state.gov (U.S. State Department historical overview, supports the ultimatum and the ensuing three-year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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