ликбез (ликвидация безграмотности) · 1919–1939

리크베즈

Likbez

소비에트 러시아와 소련에서 1919년부터 1930년대 말까지 추진된 성인 문맹 퇴치 대중 캠페인이다. 1919년 12월 26일 인민위원회 법령에 따라 8세에서 50세까지 모든 비문해자를 의무 교육 대상으로 삼았으며, 리크푼크티(문맹 퇴치소)와 자발적 단체 '문맹 타도'를 통해 수천만 명을 읽고 쓰게 했다. 캠페인의 핵심에는 문해력이 곧 정치의식의 조건이라는 레닌의 통찰이 있었으며, 실제 교육 과정에는 정치소양 과목이 의무적으로 포함되었다. 1939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16~50세 문해율은 약 90%에 도달했으나, 도시-농촌, 남녀 간 격차는 오래 지속되었다.

상세

조건과 포고

혁명 당시 러시아의 문해율은 지역과 성별에 따라 크게 갈렸다. 도시 남성의 문해율은 상당히 높았으나 농촌 여성과 비러시아 민족 지역에서는 매우 낮았고, 전체 인구의 다수가 읽고 쓸 수 없는 상태였다. 1919년 12월 26일 인민위원회의 포고가 8세에서 50세까지 모든 비문해자에게 학습 의무를 부과했다.

포고는 모어 또는 러시아어 가운데 선택해 학습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조항은 문자가 없던 언어에 문자를 제정하는 작업과 결합되어, 리크베즈가 코레니자치야의 언어 정책과 함께 진행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조직과 방법

집행 기구는 세 층이었다. 교육인민위원부 산하의 전러시아 비문해퇴치 특별위원회가 정책을 총괄하고, 지역에 수만 개의 리크푼크트, 즉 문해 학습소가 설치되었으며, 1923년 설립된 자원 단체 비문해 타도가 교사 동원과 재정 조달을 담당했다.

교육 내용에는 정치 학습이 결합되었다. 레닌은 문해를 정치적 의식의 전제로 보았기 때문에, 읽기와 쓰기 교육과 함께 정치 문해 과정이 필수로 편성되었다. 교재의 문장 자체가 소비에트 권력과 노동, 협동조합을 소재로 구성되었으며, 이 결합은 캠페인의 성격을 규정했다.

성과와 한계

1939년 인구조사에서 16세에서 50세 인구의 문해율은 90퍼센트에 근접했다. 단기간에 대규모 성인 교육을 수행한 사례로서 이 캠페인은 20세기 문해 정책의 참조 사례가 되었다.

한계도 분명했다. 도시와 농촌,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격차가 수십 년간 남았고, 초기의 학습 성과가 유지되지 않아 재교육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문해의 정의 자체가 서명과 간단한 읽기 수준에 머문 경우도 있어 통계 해석에 주의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이 캠페인의 결과는 다른 정책의 조건이 되었다. 신문과 소책자를 통한 대중 동원, 기술 교육의 확대, 그리고 문화 정책의 대중적 수용은 모두 문해 인구의 확대를 전제로 했다. 리크베즈는 그런 의미에서 초기 소비에트 사회 정책의 기반 작업으로 다루어진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full history of the campaign, decree dates, organizational structure, statistics, and the role of Lunacharsky, Krupskaya, and Kalinin
  2.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background literacy rates, Lenin's quote 'without literacy there can be no politics,' campaign structure, and international leg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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